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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 며칠 전 습관성 클릭 질환을 보이며 이너넷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딴지일보>에 대해 글을 써보라는 연락이 왔다. 게다가 딴지체로. 오마이뉴스가 아니라 ‘오마이 갓!’ 이었다.

괄약근이 바짝 조여지고, 털들이 곧추 서는 게 느껴졌다. 딴지일보가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패러디의 왕 원조이며 산 증인이 아니던가. 게다가 '내공+구라+이빨' 등등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군상덜 아닌가.

▲ 딴지일보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깊쑤키' 누질러줘야 한다
ⓒ 딴지일보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는 만큼 솔직하게, 느끼는 만큼 공정하게 쓸 수밖에. 근데, 바뜨. 딴지가 이번에 이사를 하고 업뎃까지 겹쳐 도무지 정신이 없다며 취재에 대해 정중히 뺀찌를 건넸다. 직접 출동했더라면 직원들의 빤쓰가 삼각인지 사각인지 그 대세를 확인하려 했는데, 아쉽기 짝이 없다. 결국 서면 이너뷰로 대신하게 됐다. 참, 이너뷰이(interviewee)는 시포 기자다.

이 기사는 딴지체를 흉내 낸 (그런다고 얼마나 비슷할까마는) 글이다. 내용도 당근 편파적이다. 평소 딴지체에 심한 거부감을 느끼거나 오마이가 왜 이런 뻘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독자 제위께서는 편안한 맘으로 빽 스페이스를 쌔려 갈겨라. 글찮아도 골 아픈 세상, 눈까지 아플 필욘 없잖은가.

딴지, 그 출발은 패러디로

▲ 창간 호에 실린 사진, 썬데이 서울의 경쟁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 딴지일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도 이젠 알듯이 딴지일보는 98년 7월 조선일보를 패러디하며 그 시작을 열어젖혔다. 당시만 해도 칙칙하기 짝이 없던 텍스트 중심의 PC통신 화면에 쩔어 있던 이들에게 딴지의 비쥬얼(?)은 신선함이었다. 게다가 창간호에 축전을 보낸 '김데중' 대통령의(설마 진짜 보냈다고 착각하진 않겠지) 사진이야말로 딴지의 나아갈 길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첫 회부터, 조선일보를 좃선으로 맹글어 버리고 여러 정치인들을 사정없이 패대기, 아니 패러디하며 "뭐 잼 난 것이 없을까"하며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이너넷의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네티즌들을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헐레벌떡 뛰어 오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후 정치부터 사회, 문화 그리고 섹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급으로 패러디의 영역을 넓혀나가 독자 제위들에게 '딴지=패러디'라는 등식을 주입시키고야 만다. 물론 이 같은 일반의 인식에 대해 딴지의 시포 기자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 창간 초기(4호)에 실린 '김우쭝' 회장의 사진. 다소 마초적이란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딴지의 패러디는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 딴지일보
"먼저, 본 이너뷰이는 딴지일보를 대표해 발언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밝히고 시작하겠다. 패러디를 매체의 표현에 있어 여러 수단의 하나라고 간주하므로 특별히 추구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본지의 대문에 이미 선언했듯, 코미디에 싸이비, 루머메이킹에도 일조하고 있는데 유독 패러디에만 지향점을 두면 편애하는 게 되잖나. 본지, 공평하다."

어랏, 싶기도 하지만 일견 수긍 가는 답변이다. 시포 기자가 이야기한 문장 이거 맞지?

"본지는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중략) 우끼고 자빠진 각종 사회 비리에 처절한 똥침을 날리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중략) 본지의 유일한 경쟁지는 썬데이 서울…"

물론, 패러디가 딴지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치만 딴지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딴지를 있게 한 중요 아이덴티티인 것은 인정해야지 않겠냐.

‘한 방’, ‘일격 필살기’의 매력

딴지 얘네들이 갖고 있는 울트라 메가톤급 메리트는 한 방에 쇼부, 아니 끝내는 것이다. 작년 딴나라당 구캐우원들이 '환생경제'라는 심오한 연극을 공연하신 적이 있다. 알콜 없인 볼 수 없는 명작이었다.

▲ 딴지의 패러디는 글과 시각 양수 협공이다.
ⓒ 딴지일보
이에 대한 딴지의 평을 들어보자.

'이번 딴나라당의 '환장경제'는…(중략) 지난 박근혜 대표의 패러디에서 논란을 빚었던 인격모독과 성적비하 코드를 딴나라당이 대부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여당의 뻘짓을 야당이 오마쥬해 갖다 바치는…(중략) 한편 국내외 야동업계 관계자들은…(중략) '×' 얘기만 나오면 아주 좋아 죽네 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던 당 고위 관계자들의 모습으로 유추해 보건데 조만간 포르노 전면 허용에 대한 입법안 상정도 멀지 않은 것이 아니냐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귀두라인뉴스] 딴나라당 '환장경제' 성황리에 끝마쳐. 04.9.1.수요일

어때 깔끔하잖은가? 이것이 딴지가 가진 장점이고 패러디가 지닌 파괴력이 아닐까. 이외에도 2002년 6월 월드컵,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 사태 때도 딴지는 특유의 패러디 실력으로 네티즌을 이끌었다.

