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대 제이슨>이 국내 관객에게 선보인지 일주일만에 폴 앤더슨 감독의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국내 개봉이 늦었을 뿐 <프레디 대 제이슨>이 지난해 제작된 영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대전 영화의 연이은 등장에 어리둥절 할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간에 이 멋진 프로젝트들을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사실이다.

ⓒ 이십세기 폭스사
에일리언과 프레데터의 대결은 마치 프레디와 제이슨이 그러했듯이,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스티븐 홉킨스의 90년도 작품 <프레데터 2> 를 보면 프레데터의 우주선 안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는 에일리언의 두개골을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수많은 호사가들에 의해 두 캐릭터가 한 영화에서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소문으로 증폭되었으며, 비디오 게임과 코믹스들을 통해서 발빠르게 실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존 맥티어넌 감독은 <에일리언 2>(1986)의 엄청난 흥행에 고무받아 적대적인 외계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친히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자문을 구하여 몇 가지 아이디어를 참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작된 존 맥티어넌 감독의 <프레데터>(1987)에 등장하는 괴물의 얼굴 디자인은 그들의 대화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들은 HR. 기거가 디자인한 에일리언의 머리가 남성의 성기를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프레데터의 얼굴을 여성의 성기 모양에 기반하여 만들어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우리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에 내재되어 있는 젠더 투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철저하게 여성성이 결여되어 있는 본능적인 사냥꾼 프레테터와는 달리, 에일리언은 수태가 가능한 여왕이라는 여성성을 중심으로 뭉쳐진 포식자 집단이다.

프레데터가 병들거나 약한 상대는 죽이지 않는 웨스턴 영웅의 마초적 행동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한편, 에일리언은 번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본능의 생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두 생물체는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행동 양식을 통해서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한 에일리언과 프레데터의 강한 개성과 뚜렸한 정체성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괴물은 항상 영화의 성공으로 귀결된다"는 트뤼포의 말이 다시 한 번 입증된다.

ⓒ 이십세기 폭스사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포'를 통해서 외부로부터 유입된 타자에 대한 경계심을 영화적 메타포로 활용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괴물들의 모습을 빤히 드러내보인다.

<프레디 대 제이슨>에서와 같은 이러한 설정은 폴 앤더슨 감독이 관객에게 '두 배의 공포'가 아니라, 속 편하게 '두 배의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이들 캐릭터에 20년 넘게 아낌없는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준 팬들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이며, 동시에 온전한 상품으로서 두 괴물 캐릭터가 스펙터클한 대결을 보여주는 순수 오락 영화이다.

그러나 <프레디 대 제이슨>의 경우처럼 골수팬들의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거의 막가는 수준의 파괴적인 내러티브를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가 <프레디 대 제이슨>과 달리 상대적으로 대자본이 유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 프로젝트는 시종일관 '안전선' 안에 머무르면서 안일한 내용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탐사대의 구성이나 유적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갈등들은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여기에 각각의 시리즈들에 등장하는 익숙한 클리셰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단서들의 해결점들은 언제든지 간편하게 제시되며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어 긴장감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분명히 즐거운 영화이다. 이 두 캐릭터가 만나서 벌이는 전투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으며, 에일리언과 프레데터가 서로 마주보는 몇몇 장면은 가슴이 뜨끔할 정도로 기괴한 장관을 연출한다.

정확히 18년만에 다시 등장하는 퀸 에일리언의 모습 또한 그 시절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요소이다. 또한 이 작품은 에일리언 시리즈에 끊임없이 등장했던 '웨일랜드 산업'이 애초에 어떻게 이 생명체와 조우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면서 일종의 프리퀄적인 성격마저 부여받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웨일랜드 산업' 의 창업주 '찰스 비숍 웨일랜드' 는 <에일리언 2>에 등장하는 인조 인간 비숍의 원형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며, <에일리언 3> 에 등장하는 회장의 선조이기도 하다.

이러한 재기발랄한 설정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장르적 쾌감을 맛보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물론 광적인 시리즈의 팬들에게도 멋진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이십세기 폭스사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상상력이 고갈된 할리우드에게 있어서 가장 시기적절한 사업 아이템의 산물이다. 비록 안일한 내용 전개와 억지로 짜 맞춰 놓은 듯한 내러티브의 한계점은 뚜렷하지만,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기획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바톤은 볼프강 패터슨 감독의 <슈퍼맨 대 배트맨> 으로 넘어갔다. 아무쪼록 <슈퍼맨 대 배트맨>은 앞의 두 선례를 참고 삼아서 좀 더 영리한 작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04-09-03 10:44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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