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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우리 가요 '과수원길' 중에서


ⓒ 이승철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온통 아카시아 꽃향기에 취했습니다. 뒷동산에 흐드러진 아카시아꽃 향기가 집안에까지 은은히 스며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어디 우리 마을뿐이겠습니까. 아마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우리의 금수강산은 온통 헐벗은 벌거숭이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름철 장마가 오고 많은 비가 쏟아질 때면 여기저기서 산사태가 나고 논밭이 묻히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온 국민들을 동원하여 사방사업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산에 나무를 심는 일이 국가적, 국민적인 과업이 되었던 것입니다. 코흘리개 초등학생들까지 사방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나무심기와 잔디 씨를 수집하고 파종하는데 동원되었으니까요. 묘목도 귀하던 그 시절, 사방사업용으로 가장 각광을 받은 나무가 바로 아카시아로 불리는 '아까시' 나무였습니다.

생명력이 강하고 뿌리가 튼튼하여 바위틈이나 모래땅, 박토에서도 잘 살고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또 꽃을 많이 피워 많은 꿀을 얻을 수 있고 씨앗도 많아서 사방사업에는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 이승철
우리들이 아카시아 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본래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까시 나무라고 합니다. 아카시아는 열대지방의 상록수로 오스트레일리아를 중심으로 500여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꽃잎은 다섯 개이고 꽃술이 열 개인 아주 다른 모습이라고 합니다.

북미산 아까시 나무가 100여년 전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이름이 잘못 아카시아로 불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래에 아까시 나무로 바로잡아 불려지기도 하지만 대개 그냥 아카시아 나무, 아카시아 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렸을 때 제 동생은 아카시아 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을 즐겼습니다. 많은 꽃 중에서 아카시아 꽃만큼 많은 꿀을 가진 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입에 넣고 씹으면 상당히 달콤한 맛이 납니다.

ⓒ 이승철
그래서 설탕이 귀하던 시절,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어나면 개구쟁이들은 너도나도 아카시아 꽃을 따서 우물우물 씹으며 그 달콤한 맛을 즐겼던 것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씹어보라고 하면 무슨 맛이 있느냐고 아무도 씹지 않을 것입니다.

설탕이 흔해지면서 강한 단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0~60년대만 해도 설탕은 여간 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70년대까지도 설이나 추석명절 때면 설탕이 이웃 친지나 직장에서 주고받는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그만큼 귀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니 그 이전에는 설탕은 그야말로 상류사회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코흘리개 어린이들에게는 커다란 눈깔사탕이 요즘말로 인기 '짱'이었습니다. 당분 섭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여름이면 밭에서 자라는 수수처럼 생긴 단수수라는 것을 즐겨 먹기도 하였습니다. 겉모양이 수수처럼 생긴 단수수를 껍질을 벗겨내고 씹으면 달콤한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수분과 당분 함량이 높아서 상당한 당분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 이승철
그런데 그 단수수가 아직 나오기 전인 이맘때쯤에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이 피면 진달래꽃도 따먹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아이들은 때를 만난 듯이 아카시아 꽃을 탐닉한 것입니다.

어머니와 어른들은 혹시 몸에 해로울까봐 걱정을 하였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선 달콤한 맛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중에서도 제 동생은 유난히 아카시아 꽃을 즐겨 먹었습니다. 물론 걱정하는 어른들 몰래 말입니다.

아카시아 꽃에 별 독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즐겨먹은 제 동생이 아직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아카시아 꽃이 제일 좋은 것은 향기일 것입니다. 아카시아 꽃은 다른 어떤 꽃보다 향기가 진합니다. 달콤한 향기 말입니다.

꽃향기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밤나무 꽃향기는 솔직히 좀 역겹잖아요? 물론 아카시아 꽃향기도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아카시아 꽃향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 이승철
어제도 뒷동산에 올라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카시아 꽃나무 밑에 앉아 향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몇 사람에게 향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모두들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는 볼품도 없고 쓸모도 없는데 꽃향기 하나는 끝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꽃 모양도 썩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나 꽃이 집단으로 흐드러진 산을 바라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어떤 마을의 뒷산은 온통 아카시아 꽃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는 모습이 여간 푸짐해 보이는 게 아닙니다.

한때는 헐벗은 산을 보호하는 사방사업용으로 각광을 받기도 하였던 아카시아 나무, 그래서 우리 삶의 주변 어디에서나 흔한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공원이나 산이나 수종개량을 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아카시아 나무가 베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특별히 양봉업자를 제외하고 사람들에게 별로 환영 받지 못하는 아카시아 나무가 요즘 보란 듯이 꽃 천지를 이루며 감미로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나보다 더 향기로운 꽃 있으면 나와 보라고, 제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달라고 애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겉모양보다는 향기로움으로 우리 사람들의 사랑을 구하는 아카시아 꽃, 그 향기에 흠뻑 젖으며 나무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이승철
창문을 열어두렴,
아이야
임이 오셨나보다

교교히 흐르는 달빛을 타고
영혼 속까지 파고드는 이 향기
누구실까,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더 고운 그님이, 이 밤
새하얀 미소 머금고 오셨나보다.

-본인의 시 '아카시아 꽃 피는 밤' 전부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탈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 이승철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 있는 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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