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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사람에게 약이 될 수도 또는 독이 될수도 있습니다.
ⓒ 박봄이
술술술!

많은 사람들이 이 술이라는 것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일생에서 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은 것도 아시겠지요? 종류도 수백 가지에 달하고 그 맛과 향 또한 다양합니다.

지금 저는 어제의 숙취를 몸속에 그대로 간직한 채 술에 대해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술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로 기억됩니다. 2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멋쟁이 할머니는 집에서 어린 손녀에게 먹일 음식을 만드는 것이 취미셨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여학생이 아버지에게 포도 1박스를 보내왔습니다. 그 당시 언더그라운드 쪽에서 음악을 하시던 아버지께는 여학생 팬들이 좀 있어서 집으로 선물이나 팬레터가 오곤 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집에서 재배한 포도를 좋은 것만 골라 담았다며 1박스 보내왔더군요.

"오빠 사랑해요. 제 영혼은 언제나 오빠와 함께 할 거예요"라는 검열이 필요한 편지와 함께…. (그 어린 나이에도 저는 아버지 팬레터를 검열했답니다. 제 맘에 안 드는 글귀가 있거나 동봉한 사진의 여인이 너무 예쁘다거나 하면 가차 없이 숨겨버리곤 했었죠.)

어쨌든 그 편지 없는 포도만 덩그러니 받은 아버지는 뭔가 미심쩍은 눈빛을 저에게 보내셨지만 어린 나이에도 딴청 부리는 법을 터득한 전 죄 없는 우리 집 강아지 벵구만 쥐어뜯고 있었답니다.

"우리 강새이 할매랑 포도주 함 만들어 보자"

할머니는 포도가 너무 많아 먹다보면 질리고 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하시며 옹기 하나를 하지고 오시더군요.

"요기 포도 알 하나하나 떼서 옹기에 담자. 우리 강새이 할매랑 포도주 함 만들어 보자."

햇빛 따사한 마당에서 할머니와 전 마주보고 앉아 포도 알갱이를 떼어 옹기 한 가득 담았답니다. 할머니는 한 가득 담은 옹기를 망사로 꽁꽁 밀봉을 하고 옹기 뚜껑까지 꼭꼭 닫은 후 벵구 집 뒤 서늘한 곳에 놓으시더군요.

그 주변을 오고 가며 포도가 담긴 옹기에 힐끔힐끔 눈길 주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우리 강새이 옹기 안에 들어가라."
"할매, 내도 술 만들라꼬?"
"므라카노."

할머니가 들어가서 밟으시기 엔 옹기가 너무 작았답니다. 저는 깨끗하게 발을 씻은 뒤 옹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몰캉몰캉 발가락 사이로 터져 나오는 포도알갱이들. 저는 그 순간 더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발끝에서 느껴지는 포도 알갱이의 꼬물꼬물한 감촉을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포도를 밟고 옹기를 다시 벵구 집 뒤로 옮기시더군요. 또 며칠이 지나고 이번엔 커다란 대야에 깨끗하고 커다란 삼베를 걸치시고는 옹기의 포도들을 걸렀답니다. 할머니와 전 포도즙이 새나가지 않도록 삼베를 잘 고정시키고 옹기에 조금씩 포도를 부어 손으로 부슬부슬 비볐답니다.

손끝에서 배어나오던 그 포도의 달짝지근한 향은 아직도 코끝에서 맴도는 것 같네요.

포도를 다 거르고 삼베를 걷어내니 큰 대야 안에는 검붉은 포도과즙이 찰랑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전 깨끗이 씻은 옹기에 과즙을 다시 담고 또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 후 동일한 작업을 한 번 더 거친 뒤 예쁜 유리병에 담긴 포도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이따금씩 마당에 나와 그 포도주를 드시곤 했습니다.

"아빠! 나도 뽀도주 마시게 해 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전, 할머니께 나도 한잔 마시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어린 것이 술 맛 알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잔에 담아 ‘보기만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무슨 고문입니까!!

유리잔에 담아 햇빛에 비춰본 포도주는 잔여물 하나 없이 영롱한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참 맑고 고왔습니다.

그렇게 포도주에 대한 사랑을 키워오고 있던 중 제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제일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시더군요. 왜 그땐 미미의 집이나 둘리 가방, 들장미소녀 캔디 운동화보다 포도주가 먼저 생각났는지…. 저는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아빠! 나도 뽀도주 마시게 해 줘!"

아버지의 황당해하는 표정이란…. 아버지는 크게 한번 웃으시더니 수염이 듬성듬성 나 까끌까끌한 얼굴을 제 볼에 부비면서 알았다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옆에서 그 대화를 들으시던 할머니도 그저 웃기만 하시더군요.

