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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겨울.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에는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이 두 달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가자만 벌써 1천명이 넘었다. 오랜 배고픔과 함께 겨울의 찬바람을 비닐천막 하나로 이겨내고 있는 농성단. <오마이뉴스> 기자가 그들을 찾았다. 다음은 지난 20일~21일 1박 2일간 농성단과 함께 생활한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의 일일단식 동참기다...편집자 주

▲ 국회 앞 여의도공원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국보법폐지 천막농성장. 현재 18개 동에 1000여명의 단식자들이 매일 밤을 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2월 15일(수) 오전 10:00]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국민 단식농성당(단식농성단) 600여 명이 또 하루의 농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집회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때 차가운 겨울비가 내렸다. 농성자들은 하얗고 파란 비옷을 꺼내입었다.

그 대열에서 감잎차를 마시는 20대 젊은 여성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황임봉. 올해 스물여섯살. 부산여성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로 올라와 단식 농성단에 합류했다고 한다. 단식 열흘째를 맞는 황씨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배고픈 단계는 이미 지났고, 어지러워서 계단을 잘 오를 수가 없네요." 황씨는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당시 나는 단식농성단을 오전동안 취재해 기사 하나를 출고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황씨의 말 한마디는 당초 계획을 깨끗이 접게 만들었다.

열흘 동안 굶어 "어지러워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600여명의 사람들을 단 2시간 취재해서 기사를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단식농성단 일원으로 황임봉씨와 같이 굶으며 생활한 내용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일단식' 체험기라고 할까. 그리고 닷새가 지났다.

[12월 20일(월) 밤 11:00] 천막없는 '비닐농성장'

'일일단식'에 들어갈 맘으로 단식농성단 천막이 있는 여의도에 도착한 건 20일 밤 11시. 이날따라 겨울 바람이 더 매섭게 귓전을 때렸다. 우선 상황실부터 찾아갔다. "아까 연락드린 박상규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사를 쓰다가..."라며 첫 인사를 건넸다.

담당자는 "첫날이 가장 힘든데 이렇게 추운 날 와서 어떡하느냐, 오는 날이 장날이네요"라면서 침낭 하나를 건넸다. 침낭을 들고 노동자 단체 소속 농성자들이 있는 천막으로 갔다. 그러나 천막 농성장에 '천막'은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기 위해 농성장 사방을 둘러친 건 얇은 '비닐'이었다. 모두 18개 동의 '비닐농성장'에서 1천여 명으로 늘어난 단식농성단은 숙식이 아닌 '숙'만을 하고 있었다.

비닐농성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석유냄새가 확 몰려왔다. 모두 10개가 설치된 열풍기에서는 온기와 함께 매연, 굉음까지 나왔다. 곳곳에는 농성단의 빨래가 널려 있었고, 동 마다 하나씩 설치된 생수통 옆에는 소금과 감잎차, 마그밀(초기 단식 농성자들의 배변을 돕는 약품)만이 덜렁 놓여 있었다. 농성장 풍경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1시간여를 돌아다닌 뒤 잠자리로 돌아왔다.

[12월 20일(월) 새벽 0:30]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람들

배고픔과 추위에 지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소등이 된 천막은 어두웠다. 몇몇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여의도 공원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상황실에서 받은 침낭 속으로 몸을 넣고 누웠으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가 간다. 목숨 걸고 끝장낸다. 국가보안법 끝장내는 날 웃으면서 춤을 추리라". 벽에 붙어있는 '국보법 폐지 무기한 단식농성단의 노래' 가사를 보며 눈을 감았다. 이들이 웃으며 춤을 추는 날은 언제일까.

추위 때문에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 "모든 사람들이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단식 16일차 김기호(울산 민주노동당원)씨의 말이 실감났다. 추위에 심하게 뒤척였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말을 건넸다. "우리 추운데 같이 붙어서 잡시다." 그래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단식동지' 옆으로 바짝 붙었다. 따뜻했다.

