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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에 우리는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범인으로 밝혀진 조승희씨는 초등학교 때 이민 온 한국계로 그의 부모는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페어팩스에 살고 있다. 피해자들의 시신을 확인한 의사는 "적어도 총알이 세 발 이상씩 박혀있었다"며 "범인은 매우 잔혹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 피해자들의 신원이 조금씩 발표되면서 TV를 통해 그들의 이름과 사진을 직접 보게 되니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다.

남편은 분위기가 뒤숭숭하여 그대로 집에 있기로 했다. 나도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책의 반납일자를 연기했다. 학교에 갔다던 남편의 동료는 건물들이 텅 비어있어 노트북만 들고 돌아왔다고 한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어제(17일)와 매우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어젯밤 한인교회의 기도회가 끝나고 목사님과 간사님들이 기숙사를 돌며 충격을 받은 학부 학생들을 위로하며 안정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범인이 한국인인지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당장에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가서 기숙사는 거의 비어 있었다고 한다. 학부 학생들 중에 유학생은 대여섯 명 뿐이고 거의가 노바(Northen Virginia)에서 온 교포 학생들이다.

버지니아텍은 이번 주 수업을 모두 취소할 예정이고 사건이 벌어진 노리스 홀은 이번 학기 동안 문을 닫을 예정이다. 오늘은 초중고등학교의 수업도 모두 취소되었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나 대학원생들의 신변도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그들은 성인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피해를 주지는 않으리라고 위로삼고 있다.

오히려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어느 학부모는 아이의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걱정이라는 말도 하였다. 불안하다. 남편과 나는 일부러 농담도 주고받으며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가슴에 뭔가가 꽉 얹혀있는 듯한 답답함과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씩 이웃들과 통화하며 안부를 묻지만, 걱정 근심을 나누면서 오히려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 같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한다. 33명의 영혼을 위해, 그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조승희씨의 부모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기도만이 힘이 되는 때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직 무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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