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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백으로 가는 길. 은행나무 잎이 툭툭 떨어진다.
ⓒ 강기희
슬픈 소식을 안고 간다. 애도하는 마음으로 또는 분노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함백역으로 간다.

강원도 정선에서 말구리재를 넘어 함백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높은 재를 하나 넘어야 함백역으로 갈 수 있다. 함백역으로 가기 위해선 기차를 타고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나 그럴 수 없는 긴급한 사정이 생겼다.

함백역으로 가는 길은 도로 확장 공사로 어수선하다. 38번 국도는 충남 아산의 바닷가에서 출발하여 안성을 거쳐 제천과 영월을 지나 함백으로 온다. 함백을 지난 국도는 카지노가 있는 사북을 지나 태백을 경유, 삼척에서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함백의 행정지명은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이다. 1950년대 함백광업소가 문을 열면서 함백이라는 이름을 붙여졌다. 그러한 이유로 조동리라는 행정지명 보다 함백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석탄가루가 눈처럼 날리던 곳

▲ 광부들이 살던 사택이 아직 남아있다.
ⓒ 강기희
함백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석탄가루가 눈처럼 날리던 곳이었다. 흰옷을 입으면 금새 새까맣게 변하는 검은 땅이었다. 팔도에서 몰려든 광부들은 검은 탄가루를 마시면서 희망의 불씨를 당겼다.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석탄 산업의 사양화로 함백광업소가 문을 닫자 광부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차는 38번 국도를 버리고 함백역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거리에서 석탄가루가 질퍽이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깨끗한 느낌이 아니라 달리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든다. 무슨 이유일까. 얼마 전까지 대중 골프장 유치로 떠들썩하던 곳 아니던가. 함백역이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때문일까. 거리를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도 신명을 잃고 있다.

철길 아래로 안경다리가 보인다. 안경다리를 지나 두위봉을 오르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알려진 소나무가 있다. 그러나 예전엔 안경다리 너머에는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던 함백광업소가 있었다. 함백광업소는 함백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곳이었다.

▲ 함백의 모습, 애옥한 살림이 느껴진다.
ⓒ 강기희
개도 만원권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돌던 곳이 함백이었다. 그런 함백이 광업소가 문을 닫자 지역 경기가 바닥을 쳤다. 함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최용운은 소설 <그 곳에는 까만 목련이 핀다>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식구 중 누가 광산에 다닌다는 것은 바로 풍족을 뜻했다. 매달 초면 나오는 임금과 안남미일망정 허연쌀을 타오는 배급날, 그 배급을 타기 위해 도장과 전표를 들고 선 얼굴의 여자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런 엄마가 해주는 쌀밥을 배불리 먹고 군것질까지 하는 애들을 이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것이 정신의 다툼이 됐든, 육체의 싸움이 됐든 마찬가지였다." (최용운 장편소설 <그 곳에는 까만 목련이 핀다> 한 토막)

함백의 호시절은 그렇게 갔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함백역을 지나던 기차도 정차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함백을 지나는 기차는 두 개 노선이다. 하나는 함백역이 있는 함백선이고, 또 하나는 함백선보다 후에 개통된 태백선이다. 태백선과 함백선은 함백 시가지를 중간에 두고 양쪽으로 달린다. 그러니까 함백선은 순전히 함백광업소에서 생산되는 탄광을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인 셈이다.

'검은 땅' 함백에서 만난 아이들

▲ 아이들이 다리 난간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 강기희
함백역으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데 다리 난간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지 않고 왜 이 곳에 있느냐는 질문에 "집에 가면 심심하잖아요"라고 대답한다. 심심하다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을 잠시라도 심심하지 않게 해줄 재주가 없는 탓이다.

함백을 관통하는 냇물은 물이라 칭하기 어려울 정도다. 개울 바닥은 누렇게 녹이 슬어 있고 흐르는 물 또한 녹물과 다름없다. 폐광에서 나오는 오수가 개울로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었다. 검은 물이 흐르던 개울이 이젠 녹슨 물로 변했을 뿐 함백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다.

아이들은 녹슨 개울물을 건너 학교를 오간다. 아이들에게 녹슨 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려다 너무도 잔인한 일 같아 그만둔다.

