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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의 화약고(Global Hot Spots) 강연 시리즈(http://oia.osu.edu/hotspots/index.html) 에서 북한편을 맡아보겠느냐는 제의가 왔을때 저는 선뜻 수락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 대중매체의 편파적이고 왜곡된 시각 때문에,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일반 미국인들이 심한 적대심과 증오를 보이는 것이 여기 현실이기에 북한에 대한 강연이라면 거의 아무 곳이나 갈 용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대상이 현직교사들이라니 안 나설 수가 없었어요. 강연에 오신 분들은 30~40명이었지만 이분들이 각기 현장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니까요. 강연시리즈를 기획하신 분의 말씀에 의하면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3시간이나 공부를 하러 오시는 분들이기에 대개 의욕이 많고 일반인에 비해 사전지식이 많은 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100여 장이 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준비를 하면서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굳어진 편견과 정서적인 반응을 넘어서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이르게 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부반응을 해체할 수 있을까하고요.

▲ 강의중인 필자의 모습.
ⓒ Dennis Hart
강연을 시작하면서 청중에게 첫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싫어해야 마땅한 이유를 10가지만 들어보세요."

질문을 마치기가 무섭게 봇물처럼 적대적인 언사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핵무기 때문이죠."
"김정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베트남."
"수만명이 굶어죽었다면서요."
"인권의 사각지대."
"군비지출이 엄청난 나라."
"폐쇄된 나라."
"협조할줄 모르는 나라."
"위협적인 존재."
"우리나라와 전쟁을 한적이 있잖아요."
"60, 70년대에도 우리를 못살게 굴었죠. 다시는 우리한테 위협이 안되도록 아예 밟아버려야 합니다" 등등.

10가지를 훨씬 넘기도록 끝이나지 않아서 알았습니다하고 그정도에서 끊었습니다.

"그럼 북한에 대해 칭찬할 만한 것, 존경할 만한 점은 어떤게 있나요"하고 두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강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겨우 쥐어짜듯, 못마땅한듯 주저하며, "북한 사람들 운동은 잘하죠." "태권도." "애들은 예쁘데요"라고 10가지의 반도 못 채운 답이 나왔습니다.

저는 한국역사를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본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광활한 영토를 보여주고, 고려청자와 거북선과 한글과 금속활자와 측우기 등등 한국역사의 장엄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면면들과 한국사람들의 뛰어난 과학적, 천문학적, 지리학적 성취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어느새 청중은 그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고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긴 역사동안 여러번 큰 전쟁을 치루며, 때로는 자발적인 의병까지 조직되어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주권을 지켜온 과정을 설명하고나니 대부분 교사들은 벌써 북한 사람들이 왜 '주체'라는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냈는지 이해했습니다.

일제하의 한국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을 얘기했을때는 탄식이 흘러나왔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을 보여주었을때는 숙연해졌습니다. 미군의 무차별 융단 폭격, 핵공격 위협, 네이팜공격, 민간인 학살, 이 모든 것이 우리같은 미국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사실'이지만 한국인들은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으로 분단의 과정과 분단 전후의 역사에 대한 미국의 책임, 북한의 성공적인 무혈 토지개혁, 식량난 이전까지의 북한의 경제적 성공에 대해 강의하자 그분들이 들었던 "북한을 싫어하는 이유들"이 모두 옳지않음이 분명해졌습니다.

한 예로 북한의 군비는 미국의 군비의(그것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비용, 핵무기개발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뺀 액수) 1.3%라는 사실을 제시했더니 북한을 전쟁준비에 미친 나라라거나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가 너무 분명해졌지요.

또 미국은 9천여점의 핵탄두와 핵폭탄을 갖고 있는데 기껏해야 5-6개도 안되는(그것도 확실하지도 않은) 북한의 핵을 왜 두려워해야 하는지, 뻔한 질문인데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들 중 아무도 1994년의 북미협약과 최근의 협약이 거의 같은 내용이란것, 1994년 협정을 먼저 어긴 것은 미국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강연을 듣고 있는 현직 교사들.
ⓒ Dennis Hart
강의를 마칠 시간이 이미 15분이나 지났기에 개성공단과 통일 열차, 남북한 단일 스포츠팀, 서로를 응원하는 남북한 사람들, 금강산 기행중 아기를 낳은 한국 아줌마와 북한 의사들의 사진을 주마간산으로 보여주고 마쳤는데,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핵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좀 더 얘기해달라고 주문이 들어와 결국 30분 이상 늦어져서 끝냈습니다.

"새로운 안목이 열렸어요" "제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김정일이 위험한 미치광이인줄 알았더랬어요." "북한사람들은 자기나라를 지키고 생존하고 싶어할 뿐인거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전혀 뜻밖이었고요"라고들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힘든 강의였지만 큰 보람을 느낀 하루였답니다. 조금이나마 세상의 증오를 줄이고 자비심과 이해를 증가시켰다는 생각에 아주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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