딴지가 추구하는 패러디는 어떤 패러디냐는 질문에 시포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 다만, 그간의 편집 회의를 통해 유추한 딴지 패러디의 기저라 한다면, 웃기거나 세련되거나 쯤이 될 수 있겠다. 여기서 세련됨은, 안 되겠으면 최소한 독자에게 지적 유희라도 안겨줘야 한다는 의미의 최저가치다. 웃기면서 세련되기까지 하다면 와따 되겠다."

그러나 이너넷 세상은 무척 빨리 변한다. 이 때문에 딴지는 지금 과거 같지 않다.

▲ 謹弔 밑에 달린 'ㅅ' 자가 딴지적 특성을 보여 준다.
ⓒ 딴지일보
‘나라고 못할 소냐?’ 패러디의 세대교체

"현재 딴지일보가 초기 때만큼의 입지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유저들은 이제 스스로 정보 및 지식을 탐색해 내면화하고 재구성한다.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담론을 생산하고 자가유통 시키는 단계로도 진입했다. 딴지일보가 생길 무렵에 비하자면 격세지감의 변화다."

그렇다. 시포 기자의 말처럼 그동안 많은 환경이 바뀌었다. 이너넷이 옆집 뒷집, 울 동네 담배가게까정 깔린 것은 기본이고 많은 정보가 풀리며 네티즌들의 빠워 또한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쏘샬 인뽀매이션을 접하기도 그만큼 쉬워졌고 컴터의 여러 기능과 툴에 대한 숙지까정 높아진 것은 당빠다.

이제는 네티즌 본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각종 현안들에 대해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디시인사이드에만 가 봐라. 각종 합성에 능한 햏자들이 올려놓는 패러디물들의 수준은 어지간한 프로들의 뺨따구를 후리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가끔 두 눈이 헤까닥 디비질만한 패러디가 딴지의 똥꼬를 움츠러들게도 한다. 작년 탄핵 정국을 대표하는 한 장의 사진 '물은 셀프' 같은 것 말이다. 딴지 김어준 총수도 여러 정치인들 이너뷰에서 그 패러디를 언급하곤 했다.

▲ 탄핵정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은 셀프'. 패러디의 정수라 할 만하다.
ⓒ 딴지일보
또 미디어몹의 경우, 케비에쑤에 <헤딩라인 뉴스>를 팔아먹으며 슬슬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물론 그 구성원들 중 몇몇은 이미 딴지에서 각종 필살기를 구사하며 내공을 쌓은 초절정 고수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이렇듯 여러 패러디 사이트들이 인기를 얻는 것에 대한 딴지의 쿨한 답변은 이렇다.

"여타의 패러디 사이트들에 대해 딴지일보는 사실 별 시각이 없다. 화제작이 나오면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킬킬대며 즐긴다. 미디어몹은 지적한 대로 과거 딴지스들이 만든 곳이다. 이상을 많은 부분 공유하며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딴지의 오널, 그리고 낼은 ?

"딴지가 예전 같지 않느니…" "슬슬 맛이 가느니, 어쩌느니…"

딴지가 동의하건 안 하건 간에 그런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럴까. 물론 그동안 독자의 눈높이와 입맛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탓도 있다. 그들이 원하는 패러디 강도에 대해 딴지라고 고민이 없을 수야 있겠냐.

"이제 패러디는 개인이건 매체건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정착하고 있다. 당연히 패러디의 수준과 강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됐다. 문제는 딴지일보처럼 단일한 표현집단의 상상력이 네티즌 모두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거다. 네티즌 개개인이 필살의 역작 한 개씩만 내놓는다고 해도 그게 몇 개인가? 개인들의 표현 욕구를 수렴해 퍼뜨려 줄 수 있는 매체로의 고민이 딴지일보의 여러 고려 사항들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너부리 편집장이 만든 본지의 <포토구라피> 섹션도 그 고민의 하나로 마련된 것이다."

그랴, 많은 고뇌가 엿 보인다. 하지만 '수렴해 퍼뜨려 줄 수 있는' 요기가 쉽사리 동의가 안 간다. 딴지가 그간 패러디에 리더격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글치만 정말루 쌈빡하다면 어디에 올려두 네티즌들과 소통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약간의 헛발질 되시겄다.

실제, 네티즌들이 합성사진을 올리는 공간인 <포토구라피>에 가보면 하루 평균 한 개의 게시물도 안 올라온다. 그 안에 담긴 내공을 떠나서 말이다. 요거 뭔 말이냐. 굳이 딴지를 통하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단 것이다. 배려가 담긴 시도인 건 알지만 그보단 스스로 무공 단련에 힘쓰는 게 진정 독자들이 원하는 거 아닐까.

