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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안 죽었어!"

11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주최 <평화 기도회>는 겉모양은 북핵 위기로 가열된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기독교계 기도 행사를 표방하고 있으나, 곳곳에서 정치적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 '과연 순수 기도회인가'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주최측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주된 구호는 '주한미군 철수 반대'였다. 그러나 <조선일보> <한겨레> <국민일보>에 실린 신문광고에서는 언뜻 그러한 내용에 대한 언급이 순서 중 기도제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한미군철수 반대" 등의 피켓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동원 인력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이날 집회의 속성상 주최측이 내세우고 싶은 논리가 바로 이것임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한기총 집회의 행사 주축 세력은 서울 시내 대형교회들이다.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와 김홍도 목사(금란교회)가 그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92년에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인물로, 대선 때마다 특정 후보를 지지했던 '종교계의 킹 메이커'들이었다.

이들은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 지도자들의 예방을 받는가 하면 최소한 개별 환담 정도는 도출해내는 등 종교문화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한 축으로서 대접받았던 인물이다.

이들의 속성은 과거의 행적을 통해서도 예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5.16 '혁명' 당시 군부 쿠데타의 적절성을 알리기 위한 교회 지도자 방미 홍보단의 행동, 10월 유신 선포를 반대하는 진보적 목회자들에 대한 보수 목회자들의 반대 성명 행태, 전두환 장군을 위한 롯데호텔 기도회, 김영삼 장로 대통령 만들기 운동 등등 때마다 반역사적 행태를 자행한 목회자와 그의 후견인의 상당수가 11일 집회의 주축 세력들인 것이다. 또한 교회내 부정한 세습과 재정비리, 도덕적 결함 등의 시비를 얻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날 집회에서 주최측이 강조했던 부분은 이렇다.

"주한미군은 우리를 도와줬던 혈맹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만한 경제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을 과도하게 자극하는 '촛불시위'는 자칫 주한미군의 철수를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이 이 나라를 떠나면 북한의 침략이 가능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나라는 공산화가 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도 '무력 도발'의 자제를 종용받고 있는 북한이 터트리면 자멸할 것이 뻔한 '전쟁'을 자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초보적 정세분석도 없는 감정적 호소가 다분한 것들이다.

논의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왜 이들이 한국교회의 명예를 담보로 이런 기괴한 모험을 피하지 않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교권'이 침탈받아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한국교회 보수층 목회자들의 '상실감'은 유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선거가 임박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해 조용기 목사와 환담하는 등 이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인 점을 생각한다면 '노후보 당선'에 대한 수구적 기독교계의 충격은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노무현 당선자의 행보를 가리켜 '포퓰리즘'이라느니 '미숙한 내부조율' 등을 들먹이며 취임 이전부터 '흔들기'에 진력하고 있는 소위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주요 일간지들의 행태와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투명한 재정 및 인사 관리에 있어서의 '청탁' 근절 등의 '탈 특권성'은 결국 종교를 방패막이 삼아 특권을 누려왔던 현 기독교계 내 교권주의자들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성직자라는 명목으로 온갖 사회적 특권을 누려온 이들에게 '노무현'이라는 화두는 부담감을 넘어서 적개감 그 자체였던 것이다.

또한 내외에서 닥쳐오는 '교회 개혁'에 대한 당위와 외침으로부터 자신의 입지마저 빼앗길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들의 절박감은 '생존위기'와 진배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들 희준씨의 언론사 탈루죄와 '음란신문' 발행에 대한 내외의 도덕적 시비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조용기 목사와, 간통혐의를 부인하다가 위증죄로 걸린 김홍도 목사의 경우 특히 '개혁 대상'으로 고착돼가는 자신의 입지에 대한 고민이 남달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이들이 마지막 자기 보호 수단으로 택한 것은 '대규모 군중 동원 집회'였다. 70,80년대 여의도공원(구 여의도광장)에 각종 전도집회 등으로 100만에 가까운 인파를 모아 짜릿한 세과시를 누린 바 있는 이들에게 11일 시청앞 광장 집회는 '전가보도'와 같은 것이었다.

결국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주축으로 모은 8만명 집회의 성사는 나름의 수확이 있었다는 자평 속에 이들은 '우리의 힘(교권)을 무시하지 말라'라는 무언의 메시지 역시 전달됐을 것으로 기대감으로 한층 고무돼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을 등에 업고 말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준동'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날 모인 8만명 동원의 '요체'는 그런 의미에서, 지난 97년 김홍도 목사의 비리를 다룬 MBC <시사매거진 2580>이 방송을 통해 송출되자, 김 목사가 담임하는 금란교회 교인들이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앞을 점거했던 그 '탄탄한 결집력'이다.

일부 대형교회와 이 교회의 사실상 '오너'와 다름없는 상당수 수구 교권주의자들의 이같은 행태가 반드시 한국교회 전체의 의견으로 오도돼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파 중 최대의 교단으로 평가되는 합동측 총회장 한명수 목사(수원 창훈대교회)는 '남-남 갈등의 요인이 있다'며 행사 순서에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참의사를 강하게 피력해 화제이다. 게다가 교회 내 개혁적 언론을 표방하는 <뉴스앤조이> 사이트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는 내용의 비판성 글들이 연달아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결국 이번 8만 집회는 표면적으로는 교계 기득권세력들이 한국교회의 보수적 정서를 자극해 일으킨 행사라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개혁세력과의 정면 충돌을 예견하는 대목이다.

수구 기득권 정치 세력이 몰락하고, 황제식 재벌 경영이 필연적으로 재편되며, 반역사적 논조로 비판받는 수구언론이 그 영향력을 점점 잃어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개혁 대상'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이들 수구 교권 세력들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더욱 입지가 좁아지는 '자충수'로 향해가고 있다는 평이다.

게다가 이날 모인 8만명은 '자발성'이 대부분 결여돼 있어, 결국 '조직력'으로 선거를 치른 한나라당의 패착을 닮고 있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촛불시위'만큼의 사회적 파장은 없다는 점은 주최측이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한편 이날 행사장 주변을 지나던 한 운전기사의 말로 이 글을 가름하려 한다.

"기도를 하려면 자기 교회당에서나 하지, 왜 이 막히는 토요일 시간에 번잡한 대로에 나와서 하는가. 불우이웃 도울 돈으로 크게 지어놓은 교회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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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라디오와 FM, KBS1라디오에서 뉴스 브리핑을 담당하는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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