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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의 학생생활기록부를 누가 공개했나.'

지난 9월 24일 감사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양가 아저씨'로 놀림 당한 윤성식(고려대 교수) 감사원장 후보를 보며 많은 이들은 이 같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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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활기록부, 누가 공개했나?


그런데 윤 후보의 학생생활기록부를 빼낸 곳은 다름 아닌 교육부와 광주교육청인 것으로 1일 밝혀졌다. 현행법은 당사자 허락 없이 생활기록부의 외부 유출을 금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생활기록부·건강기록부의 집적시스템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안정성을 강조해 온 교육부 스스로 은밀한 학생 정보를 유출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심지어 교육부는 윤 후보 자료와 함께 부인인 이아무개 여사의 생활기록부까지 각 학교에 제출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업무연락 "즉시 팩스 전송하라"

인사청문회를 앞둔 9월 19일 광주서석초, 광주고(구 광주동중), 수피아여자중, 광주제일고에는 한 장의 '업무연락'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발신처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경유처는 광주광역시 교육감이었다. 제목은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자료 요청건' 이 문서의 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감사원장 후보인 윤성식씨 인사청문회 대비 생활기록부 사본(원본 대조필)을 복사한 후 이를 직인 날인하여 팩스로 전송(바로 전송하면 직인이 나타나지 않음). 1부를 요구하니 교육부 학교정책과로 즉시 팩스 전송하고 학교정책과 권○○ 연구사에게 전화보고하길 바람.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윤 후보 출신 학교인 광주서석초, 광주동중, 광주제일고는 생활기록부 전체 내용을 교육부로 팩스 전송했다. 윤 후보 부인의 출신 학교인 수피아여자중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

윤 후보가 나온 한 학교의 김아무개 교감은 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래 생활기록부는 가족이 와도 떼어주지 않게 되어 있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면서 "교육청 산하다 보니 직속상관인 교육부와 교육청이 보내라고 하는데 보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 교감은 "이제부터는 학생들 장래를 봐서 생활기록부는 잘 써놓고 봐야겠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해당 학교 "보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교육부가 앞장 선 생활기록부 유출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생활기록부관리지침과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을 명백히 어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생활기록부관리지침에 따라 교육적 용도로만 정보를 활용해야 하는데 교육 외적으로 쓰도록 교육부가 각 학교에 사실상 강요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회가 자료를 요구하더라도 관리 주체인 학교장이 이를 판단할 문제인데 교육부가 앞장서 지시한 것은 법적으로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권두섭(여는 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도 "생활기록부는 인사청문회법 12조 규정대로 '인사청문과 직접 관련된 자료'가 아닐 뿐더러 심각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회가 요구해서도 안 되고 이에 교육부가 응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 "교육부 행위는 직권남용, 사생활 침해"

▲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현행 생활기록부관리지침은 "생활기록부는 학생의 지도자료, 상급학교 승급자료로 제공할 수 있으며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에 정한 절차에 따라 민원인에게 교부할 수 있다"(23조)고 씌어 있다. 다른 용도의 사용은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은 제7조에서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에 의해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비공개대상정보로 묶어 두고 있어 생활기록부 공개의 불법논란이 일게 된 것이다. 현재 생할기록부는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서 수집 자체를 금하고 있는 '사상, 신조, 질병' 등 300여 항목의 은밀한 학생 정보가 '교사 종합의견란' 등에 들어 있다.

NEIS 보안성 그렇게 강조하던 교육부가...

NEIS의 보안성을 강조한 교육부 스스로 이 같은 개인 신상정보를 다른 방식도 아닌 팩스를 통해 전송토록 지시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거셀 전망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NEIS 반대운동을 벌여온 전교조의 김학한 정책기획국장은 "민원서비스와 교사 업무경감을 위해 학생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를 한 데 모아야 한다는 교육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술하고 구멍 뚫린 것인지 뒷받침해주는 일"이라면서 "NEIS가 시행되면 업무연락도 필요 없이 교육부가 버튼 하나 누르면 언제든 학생자료를 빼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경악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윤성식 후보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1일 전화통화에서 밝혔다. 교육부 학교정책과 유아무개 장학관은 "실무자한테 확인한 결과 윤 후보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서 "만약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자료를 줄 수 있다는 변호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생활기록부를 국회에 건네면서 특별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협의회 없이 해당 부서의 과장 결재만 거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윤성식 후보 "생활기록부 공개 동의 안 했다" 반박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윤 후보는 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내가 왜 생활기록부 공개를 동의해 주겠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교육부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집사람 성적표까지 교육부가 국회로 건넨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교육부는 당연히 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동의 없이 내 은밀한 정보를 공개한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 쪽 "생활기록부는 한나라당이 요구했다"
개인신상정보 담은 자료.. 타 부처는 거부 사례 많아

▲ 조희욱 의원 홈페이지에 있는 그림.

'양가 아저씨' 발언으로 유명해진 자민련 조희욱(전국구) 의원 홈페이지는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네티즌과 시민들이 하루 수백 건씩의 글을 올려 그를 비판하고 나선 것.

이에 대해 조 의원 쪽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조 의원 쪽 관계자는 "사실 생활기록부 자료를 교육부에 요구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한나라당 의원이었다"면서 "국민들의 뜻은 이해하지만 사실과 다르게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특별한 문제제기 없이 생활기록부를 넘겨준 터라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국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회가 인사청문회 등을 앞두고 행정 부처에 자료를 요구할 경우 행정부처가 이를 거부한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은밀한 개인정보를 담은 자료는 개인의 동의가 없는 한 거의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올해 들어서도 법무부와 행정자치부 등은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근거로 개인신상 자료를 상당 부분 제출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윤성식 후보와 함께 그의 부인의 생활기록부까지 스스럼없이 국회에 건네 준 것이다. 조 의원 쪽은 이에 대해 교육을 가장 잘 아는 교육부 판단에 따라 생활기록부를 공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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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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