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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역 맞은 편의 한 건물. 빽빽한 광고물들이 학원가임을 말해 준다
ⓒ 나영준
청년실업 인구가 40만 명을 넘어서면서 OECD 회원국 중 청년실업자수 2위 국가가 됐다는 현재. 실업은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업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제는 이제 그들만의 문제를 넘어서 가정과 나아가 국가 경쟁력 차원에까지 이르게 됐다.

'취업고시'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그 실낱같은 희망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속속 집결하는 곳이 있다. 사법고시를 제외한 모든 시험 준비생들이 모여든다는 곳. 지난 21일부터 일주일 간 대한민국 대표 학원가라고 불리는 노량진을 찾아가 그 속에서 땀 흘리고 때로는 고뇌하는 이들의 희망과 고민을 들어보았다.

[사례1] "이제 와서 그냥 취직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 그는 인터뷰 내내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 나영준
서울의 한 사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CPA(공인회계사)를 준비하다가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채 고민만 하고 있다는 이아무개(남·30)씨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공을 들여 공부했지만 늘 잡힐 듯 빠져나가는 합격권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

"마약이에요, 마약. 이제 그만해야지 하다가도 또 시험 때만 되면 마음이 설렌다니까요. 지난번에 들어간 회사를 그냥 다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근데, 결국 때려치우길 잘 한 것 같아요. 언제 그만 두어도 관두는 거였으니까…."

이씨는 올해 초 규모가 작은 증권회사에 취직했지만 한 달을 갓 넘기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배가 부른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는 그는 "그럼 의사나 판·검사 되려고 공부하는 이들은 배가 터진 사람들이냐?"고 되물었다. 자신이 그리 무리한 걸 바라는 것은 아니라며.

그렇지만 솔직히 지금은 다시 수험서를 들여다볼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반복되는 생활의 연속이 지겨워 당분간은 머리를 식히고 싶다며 결국 다시 시험을 치르든가 아니면 '번듯한' 대기업이라도 가야 그만한 보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 이씨의 10만 원대 중반 고시원 방. 잠만 자면 되지 않냐고 되묻던 그의 표정이 서글퍼 보였다
ⓒ 나영준
"제가 다닌 학교와 졸업한 과나 다 그게 제가 들인 노력이기 때문에 제 위치에서 적절한 대우를 찾는 거예요. 또 아직 그만한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고요. 솔직히 3D 업종에 사람 없다고 방송에서 떠들어대는데, 그럼 그 사람들 보고 가서 일 하라고 그래요. 지들도 싫으면서 무슨…."

저녁식사에 곁들인 반주에 다소 취기가 오른 듯했지만, 술기운을 빌어 내뱉는 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개한 고시원 내부에 들어서자 지친 삶의 냄새가 훅 하고 몰려왔다. 텅 빈 책장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책들은 따로 독서실에 처박아 두었노라고 히죽 웃는 그의 얼굴이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사례2] "임용고사 준비중이지만 다른 쪽도 대비를 해놓아야지요"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역과 연결된 육교를 내려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이들이 학원의 홍보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이다. 공무원시험에서 교사 임용, 경찰직, 자격증, 편입, 각종 고시, 재수학원들…. 그야말로 '학원의 메카'라는 느낌이 와 닿는다. 그 쪽 구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학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교사 임용고시를 2년 째 준비중이라는 박아무개(여·24)씨가 다가왔다.

▲ 역을 나서면 학원의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이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 나영준
수도권 한 대학에서 수학과를 졸업했다는 그녀의 고향은 부산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처럼 노량진에 거처를 마련하지 않았다. 적어도 잠자는 시간만큼은 시험 분위기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활은 어떠세요?"
"그야말로 시계추죠. 아침 일찍 자습실(독서실)에 자리를 잡고, 시간 되면 학원에 갔다 와서 밥 먹고 다시 공부하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오히려 규칙적인 생활 덕에 살이 쪘다고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큰 스트레스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합격에 자신이 있냐고 묻자 금세 얼굴이 무거워졌다.

