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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사르코지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 박영신
2007년 5월 7일, 프랑스는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절반의 프랑스를 공포에 떨게 하는 남자'. 이것은 전날 오후 8시 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52)를 묘사하는 말이다.

절반의 프랑스가 사르코지를 선택했다. 경쟁자였던 사회당(PS) 후보 세골렌 루아얄(53)에 넉넉히 6%P를 앞선 53.06%(내무부 공식 통계)의 프랑스인이 사르코지 대통령을 원했다.

그는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는 16일 취임식을 갖는 사르코지는 앞으로 며칠 간 깊은 휴식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자 일간지 <르 파리지앵>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르코지는 '앞으로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를 국정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 10일 간의 휴가를 예고한 바 있다. 사르코지는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했거나 아니거나 사르코지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지난 하루는 그러나 길었다. 프랑스 대통령을 목표로 사르코지가 달려온 지난 30년보다 훨씬 길고 지루했다. 나이 스물의 사르코지의 꿈은 이미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샹젤리제와 콩코르드 광장 사이에 자리한 고급 콘서트 홀 '가보'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제5 공화국의 제6대 대통령을 선출하던 지난 6일 오후 4시 30분(이하 현지시각), 사르코지 지지자들이 모여있는 가보 콘서트 홀 앞은 질서정연했다.

바리케이드를 침범할 생각이 없는 지지자들은 집권당을 상징하는 파란 풍선을 흔들며 조용히 응원을 보낼 뿐이었다. 간혹 "사르코지, 대통령"을 연호하기는 했으나 대체로 차분했다. 콘서트 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형 경찰 차량이 도열해 있었다.

취재권이 허용된 기자만 1200명, 현장에서 통행증을 발급받은 기자와 초대손님까지 감안하면 콘서트 홀에 입장한 인파는 수용인원 초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질서정연했다.

콘서트 홀 입구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경비원들이 질서를 강제하고 있었다. 경비원 1차 관문을 통과하자 보안 검색대가 기다리고 있다. 가방을 열어보이고 몸 수색을 마치면 다시 2단계 경비원 관문을 지나야 했다. 삼엄하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걸까.

▲ 가보 콘서트홀을 꽉 메우고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사르코지 지지자들.
ⓒ 박영신
ⓒ 박영신
콘서트홀의 정장과 사회당사의 붉은 티셔츠

사회당의 분위기와는 천지 차이였다. 무질서 속에 당사에 진입하는데 성공하면 취재권 허락을 받았건 못 받았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회당사에는 붉은 티셔츠 차림의 젊은이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음료수가 마련된 테이블에서 손에 잡히는 것은 1회용 플라스틱 컵이었다.

가보 콘서트 홀에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연령을 초월해 콘서트 홀을 채운 거의 모든 '손님'들은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수백 개의 유리잔이 홀 안에 도열됐다. 기자들을 위한 책상이 강당 구석에 너댓 개 달랑 배치됐던 사회당의 사정과 달리 넓은 기자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멀티 TV가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기자실에는 10여대의 크고 작은 TV들이 양 쪽 벽을 타고 나란히 정렬했다. 수백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반듯한 책상에는 인터넷 시설이 화려했다. 사회당사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30여 명에 한정됐다. 자리가 없었던 탓이다. 사회당내 강당에는 단 두 대의 대형 평면 TV가 좌우 양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3층으로 구성된 공연장 입구에도 예의 경비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각 층의 오른쪽에는 카메라맨을 위한 단상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고 좌석을 걷어낸 1층에는 이미 지지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미는 사람도 없고 밀리는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자로 잰 듯 깔끔하다. 공연장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콘서트 홀 앞과 내부 전경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콘서트 홀 입구에 자체 방송 팀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뉴스 화면들도 심심찮게 지나간다. 사르코지나 측근의 모습이 TV에 나타나면 공연장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 하다. 야유의 함성이 터져나올 때도 있었다. 화면에 루아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미셸 알리오-마리 국방장관 등 당내 실세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설 때면 지지자들은 일사분란하게 통행로를 만들었다. 알리오-마리는 서두르지 않고 지지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며 여유있게 무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사회당 집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루아얄을 보기 위해 몰려든 지지자들은 루아얄의 등장과 함께 몸을 던졌다. 총 6만이 모인 것으로 집계된 지난 1일 샤를레티 경기장 유세에서 루아얄은 눈 앞의 무대에 오르기까지 5분 이상을 지체해야 했다.

"사르코지는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

▲ 사르코지가 당선이 확정된 후 짧은 연설을 하고 있다.
ⓒ 박영신
정각 저녁 8시, 대형 스크린 위로 사르코지의 모습이 나타난다. 출구조사 결과 53% 득표라는 수치도 함께. 광란이 시작됐다. 광란이라고는 하나 질서정연한 광란이었다. 공연장에서 뛰지말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아무도 뛰거나 발을 구르지 않았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경건하게 불렀다. 2층에서 플래카드 하나가 펼쳐진다. '사르코지 대통령'이라 적혀있다. 장내 지지자들도 '사르코지 대통령'을 연호한다. 박수를 치며 "이겼다"고 외친다.

