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문화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 부분 소멸되거나 왜색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된 문화식민화 전략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토대까지도 철저하게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때 말띠인 여자를 ‘드세다’느니, ‘팔자가 세다’느니 하면서 결혼 상대자로 꺼리는 현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연세 지긋한 분들은 그런 미신 같은 관념을 가지고 여자를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것이 우리의 문화가 아닌 변질된 왜색문화임을 알 수 있다. 그 실례로 조선시대 왕비의 띠를 살펴보면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인조의 비 인열왕후, 효종의 비 인선왕후, 현종의 비 명성왕후 등 모두 말띠 해 태생 왕비들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말띠인 사람이 팔자가 세서 결혼 상대자로 부적격하다는 말은 통용되지 못하였다. 만약 말띠인 여자의 팔자가 드세다는 통념이 당시에도 만연해 있었다면 그처럼 엄격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던 왕비 간택에 있어서 말띠인 여자는 아예 번외로 밀려났을 것이다.
이러한 말띠 여자에 대한 지독한 편견은 일제 강점기에 이입된 변질된 왜색 문화이다. 일본에서도 십이간지 띠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스포츠 신문에 보면 ‘오늘의 운세’처럼 등장하는 것들이 일본의 신문에도 비슷하게 설명되곤 한다. 그리고 특히 말띠인 여자는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심하게 평가받곤 한다.
일본에선 말띠 태생 여자는 성격이 온순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잘 덤벼들며, 특히 병오년(丙午年)에 태어난 여자는 남편을 죽일 정도로 성격이 포악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말띠 해에는 여자아이들의 출생률 떨어진 것처럼 일본에서도 병오년에는 출생률이 떨어졌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말은 신격화되어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영험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를 창건한 박혁거세의 탄생 설화에서도 말은 그 찬란한 탄생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토속신앙에서도 말은 신장(神將)으로 우리 곁에서 늘 굽어 살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직까지도 전라도 지역 마을에서는 철마나 목마 혹은 석마 등이 신물로 모셔지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말띠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버려만 할 것이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센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용기의 분출로 늘 생동감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의 마(馬)문화 이야기 연재물은 앞으로 약 5편의 기사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후 연재물은 마상무예, 재활승마, 조선시대 말그림, 말의 생태 등입니다.
취재에 협조해주신 마사박물관 김정희 학예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몸철학과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ce.ro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