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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추가협상이 시작된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에서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협상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6월 30일, 미국내법 즉 미통상법(TPA 2002)에 의거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조인되었다. 참여정부의 일관된 준법의지(물론 미국법에 대한)는 마지막까지 빛을 발했다.

추가협상이니 재협상이니 말장난하는 가운데 혹시라도 만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월말까지 타결하기를 원한다는 미국측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우리 현대사에는 약어화된 많은 기념일이 있다. 하지만 6·30은 아무래도 4·19, 5·18, 6·10쪽보다는, 5·16, 12·12, 5·17 등에 가깝고 또 그렇게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6월 항쟁 20주년 되는 해에 맞이한 대규모 반(反)6월항쟁으로서의 한미FTA의 협상과정을 되짚어 본다.

한미FTA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첫째, 한미FTA는 6월 항쟁의 고갱이라 할 절차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최소한의 절차적 요건인 청문회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1년 넘게 지속된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의 대규모 항의에 대해 그저 명분없는 집회불허만 되풀이했다. 농민과 영화인의 FTA 반대광고조차 사실상 불허하다가 얼마전 법원에 의해 방송 불허 취소 판결이 나오는 촌극을 자초하였다.

둘째, 사실 참여정부가 한미FTA를 제안한 순간 그것은 처음부터 진보 대 보수의 틀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개혁 대 개혁, 이른바 386 대 386간의 골육상쟁 같은 것이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기존 보수진영이 할 일이라고는 4월 1일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 그저 '제3의 개국'을 선언하고 그 성과를 이삭줍 듯 집어오는 일이었다.

나머지 한미FTA가 실익이 있는 지 아닌지는 별무관심이었고 '저들'끼리 싸우도록 둘 일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지지율기근에 허덕이는 노무현정부에 지지표를 '임대'하고, 한미FTA 단도리를 여물게 하는 일이었다. 한미FTA는 분명 진보개혁진영에 버거운 부담을 안겼지만 동시에 '얼진보'를 걸러내기 위해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했을 초대형 통과 의례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셋째, 한미FTA 체결로 말미암은 위헌논란은 이제 불가피하다. 그것은 단순히 주권제약적인 수준을 넘어 다수의 '주권침해적'인 요소를 안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헌재에서 인정치 아니하는 간접수용이 도입되었고 마찬가지 국가가 보호해 주어야 할 재산의 범위에 '반사적 이익'이 포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헌법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이 광범위하게 공격받는 등 재산권을 포함한 경제시스템의 앵글로색슨화 혹은 전면적 신자유주의화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로써 국가의 공공정책권, 규제권이 관련 모든 영역에 걸쳐 무력화될 위험에 노출되고, 단순히 국가로부터 시장의 탈규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시장의 역규제가 진행된다.

넷째, 한미FTA는 '통상독재'의 결과이기도 하다. 헌법60조에 명시된 조약의 체결·비준 동의권가운데 조약체결에 있어 대통령권력에 대한 국회의 민주적 통제수단으로서 국회의 체결동의권은 흔적도 없다.

조약의 체결·비준과 관련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지막 찬반투표외에 사실상 없다. 조약의 체결의 전과정에서 국회는 무력화되었고, 또 여기에 대해 심각한 문제인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통상절차법의 제정이 필요하나, 4개의 입법안이 나와 있지만 언제 타결될 지 알 수가 없다. 국회의 무능이야말로 한미FTA 국내협상 실패의 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양국 의회 물먹인 한미FTA

▲ 한미FTA 저지 범국민총궐기대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다섯째, 미 의회의 상황과 한국 국회의 조건은 분명 다르다. 무역촉진권한(TPA)란 본디 의회의 협상권한을 일시적으로 대통령 즉 부시에게 빌려준 것이다. 작년 11월 의회권력을 탈환한 민주당이 이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TPA연장을 걸고 민주당은 부시와 신통상정책을 맞바꾼다.

그러나 한미FTA는 상황이 좀 다르다.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이미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통상이슈의 쟁점화를 통해 상당한 실익을 챙긴 마당에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사실 자동차협상이 한미FTA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미 민주당은 한국측의 이런 사정을 최대한 이용하였고, 단 하나를 제외하고 한미FTA 막판 협상에서 거의 대부분을 관철하였다. 그 하나는 한국내 시장에서 미국차의 '상당한 수준'의 점유율과 미 수입관세 2.5%를 연동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재협상(우리말로 '추가'협상)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의 이런 사정을 이용 '에비, 의회가 자동차 물어간다'식으로 한국을 압박, 6월 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식의 한국의 저항을 단번에 무력화시킨다.

그러나 공화당의 무역대표부와 민주당의 의회가 모든 것을 다 협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특히 공화당의 자유무역론과 민주당의 '공정무역(fair trade)론'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떤 점에서 재협상 타결과 6·30 조인은 미 민주당을 '제친'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 국회는 처음부터 식물적이고, 미 의회까지도 무시당했다면 한미FTA는 양국 의회를 물먹인 '노무현-부시FTA'라고 보는 편이 사실에 좀 더 부합한다.

