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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승용차 왕국이 된 데에는 정부의 강력한 보조 정책이 숨겨져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공짜 도로는 이제 그만! 자동차도 적절한 돈을 내고 이용하자!"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공짜 도로라니. 고속버스 톨게이트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자동차를 모는데, 공짜가 무슨 말인가.

<자동차 권하는 사회>(한국철도연구회 저/양서각 발행)는 그렇게 흥분할 사람들에게 조목조목 증거 자료를 들이댄다.

우리나라 전체 고속도로 길이는 약 3000km. 고속도로의 경우 물론 통행료를 낸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도로 길이는 약 16만km. 실제 돈을 내고 타는 길이는 채 2%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속도로 통행료만 내고 도로를 이용한 세월이 워낙 길기 때문이다. 책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우리나라 자동차 운전자들이 얼마나 많은 정부 혜택을 받고 있는지 설명한다.

자동차 운행을 위한 가로등 설치, 도로 보수, 신호체계 운영, 교통경찰 서비스 등이 자동차 운전자에겐 모두 공짜. 왜냐하면 모두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비용을 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철도는 선로사용료를 국가가 아닌 철도공사가 낸다. 고속철도(KTX)와 새마을·무궁화호를 운행하고 내는 선로사용료는 매년 약 5000억원. 2005년 철도공사 적자규모가 약 60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적자가 선로이용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자동차도 철도처럼 모든 도로에 사용료를 물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저자들이 묻는 질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조명장치 등 세부 비용까지 철도공사가 지불하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승객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국가와 지자체는 국도와 지방도에 가로등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물론 운영비용도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한다. 철도 터널 구간에도 조명장치가 설치돼 있다. 특히 고속철도(KTX)가 달리는 경부선은 전체 선로의 1/3이 터널구간이다. 물론 터널의 조명에 드는 전기료는 철도를 운영하는 철도공사가 부담하고 있다." - P74

도로 3.7배 늘 때 철도는 제자리

▲ 정부는 승용차 '우대'에 비해, 열차 등 대중교통은 '홀대'하는 정책을 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저자들은 현재 우리나라 승용차 활성화의 가장 큰 원인 제공을 정부가 했다고 믿고 있다. 실제 지난 40년간(1962-2004) 도로와 철도의 시설비용을 비교해 보면 도로 연장은 3.7배(2만7169km)에서 현재 10만278km) 증가했으나, 철도 연장은 1.1배(3032km에서 3377km)로 거의 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철도 수송분담비율은 53%에서 7.3%로 뚝 떨어졌다.

그에 반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들은 90년대 말 중장기교통투자정책(1998~2005)을 세워, 도로투자액의 2배 이상을 철도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도로연장/철도연장 비율이 프랑스는 1.2, 독일 1.5로 거의 균형을 맞춘 데 비해, 한국은 5.4다.

저자들이 정부의 강력한 자동차 지원정책을 지적하는 이유는 철도 등 대중교통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교통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는 자동차가 주는 폐해가 너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를 잠깐 살펴보자.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7000여명으로 월남전 참전 전체 국군 전사자와 맞먹음 ▲교통사고 유자녀 사회 문제 ▲불법주차 관련 이웃간 불화 ▲도로 확대로 토지 부족 ▲서울시 전체 차량을 500만대로 가정했을 때, 주차장 면적은 60억평 필요 ▲전체 대기오염 배출 중 수송 부문 전체 56% 차지 ▲개인 승용차의 과다한 운행으로 발생하는 교통혼잡비용 연간 22조….

이외에도 많다. 매년 50만대 가량의 자동차가 폐기되면서 발생하는 폐잔재물량만 10만여톤.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생기는 미세먼지와 호흡 장애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저자들은 이렇게 문제 많은 자동차가 오로지 정부의 '우대' 정책과 철도 등 대중교통 '홀대' 정책 때문에 급성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 우대 정책 외엔 자동차를 즐겨 타는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사회적 시선. 자동차 크기를 운전자의 사회적 크기와 연결하는 사회적 문화 때문이다.

"주변에 경차를 타고 다니는 대학교수가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아침마다 출근길이 매우 송구하다고 한다. 학교의 수위들이 교직원 스티커가 붙은 경차를 보고 인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못해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자기가 민망하다고 한다. 경차가 아닌 차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손이 올라가는데 정부기관이나 일반기업체를 방문해도 경차를 보고는 매우 가볍게 대한다고 한다."- P123

저자들은 정부의 비뚤어진 보조 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눈치 보는 문화에도 비판의 눈길을 돌리고 있다. 물론 주는 정부 정책이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김에 잘못된 친환경 정책 사례인 '그린 파킹(Green Parking)'도 이야기한다. 담을 없애고 주차장을 만들면 공사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즉 승용차 이용을 권장하는 정책인데, 여기에 어떻게 '그린'이라는 이름이 들어갈 수 있냐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없는 것일까. 위에서 나온 지적사항이 곧 해답이다. 지적사항을 거꾸로 돌리면 그게 곧 해답이 된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와 사회적 합의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자들은 '완화'라는 조심스런 표현을 쓰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승용차 이용자에 대한 정부의 숨겨진 보조(Hidden subsidy)와 승용차 이용에 따른 혼잡·환경오염비용 등 사회적비용(Social cost)을 합산한 실제 비용(Full cost)을 부과하면 된다.…우리는 최소한 정부의 직간접적인 보조에 의하여 왜곡도니 교통체계는 바로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도로를 이용하는 승용차 운전자에 대한 보조를 폐지·축소하거나 철도 이용에 대한 보조를 확대하여 도로와 철도간의 불균형을 해소·완화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는 '파국으로 치닫는 승용차 의존의 시대'다.

자동차 권하는 사회 - 파국으로 치닫는 승용차 의존의 시대

한국철도연구회 지음, 양서각(2008)


#자동차#철도#대중교통#그린 파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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