▲ 임상수 감독과 '뽕빨 이너뷰' 중인 김어준 딴지 총수. 현재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 딴지일보
"환경과 존재가 서로 유기적으로 자극을 교환한다는 점에서, 과거 딴지일보가 환경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을 축적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런 외부자극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반자극을 환경에 내놓는가에 따라 매체의 존재감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현 상황이 딴지일보의 미래를 위한 실험대인 것은 분명하다."

딴지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일부의 평가에 대한 시포 기자의 답이다. 솔직한 자기분석인 것 같아 심히 가슴에 와 닿는다. 외부적 환경 요인 그리고 다른 많은 사이트들이나 개개인이 표출해 내는 끝없고 기발한 상상력, 이런 것들이 딴지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됐으리라 본다. 그것을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것. 고것이 딴지에게 남겨진 몫 아닐까.

많은 독자들은 아직도 딴지의 일격필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김어준 총수가 "우리도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어젠다도 희미해지고 형식도 구태의연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 우리의 역할이 사라지면, 없어져야지"라고 하는 말을 듣곤 남 일 같지 않게 가슴이 따끔거렸단 말이다. 진짜다.

앞으로도 명랑사회 구현을 위해 깊숙한 똥침을 가열차게 날려주길 부탁드리는 바다. 힘내라, 딴지!

"뻘짓과 삽질들이 존재하는 한, 패러디는 계속 될 것"
기사에 나가지 않은 시포 기자 인터뷰 전문

본 기자, 치사한 편집이 없는 딴지 방식의 이너뷰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장 자체를 실으려 노력했다. 시포 기자와도 그렇게 약속했고… . 본문에서 소개하지 않은 나머지 서면 이너뷰 질문과 대답, 고대루 싣는다. 결국 토씨 하나 안 빠뜨렸다.

- 지금까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 딴지의 대표적인 패러디 몇 개를 꼽는다면?
"…" (쌩깠다. 이 질문에는 답변이 없었단 얘기다.)

- 일부 여성들이 딴지의 패러디가 '마초적'이라고 지적하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은?
"딴지일보는 생산자와 수용자 중 다수가 남성이다. 당연히 남성적 취향과 맥락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마초적'이라 정의한다는 전제 하에서, 개인적으로는 마초적 성향이 남성들의 본질에 가까운 획득형질이라 생각한다.

제 아무리 남자들이 젠더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태를 학습한다고 해서, 그들이 지구에 사는 동안은 마초 기질을 수정할 수 없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만약 세상이 온통 정치적으로 올바른 남자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거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나! 남성 개인들은 자신들의 마초 기질이 여성들에게 실제적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만 조절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매체 역시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는데, '조절'이란 측면에서는 좀더 세밀한 반성(reflection)이 필요하겠다. 이런 점에서 오히려 딴지일보는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꽤나 조심스러운 것 같다. 이로 인해서 여성독자가 소외감을 느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절 안 되는 마초 기질도 문제지만, 매사에 발끈하는 여성성도 문제라고 본다. 여자도 남자들의 화장실 담론을 관찰하고 "애녀석들" 참 지들끼리 신났네"하며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본 이너뷰이는 여자다." (이 대목에서 기뻐할 독자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참고로 시포 기자, 대빵 친절하고 명랑하더라).

- 글로 쓰는 패러디와 시각을 강조하는 패러디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텍스트 기반 패러디에 워딩(wording) 능력이 필수적이라면, 이미지 기반 패러디는 뽀샵 관련질이 중차대하겠다. 기본기의 내공 수준이 상상력을 간섭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모두, 창의력이 관건이라는 점에서의 기능적 차이일 뿐이다.

한편 전자의 경우, 오리지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더불어 오리지널에 비견되는 치밀한 형식 혹은 내용 구조를 가져야한다. 이러한 나름의 서사 구조 때문에 의사전달에 대한 부담‘감’은 이미지 기반 패러디보다 덜하다.

반면, 후자는 시각 이미지의 변형 내지는 조작을 통한 강렬한 임팩트 한방이 필요하다. 임팩트 한방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므로 어쩌면 텍스트 패러디보다 더 어렵다고도 느껴진다. 설명을 하는 이미지 기반 패러디는 썩 좋은 품질이 아니라고 본다."

- 인터넷 패러디의 원조로서 앞으로 패러디의 발전방향을 전망해 보자면?
"사회에 각종 뻘짓과 삽질들이 존재하는 한, 패러디는 계속 될 것이라 생각한다. 패러디는 생각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발명품도 아니다. 인간이 살면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모방, 흉내내며 조롱하는 것. 꽤나 익숙한 행동 양식이자 유희 아니던가?"(맞다. 이 기사도 어설프게나마 너네 흉내를 내지 않았냐)

- 이너뷰 때 빤스에 대해 꼭 물어 보는데, 딴지 직원들의 대세는 삼각인지 사각인지?
"그건 딴지 총수에게 물어보시길…."
(갠 적으로 느무느무 아쉬운 대답이다. 직접 취재의 가장 큰 목적도 거기에 있었거늘, 넘 했다. 시포 기자. 정녕 질문을 씹은 것이냐, 아님 총수에게 그 책임을 미룬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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