"합격이요? 글쎄요…. 일단 하는 거지요"라며 입을 연 그녀는 미발추(미발령 교사 완전발령 추진위원회) 문제 때문에 걱정도 되고, 평균 10 : 1을 넘어서는 경쟁률에도 가슴을 졸이게 된다고 한다.

이어 "사실은…"이라며 따로 시간을 내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원래 하던 전공이 아닌 조금 '특별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지면에는 밝히지 말 것을 부탁했다) 아무래도 임용고시가 합격 보장이 안 되고 있는 만큼, 다른 쪽으로의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놨다.

"대학 졸업하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는 것도 죄송하죠. 학원비도 그렇고(과목마다 차이가 있지만 6만~20만원 사이), 제가 지금 다니는 독서실은 잠도 안 자는데 한 달에 10만원이나 해요. 더 싼 데도 있긴 하지만, 다 돈 값을 하니까요 그나마 이 곳 식사는 괜찮아요."

▲ 학원생들이 많이 찾느냐는 질문에 주인은 그저 웃으며 자리를 비켜섰다
ⓒ 나영준
박씨는 노량진 밥집은 식권 한 장 값이 1500원~2000원일 뿐더러 집에서 먹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밥이 잘 나와서 군살도 붙긴 했지만 시험에만 합격하면 다시 대학 때의 몸매로 돌아가겠노라며 웃어보였다.

[사례3] 전문대 출신의 고뇌 "이젠 제도권에 기대고 싶다"

수도권 한 보건전문대학에서 치기공과를 졸업한 29세의 박아무개(남)씨는 3년째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치기공소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취업이라기보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수치로 본 각종 시험 경쟁률

'296.2 대 1'과 '503.0 대 1'
2005년 9급 국가공무원 공채 중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직에 쏠린 지원경쟁률이다.

중앙인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17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한 2005년도 제47회 9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의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2125명을 선발하는 금년의 시험에 모두 17만 8802명이 출원하여 8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일반행정직은 부산지역 386 대 1 등 전 지역이 100 대 1을 초과하는 경쟁률을 나타냈다.

대학 편입의 경우, 작년 고려대학교 2학기 일반 편입에서 수학 교육과는 2명 모집에 86명이 지원했고 영어교육과는 1명 모집에 111명이 몰렸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2005학년도 서울시 중등(특수, 보건교사 포함)교사 임용시험 지원현황에 따르면 디자인공예 과목의 경우 2명 모집에 279명이 지원, 139.5 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고 보건직은 26명 모집에 1170명이 지원(45 대 1), 전과목 평균 21 대 1이라는 지원치수를 나타냈다.

게다가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경우, 미발추 문제와 유공자 자녀의 10% 가산점 문제까지 겹쳐 취업의 길이 첩첩산중임을 보여주고 있다.

경찰직의 경우, 2005년 일반순경(1차) 채용시험 원서접수 경쟁률에 있어 전북지방은 5명 모집에 400명이 지원, 8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서울의 경우도 304명 선발에 7120명이 몰려들어 23.4 대 1의 만만치 않은 지원 현황을 보였다. 여경의 경우에도 서울지역은 42명 모집에 1500명이 지원(35.7 대 1)하는 등 전국 평균 20 대 1을 상회했다.

바야흐로 취업전쟁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나영준
"생각해 보면 왜 그 때 재수를 안 하고 전문대학을 갔는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시대는 달라진다고,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 말들에 현혹된 것 같아요. 어렸었죠."

그래도 전문적 기술을 배우는 괜찮은 과를 나온 것 아니냐고 슬며시 묻자 분통이 터진다는 표정이다. 취직이 되면 뭐하냐는 거다. 치과 원장들 눈치 보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던 그는 바쁜 건 둘째치고 그만큼의 임금이라도 받았다면 결코 그만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자신은 의료계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기술자였을 뿐, 아무리 열심히 해야 결코 의료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전문대 출신은 전문대만큼의 대접밖에 못 받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딴 일도 해 보고 하는 일만큼의 대우를 해 주는 외국으로도 나가려고도 했고…."

