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피랍된 김선일씨 살해 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를 표하고, 정부의 책임론이 대두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4일 정부는 김씨의 살해 장면이 담긴 동영상 유포를 막기 위해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에게 해당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를 내렸다.

이것은 형평성 및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불합리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과연 올바른 행동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들이 고 김선일씨의 동영상을 하나의 '볼 거리'로 여기는 것은 '김선일씨를 두 번 죽이는 것'과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고 안 보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원천봉쇄를 한다고 해서 해결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 오른 자료 유출을 막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김선일씨 동영상을 보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은 이미 메신저나 P2P 서비스 등을 통해 영상을 확보했을 것이며, 정부도 이러한 경우를 처음부터 예측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일부 사이트를 차단한 것은 국민의 분노를 성급히 달래기 위한 형식적인 조치, 혹은 파병에 대한 민심 변화를 예방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든다.

미국인 닉 버그씨나 폴 존슨씨의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이들이 살해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 유포에 대해 묵인했다. 그러다가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해서 관련 사이트 접속을 차단한 정부의 행동을 정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국민이 살해된 것이 더 충격적이고 슬픈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이러한 이중적인 기준을 정책적으로 이용,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국제 사회의 한 일원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민주국가의 정부로서 올바른 자세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발생한 문제는 그 구체적인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정부의 해당사이트 접속 차단 결정으로 김선일씨의 동영상 배포와 전혀 상관 없는 사이트까지 차단돼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몇 주간 blogs.com 과 blogspot.com 등의 블로그 사이트는 도메인이 통째로 차단되었다는 소식이 국내 곳곳에서 전해졌다.

지역 차이를 떠나 개인 블로그를 통해 활발하게 문화, 정치, 학술 교류를 해온 수많은 내국인 및 외국인들의 사이트가 김선일씨 동영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는데도 접속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허탈한 일을 당한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정서적 동요를 막고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 때 정부가 김선일씨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국민들에게 동영상의 배포를 스스로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 끔찍한 광경을 국민들이 보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성숙한 민주의식과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앞서가는 참여정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