드디어 생일 날! 흙바닥에서 뒹굴다 나온 아이들이 참석한 성대한 생일잔치가 열렸습니다.

어른들께서는 음식을 챙겨주시고 아이들끼리 놀라는 말과 함께 나가셨습니다. 덩그러니 남은 아이들. 전 아버지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싶어 포도주가 담긴 병을 들고 나왔습니다.

제가 들고 나온 붉은 빛깔의 물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는 순진한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잔에 그 붉은 물을 담아 벌컥벌컥 마시는 것을 보고서야 너도나도 달려들기 시작했답니다.

첫 음주...그리고 이마에 난 영광의 상처

약 1시간 후.

마실을 돌고 집에 돌아오신 할머니께서는 마당 구석구석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기겁을 하셨습니다.

그토록 반듯했던 제 남자친구 민수는 벵구 밥그릇에 얼굴을 박고 있었고 반장으로서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은희는 나무 그늘 아래 있는 장독대 위에 발을 터억~! 올려놓고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습니다. 옆집 살던 기석이는 옷을 배까지 올리고 마루에 널부러져 있었다더군요.

그렇다면 저는?

그 당시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그렇습니다.

밥을 먹고 난 후라 목이 너무 탔던 나머지 시원하게 냉장되어있던 포도주를 아버지가 애용하시던 예쁜 유리잔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벌컥벌컥 마셨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쌉쌀하고 알싸한 향과 맛.

한잔을 다 마시고 나니 아이들이 달라붙더군요. 저는 아이들이 들고 있던 잔에 포도주를 가득 담아 주었습니다. 녀석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 모금 두 모금 마실 때마다 술잔을 높이 들며 “건배”라고도 외쳤던 것 같습니다.

두 잔을 마시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감기약을 먹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정신이 몽롱하고 온 몸이 간지러운 게 저리다는 표현이 어울릴까요? 그런 느낌이 하도 이상해서 팔뚝을 물어봤지만 별로 안 아프더군요.

하지만 가슴 속에서 뭔가 뜨끈뜨끈한 무언가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양 볼따구니도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드는 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어서기도 힘겨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아이들과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땅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번쩍! 하는 스파크와 머리 전체로 퍼지는 뻐근한 기분. 그 후 전 기억을 잃었습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마당에 이곳저곳에 누워 있는 아이들 가운데 낯익은 녀석 하나가 한쪽 다리는 마루 위에 올려놓고 얼굴은 마당에 내다 박은 채 엎어져 있더랍니다. 다름 아닌 저였죠.

사색이 되어 달려온 할머니. 술기운에 정신 못 차리는 저를 들어올려 얼굴을 보니 오른쪽 눈썹 바로 위가 시뻘겋게 부어올라 피 멍이 맺혀 있더랍니다. 얼굴 여기저기는 모래에 갈아서 울긋불긋하고요. 포도주를 한껏 마신 저는 방에서 마당으로 나오던 중 중심을 잃어 마루 아래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친 겁니다.

정신을 차리니 동네 아줌마들과 저의 첫 술벗들의 부모님들이 마루와 방안에 앉아 계시더군요. 거참, 요즘 같으면 우리 자식 버려놓는다고 유난을 떨 사람들도 있으련만 그 당시 어머니들은 이마에 상처가 생긴 제 걱정만하시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은 안하시고 멍이 빨리 낫는다는 연고와 쇠고기를 이마에 붙여주었습니다. 피멍에는 쇠고기만한 약이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후로 며칠 동안 저는 이마에 쇠고기를 얹고 허연 거즈를 붙이고 다녀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금주’명령과 함께요.

저의 첫 음주는 화려하고 아픈 상처만을 남긴 채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사회 음주문화...그야말로 요지경

물론 어린 시절의 첫 음주라 이마가 깨지는 실수를 저질러도 애교로 봐주셨지만 사회에 나오고 난 후 제 눈에 들어온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요지경이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문화입니다. 술 문화에도 적정한 선이 있으련만 '부어라' '마셔라'를 끊임 없이 외치며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옛 선비들은 풍류를 즐기며 자연을 벗 삼아 술을 즐기셨다고 합니다.
술 한 잔에 하늘과 땅 그리고 인생을 담아 소리 한 자락 뽑아낼 줄 아는 기생들과 함께 시와 풍류를 논하며 시름을 털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자신의 몸을 술에 내던지지는 않았습니다. 술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주지도 상처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마음 맞는 벗들과 술을 즐기셨다고 합니다. 술 맛을 아는 자가 인생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그 쓰디 쓴 술 맛을 혀끝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대가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가족들을 슬프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술과 벗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술을 대하는 이의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삶, 인생의 참 맛을 즐길 줄 아는 삶을 위해 건배!"

덧붙이는 글 | 1988년 어느 날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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