여섯째, 한미FTA에 동의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실익이 없고, 불평등하며 또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실익이 없다 함은 자동차협상에서 가장 여실히 드러난다. 한미FTA를 통털어 가장 실익이 되는 분야라고 정부가 선전 광고하는 분야가 자동차라는 점에서, 실제 대미 무역흑자의 70%(2005년기준)가 자동차 단일품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2005년 현대기아차의 대미수출물량이 57만대인데 비해, 2009년 이후 미 현지생산물량이 60만대이다. 차종은 소나타로 동일하다. 서로 대체관계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미FTA를 통해 자동차의 추가적인 대미 수출증가는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기업내 무역(intra-firm trade)형태로 일정기간 부품수출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부품업체 역시 동반진출을 통한 미 현지화 전략을 추진중이다. 특히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1/4은 이미 미국업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섬유의류 역시 수혜산업으로 분류되지만, 우선 섬유의류 관세 즉시 철폐율이 34%에서 61%로 최종 순간에 늘어난 것은 유전자조작식품(LMO) 즉 국민건강권과 교환된 것이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아가 대구경북지역 대미 섬유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폴리에스테르 장섬유는 즉시철폐가 아니라 5년뒤에서 10년뒤 철폐라는 점에서 기대효과는 크지 않다.

반면 농업, 쇠고기, 방송, 통신, 영화를 포함한 서비스산업, 투자, 지적 재산권, 의약품, 방송, 통신, 영화부문은 그냥 넘겨줬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서비스, 투자, 지재권부문의 협상실패를 정부는 제도선진화, 제도개선이라고 말한다.

제도개선의 가장 좋은 사례중 하나가 의약품 부문의 특허-허가 연계이다. 협상 막판까지 절대 수용불가라고 하던 정부가 결국은 협상에서 밀려 이를 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이를 '제도개선', 즉 한국 제네릭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코메디는 미국이 신통상정책에 입각한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부터이다. 미국 스스로 허가-특허 연계가 의약품 접근권을 제약함으로서 이의 철폐를 신통상정책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한국은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미무역대표부는 명시하였다.) 그런데 이를 보고 허가-특허 연계가 제도개선이라고 말하던 정부가 우리도 요구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허가-특허 연계를 재협상 의제로 제시했다고 말한다. 제도개선을 포기한 것이다.

황당한 재협상 결과

▲ 지난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재협상 결과이다. 미국의 신통상정책 의약품 분야 개선을 우리가 다 받아 온 것이 아니다. 그 중 하나인 허가-특허 연계의 철폐도 아니다. 단지 허가-특허 연계 의무 위반시 분쟁해결 절차 제소를 18개월 유예해 준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허가-특허 연계의무 자체를 18개월 유예한 것이 아니라, 이 의무의 위반시 제소를 18개월 유예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어마어마한 실익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재협상에서 이익의 균형이 이루어 진 것처럼 정부는 과대광고를 하고 있다.

일곱번째, 한미FTA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협정이다. 작년까지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정부가 주장하던 배기량 기준 세제는 협상에 밀려 향후 재도입이 금지되는, 즉 조세주권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자동차부문 협상의 최대 독소조항인 협정의무의 위반 또는 미국기업의 기대이익의 무효화 및 침해시 철폐된 관세 2.5%를 환원한다는 세계최초의 이른바 스냅백(snapback)조항 역시 문제다.

아울러 미국이 요구한 섬유특별세이프가드와 우리가 요구한 농업 특별 세이프가드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이다. 섬유관련, 미국측의 한국내 현지실사시 사전통보금지나 지재권관련, 저작권 위반 사이트 폐쇄 조치 약속도 불평등한 일방의무 조항이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에 대한 의견제시 기간 제한, 외환송금제한(금융세이프가드), 보험 상품의 네거티브허가제, 우체국 보험에 대한 혜택금지등도 일방의무이다.

기간통신사업자(KT. SKT제외), 방송PP사업자에 대한 협정발효 2년뒤 간접투자 100%허용도 불평등 소지가 다분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에서 유래하는 간접수용 조항은 위헌적이며, 스크린쿼터축소는 '문화다양성협정' 관련해 향후 논란이 예정되어 있다.

무역과 투자를 증진할 목적으로 노동, 환경 관련 기 보호수준 저하 금지 원칙에 합의했지만, 자동차 환경기준을 미국차에 대해 유예, 완화해줌으로써 그 자체 협정문 위반 여지가 제기된다.

한미FTA는 18여개에 달하는 각종 위원회, 협의회, 작업반을 설치, 한국의 공공정책권을 제약. 헌법이 인정하는 주권제약의 범위를 넘어서는 주권침해의 채널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미FTA는 미국에게는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s)로서 미국내법의 하위범주인데 비해, 한국은 조약(Treaty)로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를 발휘하며, 한미FTA이행법이 국회통과시 이는 신법으로 기존 국내법에 우선할 수 있다.

한미FTA는 한국에서는 지자체까지 동시적용됨에 반해, 미국은 주정부의 별도의 승인절차가 있어야 한다. 가입을 원하지 않는 주의 경우 한미FTA효력은 제한적(예컨대 투자, 서비스, 정부조달등에서)이라는 점에서 심각히 불균형적이다.

흑과 백의 선택만 남았다

여덟번째,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쩌면 좋은가. 혹시 문제가 되는 독소조항을 걸러내고 재협상하면 되지 않을까. 즉 취사선택 할수는 없는가. 없다.

왜냐하면 조약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권은 단지 찬반만 표할 뿐 수정할 수는 없다. 미 의회 역시 TPA하에서는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의 민주당 지배하 미국의회는 수정할 수 있다.

어차피 민주당 지배 하 의회에서 부결될 바에야 미 무역대표부 입장에서는 차라리 수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정파가 다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예 그를 위한 절차와 제도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조약문의 수정은 불가능하고, 오직 양자택일, 흑과 백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외길의 선택밖에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 덧씌운 마지막 저주이다.

덧붙이는 글 | 이해영 기자는 한신대학교 교수입니다.


태그:#한미FTA, #불평등조약, #독소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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