"단식엔 기체조가 최고!"
교도소에서 익힌 기체조를 전수하는 박병규씨

▲ 농성천막 앞 아침체조 모습


22일로 단식 15일째를 맞고 있는 박병규(29)씨는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 교도소 생활을 할 때 익힌 기체조와 스트레칭을 단식농성단에 매일 아침 가르치고 있다.

박씨는 아침체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단식할 때 몸이 힘들다고 축 처져 있으면 몸이 더 빨리 상합니다. 기체조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는 단식농성단의 모습이 힘차게 느껴진다. / 정주용 기자


[12월 21일(화) 오전 7:00] "우린 이미 배고픔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단식농성단의 기상은 오전 7시. 주변 농성자들이 일어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졸립고 추웠다. 그리고 석유냄새 때문에 머리가 무척 아팠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농성자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여의도 공원 인근 주민들이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식 농성자들은 맨손체조를 하거나 걷기 등으로 몸을 풀었다. 며칠씩 굶은 그들에게는 달릴 힘이 없다.

20분 정도 운동을 한 뒤 물이 나오는 가까운 화장실로 갔다. 농성자들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있었다. 모두들 찬물에 세면하는 것이 익숙한지 말끔히 씻고 있었지만, 나는 얼음장 같이 찬 물이 엄두가 나질 않아 포기했다. 이만 닦고 화장실을 나왔다.

"배꼽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지갑 속 1만 5천원의 유혹

사실 내가 세 끼를 굶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 수술을 앞둔 불가피한 '금식'은 해봤지만 자율 '단식'은 해보지 않았다.

이런 탓에 하루 단식도 무척 힘겨웠다. 하루 세 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식사시간이면 내 배는 심하게 요동쳤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1만 5천원이 든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그 돈이면 어디로든 달려가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길 옆 포장마차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의 유혹은 치명적이다.

계속 "배고프다"는 말을 연발하자 이미 열흘 넘게 굶고 있는 단식농성자들이 날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미 배고픈 감각을 잃었다'는 그들에게 하루 단식의 초년병은 그저 안쓰럽기만 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정확한 '배꼽시계'보다 지갑속 1만 5천 원이 더 원망스러웠다.
[12월 21일(화) 오전 7:30] 출근길 선전전

잔뜩 움츠러든 몸으로 아침 출근길 선전전을 따라나섰다. 출근길 선전전은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100여명은 매일 아침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과 영등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합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홍보물을 일일이 나눠줬다.

일일단식을 위해 보건의료노조 강원본부에서 올라온 이현경(31)씨는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안녕하세요, 이거 좀 읽어보세요"라며 출근길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건넸다.

그러나 추운 날씨 탓인지 많은 시민들은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손을 꺼내지 않았다. 출근길 선전전은 1시간 3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12월 21일(화) 오전 10:00] "배고픔보다 추위가 더 힘들어"

오전 9시 천막으로 돌아왔다. 오전 10시가 되자 농성단은 털모자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채 조별로 열을 맞춰 국회 인근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각자의 침낭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중무장을 한다고 해도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그리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매일 하루에 두 번씩 국회를 바라보고 앉아 농성을 한다. 농성 중에는 자유발언과 각계각층의 방문이 이어진다. 이날은 천영세, 노회찬 등 민주노동당 의원 5명과 이미경, 우원식 등 열린우리당 의원 12명이 차례로 농성단을 찾았다. 이들은 일찌감치 와서 농성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며 돌아갔다.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 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침낭으로 하체를 덮고 스티로폼 위에 앉아 두 시간 동안 오전 농성을 하니 "배고픔보다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다"는 단식농성자들의 말이 실감났다.

"굶은 지 5일이 지나면 배고프다는 감각은 없어집니다. 그 후부터는 추위 속에서 어지러운 증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연내까지 꼭 폐지됐으면 좋겠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웃음)." 단식 16일째의 임승관(36. 인천시민문화센터)씨가 언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한 말이다.

