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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현지시각) 버지니아 공과대학에서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현지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왔다. 김규영 기자는 버지니아텍 박사과정 3년차의 남편과 아들 둘과 함께 2004년부터 버지니아에 머물고 있다. <편집자주>
▲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뒤 버지니아텍 맥브라이드홀 입구에서 학생들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AP 연합뉴스

눈부시게 화창한 하늘아래 가끔씩 진눈깨비 섞인 강풍이 휘몰아치는 월요일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시립도서관에나 가볼까 생각하며 이른 점심을 챙기고 있을 때, 학교에 있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은 버지니아텍(버지니아 공대) 화학과 박사과정 3년차다.

남편은 "아침부터 전화를 걸었지만 이제서야 연결이 되었다"면서 "학교에서 총기사건이 일어났으니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자신은 "학교에 그대로 머무르라는 경찰통보 때문에 점심도 먹으러 나갈 수가 없어 배가 고프다"는 말과 함께.

그제서야 오전부터 둘째 아이의 잠을 방해하던 소리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안전하게 집안에 있으라"며 상황을 전달하는 마이크 소리였던 것이다.

평범한 월요일이었는데...

1시간 후 남편은 동료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건물을 비우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는 소개지시가 내려졌다고 했다. 그 동료는 버스 운행도 중지되고 부인의 휴대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차를 타고 돌아오던 남편이 그를 목격하고 함께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TV 뉴스를 통해 사망자가 '7~8명에서 22명, 그리고 다시 32명'이라는 소식에 몹시 경악했다(사망자 수는 이후 31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33명이 되었다)'

게다가 남편과 동료가 있던 건물은 사건이 벌어진 노리스 홀과 매우 가까웠다. 남편은 그 건물 근처로 점심을 먹으러 갈 예정이었다.

TV는 같은 화면을 반복재생하며 끔찍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누구이며 무기는 무엇인지, 피해자들은 누구이고, 현재 어느 병원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며칠 전 노리스홀 옆에 있는 더램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제보로 두 번이나 소거지시가 있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이 이것과 관련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학교 당국은 왜 첫번째 사건이 있은 직후 학생들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았는지, 그리고 기숙사 건물은 바로 봉쇄되었다고 하는데 범인이 어떻게 드릴필드(학교 중앙에 있는 넓은 잔디밭)를 가로질러 두번째 사건이 발생한 노리스홀로 들어갈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에 32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가득했다.

지난해 여름, 인근 도시 병원에서 총을 들고 달아난 탈옥수가 등산로를 타고 블랙스버그로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범인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황이어서 창 밖을 힐끔거리며 몇 시간 동안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사상자를 냈으나 일단 사건은 종료되었기에 충격과 슬픔에 빠진 마음을 달래었다.

평화롭고 안전한 지방 소도시, 그러나 이 곳도 미국

▲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내 예배당에서 16일 총기난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두 여학생이 서로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우리가 살고 있는 블랙스버그는 버지니아 텍이 중심에 있는 소도시로 주민들 대부분이 학교에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과 매우 비슷한 기후로 어디서나 목초지가 보이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범죄율이 낮아 밤 12시에도 여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조깅을 하곤 한다. 민생치안도 잘 되어있기 때문에 유학생 부인들은 "안심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어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하였다.

그리고 외국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 주민들도 외국인을 차별한다거나 멸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도시 당국과 교회, 학교 등이 유학생과 그 가족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바로 어제(현지시간 16일)는 매년 열리는 '국제 거리축제(International Street Fair)'가 있었다. 우천 관계로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유학생은 물론, 미국 주민들도 함께 즐기는 큰 행사였다.

오후에는 친구와 이웃간에 전화로 안부를 확인하였지만, 블랙스버그에서 이렇듯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토목과의 박창민씨 소식과 함께 TV에서 방영되는 목격 학생들의 증언을 보니 그제서야 그 공포가 밀려왔다. 인터넷 검색1위가 '버지니아'이다. 관련 기사들을 끔찍한 어조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아무리 평화로운 소도시에서 살고 있더라도 이 곳은 총기 소지가 합법적인 미국이라는 나라인 것이다.

촛불을 켜고 33명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내일 수업은 모두 취소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중요한 실험을 해야 한다며 학교에 갈 수 있는지 지도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 역시 오늘까지 반납했어야 했던 책을 들고 시립도서관에 다녀왔으면 한다. 내일 못 간다면 모레는 갈 것이다. 아이들이 얌전히 있을 수 있다면 추도예배에도 다녀오고 싶다. 오늘 하루 나와 나의 가족, 이웃의 안전에 감사하면서 좀 더 문단속을 철저히 하면서 일상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아직도 강풍은 무서운 바람소리를 휘두르며 가끔씩 전기를 끊었다가 연결하고 있다. 한인교회의 추도기도회를 가지는 못했지만 촛불을 켜고 33명의 영혼과 그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사망한 학생들을 추모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태그:#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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