콘서트 홀 입장과 동시에 건네받은 프로그램에는 사르코지가 오후 8시 30분에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적혀있었다. 정확하게 8시 30분, 사르코지는 무대 위에 있었다. '모든 프랑스인의 대통령'을 약속한 사르코지는 '결속력 있는 프랑스, 하나로 뭉친 프랑스의 이미지'를 역설했다.

순간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꺄악" 비명을 지른다. 대중가수를 보고 열광하는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학생은 순식간에 따가운 눈초리 속에 휩싸였다. 중년의 여성이 훈계하듯 한 마디 한다.

"사르코지는 소리 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장내는 고요를 되찾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가운데 사르코지의 장엄한 연설은 계속됐다.

"미국은 이제 프랑스와의 우정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친미주의자 사르코지다운 '약속'이 장내를 울리자 다시 한 번 '사르코지 대통령'을 연호하는 소리가 시작됐으나 길지는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댄 지지자들이 '쉿'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일시에 일어난 일이다. 마치 겁에 질린 사람들 같았다.

"사르코지가 말을 하는데 감히 떠들다니!"

짧은 연설을 마친 사르코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머리를 끄덕여 화답했다. 손을 흔들지도 선동하지도 않았다.

사르코지가 사라진 직후 장내 방송이 다시 울렸다. "밤 9시 30분 콩코르드 광장에서 축하 공연이 펼쳐집니다. 콩코르드에서 만납시다." 프로그램과 일치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웅성웅성 장내를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두려움? 혹은 공포? 그것은 공포였다. 2007년 프랑스에서 나는 공포를 느꼈다.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 혁명공산주의자연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를 비롯해 인종차별주의 타파를 위한 'SOS인종주의', 사르코지 낙선을 목적으로 지난해 프랑스 전역을 돌며 유권자 등록 운동을 펼친 '액트 업(Act up)'등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절반의 프랑스가 경고해온 바로 그 공포였다. 감히 말하건대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사르코지 당선 축하공연에서 흑인 가수들이 노래하고 있다.
ⓒ 박영신
조금만 더 가보자. 콘서트홀 안과 밖을 채운 지지자들은 사르코지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물론 콩코르드 광장이다.

간헐적으로 '사르코지 대통령'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차분한 행진이었다. 일요일이라 자동차의 운행이 한산한 거리를 걷는 중에도 돌발행동은 없었다. '산책'하는 지지자들 옆을 지나는 자동차 두어 대가 경적을 울리며 사르코지의 승리를 축하했으나 잠시였다.

이들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서너 명의 청년이 외쳤을 뿐이다.

"사르코, 파쇼! 사르코, 파쇼!"

오토바이 석 대에 나눠 탄 중년의 세 남자가 '인터내셔널가'를 우렁차게 부르다 일갈했을 뿐이다.

"혁명을 한 이유가 도대체 뭐지? 프랑스는 왜 혁명을 했을까? "

민중이 봉기해 왕의 목을 자른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말하고 있었다. 왕정은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사르코지 황제'와 함께 새로운 왕정이 도래했다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던 걸까.

공연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흑인 가수 네 명이 나와 각종 히트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다음에 등장한 가수는 지난해 '샛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리얼리티쇼를 통해 가수에 입문한 젊은 흑인 가수 미스 도미니크였다.

이들은 강력한 이민 정책으로 악명이 높은 사르코지와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들 흑인 가수들은 사르코지가 칭송해 마지 않는 '일찍 일어나는 프랑스'인 것이다. 성공한 가수들이니 사르코지가 말하는 '엘리트 위주의 선별적' 이민 대상에 포함된 인물들인 지도 모른다.

▲ 6일 밤 사르코지의 당선에 반대하며 툴루즈에서 벌어진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샴페인과 돌멩이로 시작된 프랑스의 '새로운 5년'

같은 시간, 사르코지는 샹젤리제 대로의 최고급 레스토랑인 '푸케츠'에 모습을 드러냈다. 측근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테다. 레스토랑 앞에 모인 사람들은 저 마다 원하는 구호를 외쳤다.

"사르코지, 대통령, 사르코지, 대통령…"
"사르코, 파쇼, 사르코, 파쇼…"

사르코지에 열광하는 절반의 프랑스와 사르코지를 혐오하는 나머지 절반의 프랑스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충돌한 것이다. 상징이었다.

평화로운 저녁 식사를 마친 사르코지가 콩코르드에 등장한 것은 밤 11시경. 태반이 젊은이들로 구성된 3만여 군중들은 사르코지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와 파란 풍선을 열광적으로 흔들었다. 프랑스의 삼색기가 사방에서 물결쳤다.

"사랑해, 사르코!"

승리의 기쁨에 도취된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고 사르코지는 응답했다.

"오늘 저녁은 프랑스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전 당선소감과 같이 '분열되지 않은, 하나로 뭉친 프랑스'를 보여주기 위해 똘레랑스와 박애 정신을 발휘할 것을 호소하는 연설이 이어졌다.

같은 시간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에서는 선거 결과에 분노한 5000여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에 시위대는 돌멩이와 빈 병을 던지며 저항했다. 유사한 사태는 스트라스부르, 릴, 보르도 등 프랑스 대도시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 날 하루 730여 대의 자동차가 불에 탔다.

사르코지가 두려운, 절반의 프랑스다. 사르코지와 함께 할 장차 5년은 샴페인과 돌멩이로 시작됐다.

태그:#프랑스, #대선, #사르코지, #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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