박씨는 이제 와서 4년제 대학 편입은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선택했다고 한다. '연고, 빽, 줄' 등이 없어도 열심히 일하면 크게 무시하지 않는 직장을 갖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

"뭐랄까,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기보다 못 배운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싫더라고요. 그렇지만 여기서 벗어날 순 없으니까. 그 안으로 숨어들고 싶은 거죠. 그게 공무원인가 봐요."

노량진에도 '석사' '박사'가 있다?

역에서 가까운 한 경찰직 시험 대비 학원을 찾아가 봤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양재원씨가 오마이뉴스라는 이야기에 흔쾌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일반 순경을 지원하는 많은 이들이 이 학원에서 공부중이라고 한다.

양씨에 따르면 몇 명이라고 정확히 짚어내기 힘들 만큼 과거보다 지원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양씨는 "요즘은 아무래도 공무원이 가장 인기있는 직종 아니겠냐"며 "지원자 중 고학력자들이 많은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 어느 건물에도 학원은 있다. 사진 왼쪽이 기자가 찾아간 경찰 학원
ⓒ 나영준
"여학생들도 거의 대학 졸업자고요, 남자들은 군 제대하고 복학과 동시에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고졸자 같은 경우는 별로 없지요."

"청년실업자들에게 이런 여러 시험들이 대안이 될 수 있겠냐"고 물으니 양씨는 "인력낭비"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1년 정도 해서 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학원가에선 몇 년씩 공부하는 사람을 '석사, 박사'라고 자조 섞인 표현을 하기도 한단다. 아무리 본인들의 선택에 따라 하는 공부지만 국가적으로 보자면 그만한 '인력낭비'가 또 어디 있겠냐는 말이다.

그래도 수강생들의 열의는 대단하다고 한다. 서로가 경쟁자가 되어 내뿜는 열기가 만만치 않다고. 하지만 평균 20대 1이 넘어가는 경쟁 속에서 뒤처질 절대 다수가 걸어야할 길을 생각하면 쓴맛이 남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간 대학만 잔뜩 늘려놓아 취업난을 가중시켰다는 나름의 진단도 덧붙여졌다.

수험생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 '방송경험'이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아 주던 아주머니
ⓒ 나영준
발길을 돌려 식당가와 서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량진에 학원만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곳의 많은 수강생들에 기대고 살아가는 식당과 PC방, 숙박업소, 기타 유흥업소 등 여러 삶의 모습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 있다.

소위 '먹자골목' 이라고 불리는 곳에 들어서자 오코노미야키(일본식 부침개)를 파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기자가 포장을 들추었을 때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장사가 잘 된다는 주인 박종숙씨의 설명이 뒤따랐다.

박씨는 많은 이들이 식사를 위해 이 곳을 찾는다며 이 곳 학원가에 오는 사람들은 대입을 위한 재수생부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머리 희끗한 노인들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은 선 채로 먹지만 '아저씨'들은 쑥스러운 듯 싸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발길을 돌려 각종 수험서를 다루는 서점에 들어섰다. 복사와 제본 등 수험생들이 필요한 여러 일을 함께 하고 있었다. 요즘은 마감이 임박한 시험이 없는 때라 다른 때보다는 좀 덜 붐빈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 수험서로 가득 채워진 노량진의 서점
ⓒ 나영준
하지만 그건 일시적 현상일 뿐 연(年) 단위로 보자면 전체적으로 노량진을 찾는 각종 수험생들이 늘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귀띔이 덧붙여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점을 드나드는 발길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을 돌아나오는데, 10여 분 전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오코노미야키 집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인의 웃음이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어지는 모든 이의 꿈

취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 지방대 출신 수험생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지방대생의 절반은 편입시험에, 나머지 절반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과장이 섞였다고 하지만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 아침 일찍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 나영준
한 인문계열 출신의 시험 준비생은 오히려 이공계 때문에 인문계열 학생들이 역 차별을 받는다며 순수학문을 한 학생들을 백수 아니면 공무원 시험 준비로 내몰고 있다면서 현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이공계열을 전공한 학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량진의 아침은 수험생들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서러운 사연을 담은 발걸음들이 노량진 학원가를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그들의 '장밋빛 인생'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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