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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통 시사저널은 죽었다."

1989년 창간돼 18년 동안 한국 언론계를 빛냈던 '정통' 시사저널은 오늘 죽었다. 그 추모를 위해 26일 오전 9시 40분. 중구 충정로 1가 <시사저널> 앞 삼삼오오 시사저널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김은남 시사저널 노조 사무국장과 정희상 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이 보인다. 아흐레나 곡기를 끊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얼굴살이 쏙 빠졌다. 특히 정희상 시사저널 노조위원장의 얼굴은 초췌했다. 김 사무국장은 "나는 4kg 밖에 빠지지 않았는데 위원장은 7kg나 빠졌다"며 걱정이 섞인 타박을 놓았다.

서명숙 전 편집장은 도착하자마자 눈물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기자들을 안아주고 어깨를 쓸어주며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오전 10시에 '결별식'이 시작됐다.

"싸움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서대문 시사저널 본사 앞에 다시 모인 기자들은 "독자 여러분께 시사저널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김 사무국장은 "18년 동안 지켜온 시사저널을 떠나는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커 힘이 없다"며 "오늘 정통 시사저널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에 모인 모두는 시사저널의 마지막을 묵념으로 추모했다.

정 위원장은 울분이 가득 찬 목소리로 금창태 사장을 비판했다.

"금창태 사장이 '질서를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누가 질서를 깨뜨렸나? '독립언론'의 질서를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기자들이다."

이어 정 위원장은 "오늘의 결별 선언은 싸움의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했다. 그는 "시사저널을 지켜왔던 역량 있는 기자들이 새로운 독립매체를 만들어 계속 시사저널의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며 "우리사회의 양심 있는 시민들이 자본권력의 횡포에 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또 <시사저널>의 사주인 심상기 회장에게 "새 길을 걸어가는 기자들에게 '시사저널'이란 이름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결별 기자회견이 진행될수록 기자들의 코끝은 새빨개져갔다. 다들 감정에 겨워 시사저널 기자들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 낭독도 쉽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을 건너건너 문정우 전 편집장이 편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독자여러분께 시사저널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우리 파업 기자들을 성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께 한없이 미안하고, 한없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파업 기자의 청춘과 꿈과 자부심이었던 시사저널, 너 또한 안녕. 굿바이, 시사저널."

편지 낭독이 끝나고 시사저널 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이제 시사저널과의 인연을 끊지만, 독립언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고 다시 한 번 독자들 앞에 약속했다. 김 사무국장은 "7월 2일 '신매체 창간에 대한 기자회견'을 프레스센터에서 열 것"이라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사저널 기자들은 5층 <시사저널> 편집국으로 올라갔다. 굳게 닫힌 문에는 직장폐쇄를 알리는 종이만이 덜렁 붙어있었다. 시사저널 기자들과 시사모 회원들은 이날 숨이 끊어진 시사저널을 추모하며 시사저널 편집국 현판에 흰 국화를 놓기 시작했다.

흰 국화를 놓으며 기자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끝까지 눈물을 참고 사회를 봤던 김 사무국장도 억눌린 눈물을 토해냈다. 고재열 기자는 펜을 꺼내 직장폐쇄를 알리는 종이에다 몇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사랑한다. 시사저널.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고 기자는 "더 힘들지도 모를 시간이 남아 있지만 제대로 되돌려 놓을 테니 기다려 달라는 뜻"으로 적어봤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동안의 악몽이 끝나는 날"이라며 "오늘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도 "다시 해보자"는 마음을 되새기게 됐다"고 말했다.

노순동 기자는 "미친 듯이 기사를 쓰다가 막히기라도 하면 이곳에서 담배를 태웠다"며 편집국 앞 계단에서 담배를 물었다.

"시사모 홈페이지에 '안일'이라는 ID를 쓰시는 분이 '함부로 짖는 개'라는 우화를 썼다. 함부로 짖는 개가 바로 우리를 뜻하는 우화였는데 기억에 참 많이 남는다. 정작 '보물'을 지키기 위해 짖는 개를 죽여 버리고 '보물'을 잃은 주인. '보물'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주인이 바로 금창태 사장이 아니겠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도 자리에 참석해 정통 시사저널의 죽음을 추모했다. 홍 위원은 "자본권력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칼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 착잡하고 분노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홍 위원은 "기자실 폐쇄와 관련돼서는 언론 자유를 부르짖는 언론인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며 "적어도 공공성을 표방하고 종이매체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방송매체가 좀 더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다"며 한국언론계를 비판했다.

기자회견문을 읽었던 이숙이 기자는 "대선 등의 굵직굵직한 뉴스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 데도 현장에 가지 못하고 기사를 담을 '그릇'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 매체를 기다리고 있다"며 웃음 지었다.

▲ '삼성 관련기사 삭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워왔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26일 전원 사표를 제출하며 사측과 결별을 선언했다. 1년여동안 끌어왔던 사측과의 줄다리기를 끝내며 편집국 현판 앞에 모인 기자들은 "굿바이~ 시사저널!" 을 외치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분명 힘든 일이 될 테지만, 희망이 생긴다. 권력과 자본에 자유롭게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는 일.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조화를 바치고 다시 "굿바이~ 시사저널!"이라고 적힌 펼침막 앞에 모였다. 누군가 외쳤다. "활짝 웃자!" 여태껏 눈물짓던 안은주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몸이 변해~"

분명 그들은 울었다. 18년 간 <시사저널>을 만들었던 이들이 <시사저널>에게 '안녕'을 말하던 날. 그들은 코끝이 빨개진 채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새 길을 떠나는 그들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아직 시사저널 기자들이 '독립 언론'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끝나지 않았다.

태그:#시사저널, #독립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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