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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진회 파문'으로 학교폭력이 문제 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기사 내용과 특정한 관계가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일진회? 중학교 때 공부 좀 못한 게 그렇게 큰 죄인가. 우리를 깡패로 보지 말아달라."

일진회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11일 오전 8시. 학교 교문에 막 들어서려는 김문규(가명. 고1) 학생의 말은 거칠었다.

김군은 또래 학생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자신의 교복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수근거리는 모습에 화가 난다. 김군이 다니는 A고등학교는 경기도 수원시의 변두리에 있다. 시내의 고등학교보다 학업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김군은 9일 일진회 파문 뒤 '너네 학교 일진회 많지?'라는 질문을 지겹도록 듣고 있다며 "A고등학교=깡패집단이라는 식으로 X같이 보지 말라"고 항변했다.

교복을 입고 등하교 하는 게 "쪽팔릴 정도"라는 것. 김군의 말에 따르면, 일진회 파문은 엉뚱하게도 실업계를 포함한 일부 '공부 못하는 학교'에 불똥이 튀고 있다.

엉뚱한 곳으로 튄 일진회 불똥

이런 김군의 말은 다른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의 말에서도 증명됐다.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 3명에게 일진회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들어는 봤지만 겪어보거나 보지는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학생은 "일진회 같은 건 공업고등학교나 좀 공부 못하는 고등학교에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만난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학교에는 절대로 그런 학생들 없고 폭력 사태도 없다"고 단언했다. 안양시에서 다른 곳보다 교육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국어를 가르친다는 한 중년 교사는 "여기는 공부를 좀 하는 학생들이다, 일진회 같은 건 좀 '떨어지는' 학교에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분위기는 일선 실업계 고등학교와 학생들을 위축시키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산의 한 공업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아무개 교사는 "편견과 오해로 학생들이 상처 받을까봐 염려스럽다"며 "학교 폭력의 공론화는 필요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만난 학생들 "뉴스 속 학교는 무협지 속 무림 같아"

▲ 학생들은 '일진회' 대신 일상적 폭력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학부모 총회로 수업이 일찍 끝났다는 고등학생 1학년 학생 5명을 오전 11시경 안양의 시내에서 만났다. 이들은 "뉴스를 통해 보면 학교폭력 실태가 꼭 영화 같다"며 "지금까지 들어본 이야기 중 가장 '쎘다'"고 표현했다. 특히 이들은 "집단 공개섹스를 했다는 소식은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라고 전했다.

김도영(가명)군은 "학교를 다니다 보면 가끔 싸우기도 하고 맞기도 한다, 그리고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돈을 빼앗겨본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군은 "그런 것들도 일진회라고 봐야 하냐"며 "요즘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보면 학교가 무협지 속 무림(武林)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조재일(가명)군도 "지금까지 살벌한 싸움을 본 적은 있지만 그런 애들이 일진회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어른들이 말하는 '일진회'와 우리가 생각하는 '일진회'는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조군은 "공부 잘하고 얼굴 잘 생기고 싸움도 잘하면 보통 '일진'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낮 12시경 서울 강남구 도곡동. 점심 시간을 이용해 학교 앞으로 나온 여학생들을 만나봤다. 중학교 2학년 장소연(가명)양은 "일진회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며 "요즘 무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감정적 대응 더 무서운 폭력배 키울 것"

도곡동에 살며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학부모 정혜정(42)씨는 "정세영 교사의 폭로는 의미 있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학교폭력에 대한 실태 파악보다는 흥미 위주로 가는 것 같다"며 "폭력은 나쁘지만 문제 학생들을 마녀 사냥처럼 대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아침부터 정오까지 4개 지역을 돌며 만난 학생 대부분은 일진회를 보지는 못했지만 존재는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일진회라는 '뜬구름'을 잡을 생각 말고 학교의 크고 작은 폭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양에서 만난 한 교사는 "학교 쪽에서는 학내의 불미스런 일을 감추기 마련인데, 그런 분위기가 아이들의 폭력을 더 키우는 측면이 있다"며 "'우리학교에는 그런 일 없다'는 학교쪽 주장은 믿을 게 못된다"고 꼬집었다.

도곡동에서 만난 수학교사 경력 20년의 김아무개 교사는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한계는 '문제아'에게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교사는 "경찰의 발표대로 엄격하게 처벌한다고 일진회라 불리는 아이들이 폭력에서 벗어날 것 같느냐"며 "경찰·언론·교육계가 '저런 죽일 놈을 봤나'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은 더 무시무시한 폭력배만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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