방학 이후 농성단에 결합한 대학생들은 아직 배고픔의 고통을 호소했다. 단식 5일째를 맞은 김연(한양대 3학년)씨는 일명 '김떡순'이 가장 그립단다. "김밥, 떡볶이, 순대가 제일 생각나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포장마차 옆을 지나갈 때면 거의 쓰러질 지경입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어르신들하고 국보법 폐지의 순간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12월 21일(화) 오전 11:30] 2시간 동안의 낮잠

낮 동안의 휴식을 위해 천막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깥의 찬 바람에 2시간을 있다가 천막에 들어오니 그나마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농성자 대부분은 점심 시간에 주로 천막에서 잠으로 휴식을 취했다). 눈을 뜨자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깜짝 놀랐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12월 21일(화) 오후 2:00] 빠뜨린 침낭

국민은행 앞 농성장으로 급히 뛰어갔다. 다른 농성자들은 이미 열을 맞춰 앉은 채 농성을 하고 있었다. 눈치를 보며 대열 맨 뒤에 끼어 앉았다. 앗차! 급히 나오다가 침낭을 빠뜨리고 나온 것이다. 큰일이다. 침낭 없이 이 찬바람을 어찌 견딜꼬. 배고픔도 잊은 채 추위 걱정이 앞섰다. 조용한 침묵과 함께 한 시간이 흘렀다.

[12월 21일(화) 오후 3:00] 황임봉씨 하혈로 병원에 실려가다

정적을 깨뜨리는 사회자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여왔다. 사회자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환자가 발생했다"며 "차량운전이 가능한 단식자는 앞으로 나와달라"고 당부했다. 오들오들 떨며 연단 천막 옆에 황임봉씨가 앉아 있었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아 단식을 포기한 줄 알았던 황씨는 16일의 단식과 추위로 하혈을 하는 '위급한 환자'가 되어 있었다.

24시간 차가운 노상에서의 천막생활. 26세의 젊은 여성이 견디기에는 쉽지 않았을 터다. 결국 황씨는 자신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16일간 굶으며 투쟁한 농성현장에서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21일 오후 3시의 일이다.

황씨를 병원으로 후송한 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자 회담'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황씨 소식에 안타까워하던 농성단은 모두들 "저것들이 또 배신하는구나"라며 "너희들이 정말 우리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농성단은 바로 영등포구 당산동 열린우리당사로 향했다. 40여분을 걸은 뒤 열린우리당사에 도착했다.

[12월 21일(화) 오후 3:40] 우리가 가장 먹고 싶은 것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열린우리당사도 아니고, 한강의 겨울바람도 아니었다. 이미 200여명의 전경이 당사 앞을 가로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농성단은 '4자회담 중단'을 열린우리당에 촉구하며 지도부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묵무부답이었다. 3시간 넘게 시위를 벌였다. 자유발언도 하고 노래도 했다. 대학생들은 춤도 췄다.

지역별로 나와서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은 "오뎅 국물에 소주", 전라도 지역은 "삼겹살에 김치 구운 것", 경기지역은 "그냥 김치찌개", 강원지역은 "생태찌개" 대학생들은 "떡볶이, 순대와 김밥" 등을 꼽았다. 음식 이름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미칠 것 같다"고 외쳤다. 며칠씩 굶은 사람들이 목청은 여전했다.

▲ 털모자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한 농성자들. 하지만 추위와의 힘겨운 싸움은 배고픔보다 더 어렵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2월 21일(화) 저녁 7:00]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의 야합을 중단하라"

저녁 7시부터는 1시간 동안 촛불집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밤 9시에 조별 평가를 마쳐야 단식농성단의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날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4자회담'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한나라당과 야합을 중단하고 국보법을 폐지하라"는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날 단식농성자들은 오후 2시부터 밤 8시까지 6시간 동안 휴식 없이 추위 속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날 농성단을 찾은 민중가수 손병휘씨의 노래를 통한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

[12월 21일(화) 저녁 8:00] 무거운 발걸음

밤 8시. 촛불집회를 마치고 여의도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특히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농성단 모두는 계단 중간에서 꼭 한 번씩 쉬었다. 단식 7일째인 황나은(23)씨는 "너무 어지러워 도저히 한번에 계단을 오를 수 없다"고 말했다.

