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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터지자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은 집안에 있는 금붙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신혼 패물부터 상으로 받은 금메달까지 모아 '귀한' 달러를 사서 망해 가는 나라를 살렸다.

그러나 지금 서민들의 삶은 나아졌는가? 미국의 금융자본들은 번듯한 빌딩, 우량 금융기관,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였다가 비싼 값에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기고 있다. 서민들이 금 모으기를 할 때 가격이 폭락한 아파트와 땅을 산 투기꾼들은 그 뒤 폭등하는 부동산을 팔아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외환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자유를 만끽한 재벌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 세계화와 그 불만
ⓒ 세종연구원
생존의 고통 속에서 서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지만, 소위 경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전문적'인 용어와 '권위'로 치장하며 정치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춤을 춘다. 미국 금융기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과 세계경제기구들, 재벌기업과 결탁된 수구 언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의 아전인수 식의 목소리들은 넘쳐나지만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정부의 해결책은 뚜렷한 경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여러 이해집단의 목소리를 해명하기에 급급하다. 부족하지만, 최근의 나온 몇 권의 책을 통해 한국경제 위기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 보았다.

'국가-금융-재벌'의 삼각 구도를 통해 고도 성장하던 한국이 IMF를 비롯한 경제위기를 겪게 되는 배경에는 냉전시대의 해체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든 선진국의 세계경제 지배전략이 있다. 90년대 초부터 국민소득의 증대에 따른 세계적인 역할의 변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통해 국민 의식의 변화는 김영삼 정부의 선진금융체제를 선택하는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금융자유화, OECD가입을 밀어붙여 취약한 경제구조와 일련의 정책의 실수들은 재벌들의 방만한 사업 확장을 불러왔다. 결국 재계 7위인 기아를 비롯한 재벌의 위기에 적절한 수단마저 상실해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 10년 후, 한국
ⓒ 해냄
내부적인 문제와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투기자본의 개입으로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영·미 금융자본의 방관, 혹은 은밀한 개입을 통해 급속한 외화유출을 일으켜 한국이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선언하기 직전으로 몰고 갔다. IMF라는 응급처방을 받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사활을 걸고 미 재무장관과 IMF 총재에게 로비를 하였으나, 요구 조건은 가혹했다.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내건 고금리 체제 및 긴축재정, 해외투자 개방은 이전에 국가-금융-기업체제 하에서 있던 한국경제체제의 부실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부채 비율이 높았던 기업들의 줄도산과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부실화, 담보 물건이었던 부동산 가격의 폭락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을 정부도 알았다. 하지만 대외신인도의 하락과 외평채 금리의 급격한 상승으로 해외부채에 시달리고 있던 정부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는 나중에 IMF에서 은근슬쩍 인정했듯이 잘못된 처방이었고 이로 인해 국내 자산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금융자본의 휘하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스티글리츠의 책 <세계화와 그 불만>(세종연구원)에 나오듯이 개발도상국의 고유한 발전의 원리를 무시한 채 영·미식의 선진금융체제의 구축을 강압적으로 도입한 것은 IMF가 전세계가 아닌 최대 금융 투자국 미국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기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IMF의 또 다른 요구 중의 하나인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정리해고의 광풍을 몰고 오면서 수많은 직장인의 해고와 더불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이로 인해 대기업들이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희생양이 되었다. 이후에 도입되었던 신용카드의 보급 장려와 부동산 규제완화는 유동자본의 증가를 통한 내수경기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오히려 신용불량자 양산과 부동산거품을 초래하여 경기침체 장기화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 사다리 걷어차기
ⓒ 부키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를 바라보는 재벌-기득권-우파의 입장은 대부분 경제적 논거를 이탈해서 정치적 이슈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전경련과 메이저 언론, 그리고 우파경제학자들의 얘기는 하나같이 현정부의 정책이 '좌파적'이기 때문에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내거는 처방의 이면에 있는 논리들은 박정희 당시의 개발독재식 국가의 경제 개입, 신자유주의 만능주의, 산업자본에 대한 규제완화 및 정부의 지원선호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공병호 박사의 <10년 후, 한국>(해냄)은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당위와 같이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문제는 진보 진영이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여 대립이 강화되고, 자본 이탈이 가속화 되어가기 때문에 10년 후 한국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들의 주장은 대부분 규제 완화와 정부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편으로 보수단체들은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부의 강한 통제력은 거부하는 모순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학계 일부의 시각에서도 국가-금융-재벌의 삼각구도로 편성된 '대체개발'형 발전전략이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부키)에서 선진국의 위선적인 세계화 전략을 비판한 장하준 교수는 신장섭 교수와 공동으로 저술한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창비)에서 저개발국에서는 산업금융의 지원을 통한 정부의 지원이 선진개발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기는 재벌의 집중화와 낮은 이윤과 높은 부채 구조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냉전시대 공산국가와의 대결 구도에서 일국의 이익 중심으로 이동한 세계적인 경제체제 하에서 OECD 가입국이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에 대해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보호 장벽이 허용될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최근에 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유수기업에 대한 반덤핑 제소, 보호주의적 관세부과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사실로 봐도 그렇다.

▲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무엇이 문제인가
ⓒ 창비
한편으로는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디플레이션 속으로: 성장신화는 끝났다>(이콘)에서는 높은 유가로 인한 위기와 중국의 거품 붕괴, 미국의 엄청난 재정적자가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노령 인구의 확산과 신생아 출산율 감소, 민주화 과정에서 기득권 집단의 반발로 인해 발생한 갈등의 증폭도 한몫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인이 몇 권의 책을 통해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해 언급하기에는 힘든 일이지만, 논의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실질적인 고통이 고려되지 않고 있음에 대해 어줍잖은 반론이나마 필요해 보인다.

먼저, 노동의 유연성으로 생산단가를 낮추려는 노력이 장기적인 기업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현대자동차가 모토로 내세우는 '도요타 따라잡기'가 힘든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모든 부분에서 기술혁신을 하는 혼연일체화된 기업문화를 들고 있다.

평생직장의 보장, 임직원 연봉이 노동자의 3배 이내로 제한하는 풍토에서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생산성은 시간적인 강제를 통한 낮은 생산성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동의 해소를 위해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동결 등의 협력도 필요해 보인다.

▲ 디플레이션 속으로
ⓒ 이콘
두번째는 소수의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 편중의 해소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품 및 원천기술을 일본과 미국에서 사다 쓰고, 낮은 단가로 하청업체에 물품을 수주하는 방식의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소비층의 약화 및 고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고급기술의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이 10년 동안의 경기침체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원천 기술을 가진 부품, 가공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급기술 노동자와 세계적인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신기술벤처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재벌기업들의 계열사 편법 지원, 저가 중심의 수주에 대한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세번째로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을 통한 비생산적 비용의 감소와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9%에 달하는 물류비용의 해소를 위해서도 전국의 균형발전은 시급히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인다.

네번째로는 열악한 근로조건을 이용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 투기자본이 소유한 금융기관,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 정치권에 줄대기 위해 수십억의 불법정치자금을 내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과 같은 국민의지의 표출이 필요해 보인다. 친환경기업, 공익적 활동을 강화하는 기업, 투명하고 깨끗한 기업에 대한 긍정적 국민운동이 병행된다면, 기업중심주의의 기업문화가 조금씩 바뀌어 가지 않을까 싶다.

디플레이션 속으로 - 성장 신화는 끝났다

홍성국 지음, 이콘(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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