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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Freie Universitat Berlin)의 베르너 페니히(Werner Pfennig)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북핵실험 이후 햇볕정책은 그 어느때보다 더 필요하다'(After the nuclear test: "Sunshine Policy" is more needed than ever)는 제목으로 기고문을 보내왔다.

페니히 교수는 특히 이 글에서 "빌리 브란트 총리의 가까운 측근 중 한명이 동독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폴리틱'(동방정책)에 대한 큰 논란이 일어났지만 결국 인내, 저력, 그리고 필요한 조치들을 그때그때 취하면서 '동방정책'은 끝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됐다"면서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끈다. 이는 북한 핵실험 이후 불거진 일부 386 운동권 출신의 대남공작원 접촉 사건을 '386 간첩단' 사건으로 대서특필하면서 '햇볕정책'의 실패로 규정한 국내 보수언론의 시각과는 상반된 것이다.

현재 이 대학 부설 중국·동아시아 정치연구센터의 선임강사(Senior Lecturer)인 페니히 교수는 "한국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인터넷 신문에 기고해 한국민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란다"면서 영문으로 된 이 글을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될 수 있는 대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문을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주>
▲ 평양시내 육교에 걸려있는 선전 간판. 핵보유국의 자랑을 안고 선군혁명총진군에 새로운 박차를 가하자고 돼있다. 그 밑으로 대표단 벤츠 차량이 달리고 있다.
ⓒ 민주노동당 제공

10월초 북핵실험은 많은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북핵실험으로 인해 '햇볕정책'이 크게 비판받았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햇볕정책의 미래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1974년 5월에 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가까운 측근 중 한명이 동독의 스파이로 활동해 체포됐다. 이로 인해 '오스트폴리틱'(Ostpolitik, 동방정책-편집자주)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동시에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인내, 저력, 그리고 필요한 조치들을 그때 그때 취하면서 '동방정책'은 끝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됐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실제로 무엇이 변했는가

오랫동안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번 북핵실험으로 북한의 핵개발이 더 확실시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해괴한 정권 중 하나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기 때문에 세계는 위험에 빠지게 됐다는 우려가 일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은 일부만 성공했으며 북한이 실제로 사용가능한 핵무기를 만들려면 아직 멀었다는 관측이 있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지 않는 이상 2차 핵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북핵실험으로 인해, 우리가 지금까지 추측만 했던 것이 더욱 진실로 밝혀졌다. 이는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에 대해 과민반응할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 득인가

분명한 것은 북핵실험이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시켜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해온 부시 행정부, 우경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일본의 새로 당선된 총리에게는 북핵실험이 득이 되고 있다. 또한 석유는 없고 핵무기만 있는 한 국가(북한- 편집자주)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이란에게도 득이다.

현재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실험을 막지 못했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이다. 그러나 유엔과 협력하고, 미국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현재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의 대규모 탈북사태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의 현상황 유지와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억지력에 대한 북한의 계산

▲ 지난달 19일 오후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UN의 대북제재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보수단체 회원들이 18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서 '한명숙 내각 총사퇴, 이종석 통일부장관 축출, 대북협력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억지력이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그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억지력의 추구는 초기부터 미국과 북한 간에 존재했다. 북한은 살아남기를 원하고, 그 누구도 (몇 안 남은 동맹들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는 체제의 취약함이 그 체제의 강점이 되는 특이한 경우이다. 북한의 적들도 북한의 붕괴는 위험한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이것만으로는 체제유지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고, 핵무기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보험(the most reliable life insurance)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에게 독일 통일(흡수통일-편집자주)은 경계의 한 사례이고, 이라크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은 독재자로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침략과 정권 교체를 정당화했지만 종국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이 얻은 명백한 교훈은 핵무기를 보유하면 공격당하거나 제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은 예측하기 어렵고 고립돼 있을 뿐 아니라 다루기 어렵지만 정신이 나간 미친 사람들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서울을 초토화(to destroy Seoul)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양의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를 높이고, 정치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은 다른 국가들의 주의를 끌기를 원하고 이를 위한 남은 방법은 핵개발이었던 것이다.

'햇볕정책'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onwards)'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한국과 북한 두 국가만의 내부정책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다. 이는 장기정책으로 동아시아 지역주의(East Asian Regionalism) 내에서 발전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햇볕정책'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6년이 된 오늘날, '햇볕정책'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다. 독일의 경우, 관계정상화 노력이 1970년에 시작됐다. 독일의 화해정책은 19년만에 통일을 이뤄냈다.

분단된 두 국가들간의 관계 정상화 노력은 한쪽의 일방적 양보로 시작되는 것이다. 북한에 퍼주기만 했다는 비판이 한국에서 일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룩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장기정책은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과거 거의 모든 방편 (전쟁·억지·대치·제재·협상·의심스러운 협력 등)을 사용해 봤지만 한반도 관계정상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햇볕정책'은 새로운 접근방법이다. 이는 정치적 몽상가들이 만든 정책이 아니라, 평화적 공존, 평화적 교류, 협력, 그리고 평화통일 등의 중요한 단계를 서서히 밟아나가는 정책이다. 햇볕정책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단기적 임시방편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이런 점을 확실히 했다. 윈-윈을 바탕으로 한 장기적 정책이어야 하며 국제적 틀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초석을 마련했던 2000년 3월 '베를린 선언'에서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목표는 평화, 화해 그리고 협력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2006년 1월 신년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양쪽 모두를 위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고 유일한 해결방안은 대화(the only solution lies in dialogue)라는 것을 강조했다.

▲ 페니히 교수는 "브란트 총리 측근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폴리틱'(동방정책)에 대한 큰 논란이 일어났지만 결국 인내, 저력, 그리고 필요한 조치들을 그때그때 취하면서 '동방정책'은 끝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보수 신문들이 일부 386 운동권 출신의 대남공작원 접촉 사건을 '386 간첩단' 사건으로 대서특필한 것과 대조적이다.
ⓒ <조선일보> PDF
무엇이 부족한가

베르너 페니히 교수는 누구?

▲ 페니히 교수.
베르너 페니히(Werner Pfennig) 교수는 제2차세계대전 중에 태어나 분단된 베를린 양쪽에서 성장했다.

페니히 교수는 베를린 자유대학(Freie Universitat Berlin)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한 후에 이 대학의 동북·동남아시아정치센터 주임 등을 맡아 분단국, 관계정상화, 통일 문제 등을 중점 연구해왔다. 그는 독일 통일 이후 91∼94년 아세안지역포럼(ARF) 준비회의에도 참여해온 '동아시아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99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아시아학회연맹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 부설 중국·동아시아 정치연구센터(Center for Chinese and East Asian Politics)의 선임강사(Senior Lecturer)이다.
이는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다. 정보가 부족하고, 신뢰가 부족하고, 협력을 통한 경험이 부족하다.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지만 그 이후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가했다.

북미 간의 높은 불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약속의 동시 이행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양국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도 말했듯 "워싱턴과 평양은 동시에 주고 받아야 한다(Thats why Washington and Pyongyang should give and take simultaneously)"는 것이다. 동시이행이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약속의 동시이행은 현재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게 되면 국제사회는 제재를 완화시킬 것이다. 6자회담 틀 내에서 미국과 북한은 더 자주 양자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진전이 있다면 이런 양자대화는 양국간의 공식적인 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서로 대화하려는 의지가 강해져야 한다. '햇볕정책'은 이런 민감한 과정에 걸맞는 우호적인 환경을 마련해줄 것이다('Sunshine Policy' can provide the suitable climate for the cultivation of this sensitive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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