[12월 21일(화) 밤 9:00] "국보법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비닐농성장으로 돌아오니 병원으로 후송됐던 황임봉씨가 돌아와 있었다. 황씨는 "의사가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거래요. 호르몬 주사 맞으니 단식을 더 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5시간 동안 밖에서 투쟁할 때 저는 이곳에서 쉬었잖아요"라며 미안해 했다.

황씨는 16일 단식을 하는 동안 5kg이 빠졌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미 배고픔도 사라졌다. 이젠 허리 통증과 손발 저림이 황씨를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황씨는 "국보법이 끈질기게도 살아남는 게 더 괴롭다"고 했다.

"기자 아저씨는 괜찮아요? 내가 겪어보니까 하루 굶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처음이라 먹고 싶은 게 많이 생각나잖아요. 빨리 돌아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기자 아저씨는 좋겠네요.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니까요. 난 언제나 갈 수 있으려나...(웃음)" 황씨는 애써 웃어 보였다.

▲ 오마이뉴스 사회부 박상규 기자가 20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국가보안법 연내폐지 국민단식농성단과 함께 1일 단식체험을 하고 있다.
ⓒ 권우성
[12월 21일(화) 밤 11:00]

단식 끝나자 마자 밥 두 그릇을 해치우다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보고 기자는 단식농성단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밤 10시부터 1시간 정도 농성단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참의료실천단'에 대한 취재를 끝낸 것은 밤 11시.

여의도 농성장을 나서는 순간,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달려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혼자서 두부찌개를 먹으며 하루동안의 허기를 달랬다. 그날 공기밥 하나를 더 추가해 두 그릇을 먹었다.

[12월 22일(수) 오전 10:00]

1천여명의 농성단은 언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지금은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따뜻한 사무실에서 난 이 글을 쓰고 있다. "국보법의 끝장을 보겠다"는 황씨와 1천여 단식농성단이 집으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핫팩' 만들기에서 안마까지
단식농성당을 지키는 '인천 참의료실천단'

▲ '인천참의료실천단'이 추위에 굳은 농성자들의 몸을 안마해주고 있다.
ⓒ오마이뉴스 박상규
단식 농성자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천막으로 돌아오면 '인천 참의료실천단'의 손길은 바빠진다. 하루 종일 찬 공기에 노출된 단식농성단을 위해 '핫팩'을 만들어 주는 게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유순화 참의료실천단 사무국장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 단식을 하는 여성들이 생리통 등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밤 시간만이라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은 필수"라고 말했다.

현재 참의료실천단 회원 4명은 농성장에 상주하며 단식자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회원 3∼4명이 돌아가면서 월차휴가를 사용, '봉사활동'에 결합하고 있다. 이중 1명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밤새 당직을 서기도 한다.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단식농성자들의 혈당을 매일 체크하는 것은 물론, 차가운 날씨로 뻣뻣하게 굳은 농성자들의 몸을 안마로 풀어주기도 한다.

21일 농성장을 찾은 김정숙(36. 물리치료사)씨는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단식으로 현기증과 호흡곤란 등을 요소하고 있다"며 "안마로 굳은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순화 사무국장은 "건강이 나빠져 병원으로 후송된 단식자들이 단식을 이어가겠다며 다시 농성장으로 찾아올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이어 유씨는 "단식농성단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다른 곳에서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국가보안법의 연내 폐지를 바랐다.

생일선물은 보리차와 양말 세 켤레
단식농성장에서 맞이한 생일


12월 21일은 강호석(35세)씨의 단식 16일째인 동시에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선물은 보리차 한병과 양말 세켤레가 전부. 하지만, 함께 장기 단식을 하는 동지들이 호석씨를 아껴주는 마음은 선물보다 더욱 값졌다. / 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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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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