함백교를 건너니 국화로 장식한 조화가 하나 서 있다. 빈들에 무슨 조화일까 싶어 가까이 가본다. 조화의 리본엔 '정선군의 무관심, 철도청의 횡포'라고 쓰여 있다. 또 하나의 리본에는 '근조 함백역'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누군가 함백역의 철거를 애도하는 조화를 현장에 놓아 두었다.
ⓒ 강기희
조화가 서 있는 곳이 함백역이 있던 자리인 것이다. 건물이 보이지 않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조화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함백역이 철거된 자리에는 굴착기 자국과 버려진 서류만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날리는 서류를 주섬주섬 챙긴다. 함백역장의 사인이 들어있는 서류들과 하루의 일을 기록한 서류들이 한데 모여졌다. 반쯤 찢긴 서류엔 흙이 잔뜩 묻어있다. 서류를 챙기며 뭐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기가 막혀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1957년 함백광업소와 함께 문을 연 함백역은 지난달 31일 철거되었다. 사람들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며 추억에 젖을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 함백에서는 함백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던 추억 하나가 사라졌다.

철거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작전을 치르듯 진행되었다. 버려진 함백역을 추억의 박물관과 안경다리와 함께 문화벨트로 활용하려던 진용선(정선아리랑학교장)씨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함백역이 사라지면서 진씨가 구상했던 문화벨트도 끊어지고 말았다.

정신과 추억이 함께 없어진 함백역

▲ 철거 전 함백역의 겨울 모습(함백에 있는 '추억의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직접 찍은 것입니다).
ⓒ 강기희
▲ 함백역이 있던 자리.
ⓒ 강기희
함백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진용선씨는 함백역이 철거되자 울화가 터져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진씨는 내게 "이런 게 정선의 모습이라면 정선을, 아니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진씨는 정선군 홈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얼마 전에는 함백역이 철도 마니아가 뽑은 '가볼 만한 간이역 5'에 선정되었다. 함백역의 가치와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 늘어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년 3월 함백역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함백역 앞 공간에서 열기 위해 기억 속에 아는 분들을 동원해 한참 물밑작업을 진행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국가가 지원하는 탄광지역 생활공간 보존사업 추진도 급물살을 타는 듯해 함백역과 안경다리가 살아있는 근현대사 마을로 거듭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지난 10월 31일 저녁, 학교를 올라가는 길에 함백역이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차에서 내려 어둠 속에서 바라본 함백역은 아뿔싸 폐허로 변해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함백역의 오롯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라져간 모습에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흘 동안 철거 하나 막지 못했나 하는 슬픔과 분노의 시간을 보냈다." (진용선씨의 글 '함백역이 사라진 자리-이같은 파괴를 증오한다' 몇 토막)


이제 함백의 정신과 추억이 담겨있던 함백역은 역사 속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철도시설공단 측에서는 지난 9월 정선군청에 함백역 철거계획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때 정선군청에서 철거하지 말라는 말만 했어도, 함백역은 아름다운 역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선군청에선 나전역만 언급했을 뿐 함백역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고 한다.

▲ 지금은 사라진 기차 이정표(함백에 있는 '추억의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을 직접 찍은 것입니다).
ⓒ 강기희
함백역이 사라진 1차적 원인은 철도시설공단에 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정선군청에 있다. 철거를 막을 수 있는 입장에 있던 정선군청은 정선군의 문화자산을 소홀히 대했다는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철도시설공단은 함백역뿐 아니라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40여 개의 역을 더 철거할 계획이란다. 철도시설공단은 철거를 결정한 역이 있다면 응당 지역의 문화예술계와 주민에게 의견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 땅의 근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마구잡이식으로 철거하는 것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일이 아니던가.

진씨는 지역주민들과 상의해 철거된 함백역을 복원할 계획이란다. 그러나 한번 파괴된 함백역의 정신과 추억까지 함께 복원될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숱한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걸 감안할 때 우리는 아직 미문명 사회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함백에 바람이 분다. 철거 현장에 남은 역사의 잔해들이 유골처럼 웅웅 운다. 함백역을 스쳐간 수많은 이들의 추억 또한 바람이 되어 함백을 떠돈다. 함백을 떠나기 전 국화꽃 한 송이를 잔해더미에 놓고 묵념을 한다.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 함백역과 모든 것들을 위해.

▲ 사라진 함백역 철길 옆에 핀 억새. 충격을 받은 듯 말이없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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