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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이 역 광장에서 한 선교단체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점심을 들고 있다.
ⓒ 남소연

을유년 연초 경제계 최대의 화두는 '양극화'로 모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첨단과 재래,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개별 경제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에 힘입어 지난해 5%라는 비교적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내수소비는 극심하게 위축돼 양극화되고 있는 현상은 규모의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 단절되고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리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양극화. 이를 확인시켜 주는 통계지표들이 지난 연말부터 속속 발표되고 있어 현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사회 다방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가 저소득층의 양산, 즉 빈곤화로 귀결된다는 것이 정설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걱정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국민계정 주요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2003년 59.7%로 통계가 확보된 18개국 가운데 15위를 차지할 정도로 낮게 나타났다.

노동소득분배율

 

 

한국

캐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2002년

58.2

72.4

71.4

72.4

72.9

72.6

57.2

2003년

59.7

70.5

70.5

71.5

72.2

73.3

58.0

 

ⓒ 한국은행

노동자 분배몫 줄어들고, 지니계수는 그대로...일자리 양극화도 진행

노동소득분배율이란(share of labor income) 국내총처분가능소득(GNDI)에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낮다는 의미는 그만큼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 가운데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는 뜻이다.

임금 수준이 낮은 비정규직 등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비중이 확대되거나 임극격차가 과도하면 이 지표는 하락한다. 프랑스의 노동소득분배율은 73.3%, 독일 72.2%, 영국 71.5%, 미국 70.5% 등으로 모두 70%를 상회했지만 우리나라는 60%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2001년 62%를 기록한 이후 58.2%(2002년), 59.7%(2003년)를 기록하는 등 노동소득분배율은 60% 아래에서 맴돌고 있다.

소득불평등도를 단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니계수'도 예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2003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06를 기록했다.

0.306은 97년 0.283을 기록한 이후 0.320(99년)로 치솟은 이래 가장 개선된 수치이지만, 여전히 0.3대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평등도의 해소를 언급하기엔 이르다고 볼 수 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하고 분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자리의 양극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10년 기준으로 평균보수 수준이 상위 30%와 하위 30%의 일자리는 크게 늘어난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40∼70%의 일자리는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때문인지 절대빈곤율(최저생계비 이하 가구)도 99년(9.35%)을 정점으로 낮아지다가 2003년(6.13%)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 '부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청·정, 양극화 대책 2005 경제운영 방향에 담다...일각선 "여전히 부족" 비판도

[정부의 대응책과 비판]일단 청와대와 정부는 ▲근로소득보전세제 도입(EITC) ▲사회적 일자리 창출 ▲빈곤탈출 지원정책 등 사회안전망 계획을 '2005년 경제운용방향'에 담아 양극화 해소에 적극 대응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방안들은 이미 지난해 11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6회 국정과제회의에서 결정된 내용들이다.

특히 청와대는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위원장 이정우) 안에 양극화 대책 T/F팀을 별도로 구성할 정도로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동반 성장론'을 역설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T/F팀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부와 청와대가 양극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것"이라며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양극화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몇가지 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빈곤과 양극화를 양산해내는 최대의 빈곤 창출지가 바로 가계부채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는 2005년 경제운영방향을 정리하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별금융기관, 신용회복위원회, 개인회생 등 법적절차 등 기존의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 활성화'라고만 명시했을 뿐 획기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사소한 예를 들며 개선방안을 조언했다. 그는 예전 국민PC 사업을 진행하면서 중소업체의 PC를 적극 보급한 전례처럼 거대한 철학 하에서 움직이는 세부적인 실천방안이 제시돼야 했다고 말했다. 즉 정부의 양극화 극복방안이 거대담론의 제시에만 머무르고 있을 뿐 구체성을 띠지는 않고 않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극화 둘러싸고 성장·분배논쟁 2라운드 조짐

▲ 나성린(한양대 교수) 공공재정학회장
ⓒ 남소연
[또다시 불거지는 분배논쟁]이러한 가운데 양극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해법을 둘러싸고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 또다시 해묵은 논쟁이 벌어질 조짐이 일고 있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가 지난 3일 <문화일보>를 통해 양극화 심화현상을 성장·분배론과 결부시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나 교수는 '정부 경제 양극화 인식 잘못됐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양극화란 현상은 시장경제에서 항상 있는 현상이고 그것이 경제침체기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된다는 점을 모르고 양극화를 문제의 원인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극화가 원인이 아니라 경기침체가 원인이라는 것이 나 교수의 인식이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가 아니고 그 양극화를 사회 문제로 떠오르게 한 경제침체이고, 그 결과로 나타난 양극화 현상에 대한 우려는 경제성장과 활성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며 또다시 성장·분배 논쟁에 불을 지폈다.

나 교수는 4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성장은 분배를 낳을 수 있지만, 분배는 성장을 가져올 수 없다"며 "정부가 아무리 사회복지정책을 풀어봤자 가난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에 대해서도 그는 "메인스트림 경제학자들은 성장을 하면 불평등도가 낮아진다고 주장해오고 있다"고 소개한 뒤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잘못 알고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나 교수 주장은 팩트에 문제... 오히려 그 반대 결과 많다"

▲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 이종호
하지만 이같은 나 교수의 주장에 대해 '팩트' 자체가 잘못됐거나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수출기업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고 부유층의 소득은 늘어났는데 이를 전체적인 경기침체 상황으로 보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분배가 경제를 더 침체시킨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도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준경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과장은 "경제의 특정부문은 경기침체 상황이 아니며, 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돼 있다는 것은 팩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분배가 경기침체를 부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분배가 성장을 갉아먹는다는 말은 이념적인 얘기일 수는 있어도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며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 반대의 연구결과가 많다"고 했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나성린 교수 논리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 논리와 동일하다고 꼬집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정부재정으로 공공사업을 벌여봐야 물가만 오르지 실업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나 교수를 이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유 교수는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성장으로 어느 부분에서 고용이 늘 것이며, 그 고용이 양극화를 줄이는데 기여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전처럼 '성장이 고용을 창출해 내수를 견인한다'는 명제가 충족되면 몰라도 지금은 성장과 내수간의 '단절'이 발생한 상황에서 성장만 주장한다고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도 나성린 교수의 인식에 답답해했다.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본부장은 "성장과 분배를 떠나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에서의 (카드채·사채 등) 고금리가 약자인 서민층을 집중공략하고 있다"며 "이것이 현재 서민층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양극화 대응방식에 대해서도 이 본부장은 부정적이었다. 이 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동반 성장론'을 얘기하는데 그전에 이미 한쪽에서 사회의 거대한 기둥을 허물고 있는 고금리 약탈 체제를 놔두고는 이 나라의 불경기와 빈부격차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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