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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의 남자 친구인 아저씨가 우리집에 오실 땐 마을버스와 지하철 6호선과 3호선도 갈아 탄 다음, 양재에서 용인행 직행버스를 타고 세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우리집에 도착할 수 있다.

노인들이 계단을 오를 땐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불안하게 보일 정도인데 몇 시간을 버스에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올해 여든셋 노인에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닌 듯 했다.

난 아저씨가 짧지 않은 거리를 오가는 길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하여 늘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분당까지 오시면 모시러 가겠노라'고 했지만 누구에게도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아저씨는 '그럴 필요 없다'며 그야말로 '물 건너 산 너머' 먼 길을 혼자 찾아오시는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 다니던 때에는 아저씨가 퇴근 시간에 맞추어 회사로 오시면 퇴근길에 함께 집으로 오고, 돌아가실 때 역시 나와 함께 출근길에 서울로 나와 지하철 역에 내려 드리고는 했다. 그때 출퇴근길에 아저씨와 차를 함께 타면서 나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총총한 정신에 사리가 밝으신 아저씨는 여든셋 노인답지 않게 몸도 제법 건강하신 편이고 정신도 놓지 않으려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는 의지가 강한 분이기도 하다.

아저씨는 자신이 살아온 젊은 날의 얘기며 자식들 얘기, 당신 부인의 얘기를 나에게 숨김없이 이야기 한다. 특히 아저씨가 젊은 시절 얘기를 할 때는 평소 조용조용하게 말씀하던 때와는 달리 그때 그 시절 열정이 그대로 살아난 듯 목소리도 커지고 힘도 넘쳐 보인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돈벌이를 꽤 크게 하여 돈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벌었다는 아저씨는 그 시절 꽤나 멋쟁이었던 모양이다. 일제시대를 살았기에 일어는 물론이고 중국어에 지금도 간단한 말을 영어로 자신 있게 할 정도로 다재다능하신 분이다.

돈이 너무 많아서 다락에 몰래 쌓아두고 어찌해야 할지를 몇 날 며칠 고민했다는 얘기하며, 그 돈을 사기당한 얘기, 죽다 살아난 얘기, 아이들 먹여 살리느라 죽기 살기로 일한 얘기까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역정 대하 드라마였다.

아저씨 자식들의 사는 형편이 어떤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가족사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물론 엄마와 어떻게 만나서 어떤 점이 그리 좋아서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지 등등. 아저씨의 얘기는 끝이 없다.

평소 말이 많지 않은 분이었지만 한번 말문이 터지면 거칠 것 없었고 시사 문제에도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그 수준 또한 만만치 않아 난 속으로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하셨다.

"늙은이들이 여든 살이 되면 국가에서 죽는 알약을 하나씩 줬으면 좋겠어. 한 팔십까지 살았으며 오래 살은 거지. 더 살면 뭐해. 늙은이들이 세상에 이제 애착가질 것도 없는데 국가에서 죽는 알약 하나씩 주면 자기가 죽고 싶을 때 딱 먹고 죽으면 깨끗하지."

아저씨의 '죽는 알약'이란 말에 '자살'이 연상되어 깜짝 놀라 말했다.

"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오래 사셔야지요?"

"아, 오래 살면 뭐해? 자식들한테 짐이나 되지. 나이 먹으면 할 일이 있나, 어디 갈 데가 있나, 뭐 재밌는 일이 있나, 살아도 살은 게 아냐.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늙은이들, 더 살면 뭐해? 지금 주변 늙은이들 보면 참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아저씨 말씀은 당신이 죽고 싶다는 말이기보다는 노인 문제에 대한 전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는 인간의 깊은 외로움이 묻어 나와 허무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늙음이란 무엇이기에 저리도 초연히 죽음을 만나려 하고 있을까?

아저씨같이 열심히 인생을 살고 또 지금도 강한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충격으로 과거 살던 동네 앞 집 할머니가 떠올랐다. 당시 여든이 넘은, 살이 제법 살진 체구의 그 할머니는 동그란 의자 하나를 대문 앞에 놓고 지팡이를 기둥 삼아 붙들고 앉아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식들이 모두 잘 살았다지만 아무도 할머니를 모시지 않아 그렇게 집 한 칸을 사서 반나절만 부르는 파출부를 매일 보내 식사를 챙기게 하고는 자주 들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땐 그 할머니가 그렇게 오랜 세월 대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할머니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일없이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림처럼 할머니는 그렇게 몇 년을 대문 앞에 앉아만 계시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돈이 필요한 자식이 그 집마저 팔아 쓰기 위해 할머니를 모시고 갔다는 후문만을 들었다.

할머니야말로 죽기를 기다리듯 삶의 기쁨이나 낙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던 할머니가 그 앞을 지나가다 인사라도 하면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을 수가 없던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의 인사 하나에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할머니는 어쩌면 죽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자식들의 사랑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초점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 눈빛이 내게 슬픔처럼 떠올랐다.

난 치매에 걸려 아기로 변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며 또, 팔순 노인인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늙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병들고 힘없는 노인이지만 아저씨나 엄마 그리고 앞 집 할머니에게도 모두 화려한 젊은 시절이 있어 사랑과 좌절 그리고 세상을 호령하고도 남을 만큼의 패기가 있던 우리들과 똑같은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어 두려움과 겁이 많아지는데 나이 먹어 젊은 시절이 그리운 건 그때의 성공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가는 의지와 용기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저씨가 과거 자신의 얘기를 할 때 힘이 넘쳐 즐겁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록 거칠 것 없던 젊음과 풍채 좋은 모습이 모두 사라지고 나약하고 소심한 노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쳐 자식들의 젊음을 꽃피게 해 주신 우리들의 부모란 점이다.

그러한 그들이 이제는 오라는 이, 가라는 이 없는 할 일없는 '늙은이'가 되어 죽을 날만 기다린다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내 자식을 위해 하는 것의 10분의 1만 부모에게 마음을 써도 효도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내 새끼 열 번 안아줄 때 나의 부모 손 한번 잡아 주고, 내 새끼 닦고 씻어줄 때 손톱 한번 깎아드린다면 부모님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하며 살아야 할 의미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간단한 일들이 엄마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너무 늦게까지 알지 못했던 나쁜 딸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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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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