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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꿈 표지
나르시스의 꿈 표지 ⓒ 한길사
그 동안 한국 철학은 서양 철학을 그대로 수입하기에 급급했고, 그에 대한 비판까지도 서양에서 수입했다. 철학하기가 반성적 사유의 힘을 키우는 것일진대, 우습게도 한국 철학은 반성적 사유를 포기한 채 서양철학자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는 지적 식민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우리의 언어로 우리 식으로 철학하기를 시도하는 소장학자들과 재야 철학자들의 작업에 관심이 간다. 우리 식으로 철학한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 바탕한 우리의 언어로 철학하는 일이 될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서양철학을 주체적으로 비판하고 그를 극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서양철학의 본질을 통쾌하게 비판한 재야 철학자 김상봉의 <나르시스의 꿈-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타자 없는 법칙의 윤리학(칸트)

저자는 서양정신의 역사 전체를 나르시스의 꿈으로 비유한다. 나르시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타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서양정신을 상징한다. 저자는 그리스적 정신부터 플라톤,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정신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 중 칸트의 경우를 소개해 본다. 저자는 칸트를 분석하면서 서양정신에 배어 있는 나르시시즘의 흔적을 드러낸다.

칸트의 윤리학은 한마디로 '자유의 윤리학'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자유는 도덕의 근거이자 도덕의 본질적 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윤리학은 개인의 절대적 자발성과 자유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러한 집착이 타자를 설정하지 않고 추상적 도덕법칙과 관계하는 윤리학으로 정립된다.

"주체는 타자적 주체와 관계 맺는 대신에 추상적 도덕법칙과 관계할 뿐이다. 마치 그리스인들이 타자적 주체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추상적 법률의 지배를 자청했던 것처럼, 칸트의 도덕적 주체 역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 따라 의지하고 행위한다."(p-292)

우리는 칸트에게서 타자를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홀로 주체성 속에서 자기의 절대적 순수성에 집착하는 정신을 보게 된다. 따라서 그의 윤리학은 인격적 타자를 만나지 못하고 오직 비인격적인 법칙만을 만난다.

이렇듯 근대적 주체성의 본질적 진리인 자유는 이론적 차원에서나 실천적 차원에서나 타자적 주체가 없는 홀로 주체성 속에서 실현된다. 언제나 타자적 주체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주체는 반성적 자기관계를 통해서만 자기를 정립하고 실현할 뿐이다.

서양정신의 역사는 나르시스의 꿈

호메로스의 그리스적 존재이해, 헤로도토스의 그리스적 자기의식, 플라톤에서 칸트, 헤겔에 이르는 관념론의 본질을 파헤치는 과정을 거쳐, 저자는 서양적 나르시시즘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p-238∼242, 나르시시즘의 본질규정)

첫째, 서양정신은 (자유인의 우월 의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긍지를 갖는다. 둘째, 자신에 대한 확고한 긍지를 갖는 서양정신은 따라서, 진정한 타자를 갖지 않는다. 타자는 그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메아리일 뿐이다.

셋째, 자기 밖에 살아 있는 타자를 '너'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서양정신은 도리어 자기 자신 속에서 자립적 타자를 추구한다. 즉 자기 자신을 타자로서 체험한다.

넷째, 타자를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홀로 주체성 속에서 자기의 절대적 순수성에 집착하는 정신이 도달하는 마지막 종착점은 주체의 죽음과 정신의 자기상실일 뿐이다.

저자는 서양정신의 본질이 나르시시즘임을 밝히며, 서양정신을 다음과 같이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서양정신은 나르시시즘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처녀신 아테네처럼 품위있고 단정하지만, 아무 것도 잉태할 수 없고, 어떤 생명도 출산할 수 없는 불임의 지혜다. 서양문화는 타자를 이용하고 소비할 뿐이고, 따라서 타자를 잉태하고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의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p-379)

사실 서양철학에 대한 이러한 강도 높은 '전면비판'은 처음 접한다. 저자의 이러한 서양정신에 대한 비판은 매우 통쾌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서양철학의 한계를 분석해내는 저자의 혜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도 하다.

'홀로주체성'을 넘어 '서로주체성'으로

서양정신은 관계와 상생이 배제되어 있다. 자기를 위하여 타자를 소모할지언정 타자를 위해 자기를 포기한 적이 없는 정신이다. 이러한 서구의 주체성을 저자는 '홀로주체성'이라 부른다.

그러나 세상을 사는 개별적인 주체들은 참된 의미에서 타자적 주체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는 우리가 서양적 주체성과 자유의 도덕에 대해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서로주체성'이라 말한다.

저자는 한용운, 함석헌, 박동환의 사상을 분석하면서 '홀로 주체성'을 넘어선 '서로주체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 밑그림만이 보일 뿐이다. 이것이 이 책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책을 현재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 자신을 주체적으로 정립하는 데 좋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단서가 될 수 있고 호소력 있는 부분을 소개한다.

"철학은 그래서 지금까지 허황된 꿈, 환각의 온상이었다... 철학은 그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꿈꾸게 함으로써 깊은 어둠을 잊게 하려는 음모, 그것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둠을 묻는 것은 이 모든 철학의 자기 기만에 마침표를 찍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빛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가 빠져 있는 어둠의 깊음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슬픔에 대해 고통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들으라. 어둠 속에서 들리는 가난한 이웃의 울음소리를, 절망 속에서 울리는 버림받은 이들의 신음 소리를, 그들의 탄식을."(p-303)

덧붙이는 글 | 서평은 어떤 경우에도 '요약'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소개하면서도 역시 많은 부분이 '요약'되고 단순화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이 이 글을 어떻게 대할지 우려되는 마음이 없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문을 제기할 독자들이 있을 듯하여 덧붙인다. 니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서양철학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판도 서양정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그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니체는 자기 이전 철학자들이 설교했던 도덕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지만, 그의 비판이 아무리 급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는 서양적 도덕의 전통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기독교 도덕, 원한의 노예도덕 또는 칸트의 의무의 도덕을 떠나 도착한 신대륙은 실은 그리스의 하늘 및 아름다운 신들이 거니는 호메로스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뛰어난 고전문헌학자를 통해 서양정신은 실은 자기가 처음 떠나왔던 고향을 되돌아갔을 뿐이다."(p-13∼14)

아직도 서양철학을 '짝사랑'하고 있다면, 이제 우리와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짝사랑을 버려야 할 때이다.

펴낸곳 : 한길사
쪽수 : 396쪽
판형 : 신국판 양장


나르시스의 꿈 -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

김상봉 지음, 한길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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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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