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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신천동에 위치한 국민연금관리공단 본부 건물.
ⓒ 남소연

국민연금은 과연 노동자·서민을 위한 복지제도인가? 우리가 지켜낼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보험인가?

최소한 진보진영에서 일한다면 사회복지의 기둥인 국민연금을 옹호해야 할텐데 국민연금을 알게 될수록 이 질문에 대해 이전보다 머뭇거리게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입자들은 충분히 '수혜'를 얻고 있다. 독자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겠지만, 노동자의 경우 사보험에 비해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평균 5배를 넘는다.

사보험에 100원을 납부하면 노후에 약 80원을 돌려받지만, 국민연금은 사용자가 납부한 100원을 합한 200원이 원금이 되고, 나중에 지급받는 연금총액이 400원을 넘는다. 9% 보험료를 전액 자신이 납부하는 지역가입자도 200원을 받으니 사보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강제가입이라는 점 때문에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번듯한 노후자산이 없고 사보험의 높은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서민에겐 그나마 국민연금이 노후 준비에 가장 유리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사보험보다 많이 돌려받는데 딴죽거는 까닭

내가 국민연금에 의문을 품는 근본적인 이유는 너무도 많은 서민들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840만 비정규 노동자 중 67%인 564만명이 사업장 국민연금 밖에 있고, 지역가입자 절반이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 없는 납부 예외자로 전락해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겐 높은 급여를 선사하지만, 미가입자에겐 아무런 혜택이 없다. 미가입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노동자·영세자영자. 이들은 젊었을 때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겪고 늙어서는 연금 수혜의 양극화를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지난 3년간 국민연금 논란의 성과를 꼽으라면 단 한 가지,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존 가입자의 급여율과 보험료율 조정을 다루던 국민연금 개정안이 사각지대 해소방안으로 눈을 돌렸다. 이건 정말 크나큰 도약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미가입자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담을 수 있다면 나는 홀가분하게 국민연금을 홍보하러 돌아다닐 것이다.

현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연금보험료를 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보험료를 내지 못해도 노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정한 노후생활급여를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그 답이다. 기초연금은 이미 여러 서구 복지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정부도 "기초연금은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제도"라며 반대해오다 지난 6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기초노령연금을 전격 제안했고,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의해 입법 발의되었다(아직 공식당론은 아니나 78명이 서명한 개정안이므로 이후 정부여당안으로 표기한다).

사각지대 해소한다면, 나는 국민연금을 홍보하겠다

▲ 지난 2004년 12월 24일, 서울 영등포 일대 빈민지역인 일명 '쪽방촌'에서 열린 성탄예배에 모인 빈곤 노인들(자료사진).
ⓒ 남소연
지금 국회에는 정부여당의 기초노령연금안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안이 모두 올라와 있다.

정부여당의 기초노령연금은 2007년부터 65세 노인 60%에게 월 7~1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이다. 연금의 급여율(연금액/가입자 평균소득) 개념을 적용하면 이 금액은 5% 수준이다.

대신 국민연금 급여율은 50%로 인하된다. 기초노령연금은 도입 첫해에 2조2천억원이 소요될 예정인데, 정부는 조세특례감면액을 줄이고 예산지출을 절약해 이 재정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비해 야당의 기초연금안은 지급대상에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포함한다. 목표 급여율도 높아서 민주노동당안은 15%, 한나라당안은 20%이다. 금액으론 월 24만원, 32만원이니 취약한 사회복지에서 살아온 우리에겐 굉장한 소식이다.

역시 기초연금이 도입됨에 따라 국민연금 급여율은 민주노동당안은 40%, 한나라당안은 20%로 인하된다. 이제부터 주의깊게 각 사각지대 방안을 살펴보자.

정부여당의 기초노령연금은 처음에 급여율이 5%로 시작하나 점차 줄어든다. 매년 물가상승율만큼 금액을 인상하는 까닭에 그보다 높은 인상율을 지니는 평균소득과 대비하면 갈수록 급여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향후 물가상승율이 연 3%이고, 소득상승율이 6%라고 가정하면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은 2030년 즈음에 2%대에 불과하다.

현재 돈으로 4~5만원이다. 결국 기초노령연금은 지금은 생색을 내지만 점차 소멸하는 제도로 사각지대 해소방안으로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보다도 높은 20% 급여율의 기초연금을 제안한다. 이 기초연금은 2006년에 급여율 9%(14만원)로 시작, 2028년에 20%에 도달한다. 도입 첫해에 소요되는 비용이 9조5천억원(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국민연금 보험료율 2% 포인트 인하분을 상쇄해 계산해도 4조8천억원)이고, 2030년에 필요재정이 GDP 5.5%에 이른다.

높은 기초연금액은 환영할 만 하나 재원방안이 전혀 없어 황당하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감세를 주장해 왔다.

민주노동당안은 한나라당에 비해 필요재정을 56%로 줄이는 '알뜰 기초연금'이다. 목표 급여율을 15%로 완화하고, 상위 20%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며,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일부를 감액한다. 도입 첫해에 3조5천억원(장애연금을 제외하면 2조9천억원)이 소요되고, 2030년에 GDP 2.9% 재원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개혁=조세개혁"

세 방안은 모두 사각지대 해소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안은 지금은 조금 생색을 내지만 이후 사라지는 '소멸세포'이고, 한나라당안은 감세정당에서 생존할 수 없는 '허위세포'이며, 민주노동당안은 처음에는 정부여당안과 엇비슷하게 5%에서 시작하지만 20년에 걸쳐 15%로 커가는 '줄기세포'인 셈이다.

민주노동당 기초연금에 남는 과제는 미래 재정마련이다. 아무리 알뜰하다지만 2030년 GDP 2.9%(불변가격 51조원), 2070년 4.2%(104조원)가 정부예산에서 충당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국민연금 개혁은 곧 조세개혁"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과연 미래에 우리사회가 이 재정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 미래에 노인인구가 빠르게 늘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노후를 위한 재정지출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2000년 OECD국가의 평균 공적연금 지출액이 GDP 7.2%, EU 15개국 평균은 10.4%이다. 민주노동당안의 미래 필요재정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포함해서 2030년 5.3%, 2070년 9.4%이다(한나라당은 10.9%). 앞으로 70년 후에 우리가 지금 유럽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04년 우리나라 국민부담율(조세+사회보험료)은 GDP 25.3%로서 OECD 평균 36.3%에 11% 포인트나 모자란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거의 90조원에 해당한다. 왜 정부는 국가재정에서만은 글로발 스탠다드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안과 재정개혁안은 비정상적인 한국의 재정규모를 OECD 회원국 만큼 갖추자는 제안 이상이 아니다. 그것도 수십년에 걸쳐서 말이다.

▲ 오건호 위원
이제 국민연금 논란을 매듭지어야 할 때다. 정치권, 가입자단체 모두 연금개혁의 핵심과제로 사각지대 해소를 말하고 있다.

단, 미래에 소멸하는 생색내기 기초노령연금, 감세론과 양립할 수 없는 허위 기초연금을 넘어, 알뜰 기초연금에 주목하자. 그리고 국민연금에 쏟았던 우리사회의 에너지를 조세개혁으로 옮겨가자. 연금논란은 거듭될수록 국민 불신이 깊어가지만, 조세논란은 깊어질수록 우리사회 재정이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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