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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층 가족의 몰락을 그린 영화 <바람난 가족>
ⓒ 명필름

90년대 후반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신들이 소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80%에 달했다. 중산층은 명확한 기준이 없는 불안한 개념이기는 하다. 지배층이야 어떤 사람들인지 금방 알 수 있고, 노동자도 금방 알 수 있고, 하다못해 차상위계층까지 통계 범주로 잡기 시작했기 때문에 알 수 있지만 중산층은 불안한 심리적 개념이다. 도대체 누가 중산층이야?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중산층이다.

이 80%에 달했던 중산층이 최근의 조사들에 의하면 50%로 줄었다. 반면 이 기간 동안에 국민소득은 8000달러 근처에서 12000달러를 사뿐히 넘어서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평균적 소득 기준으로만 하면 분명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50% 이상 소득이 늘어났어야 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보유 대수도 이 기간 동안에 1000만대를 넘어섰고, 수입차 소비도 100대 미만에서 수십배 시장 구조가 커졌다.

그러나 역으로 30%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90년대 후반에서 2006년도에 달하는 약 10년 동안에 어떤 일인가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이 변화가 모든 사람, 즉 부유층과 극빈층에게 골고루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한때는 80%에 달했던 특정계층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역사적으로 중산층은 불안한 집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산층 기반이 튼튼할 때 한 사회가 조금 '점잖은' 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중산층이라는 사회적 범주가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정권 때의 일이다.

그야말로 한국식 '보통 사람들의 시대'가 바로 87년 체계인 셈이다. 87년의 9차 개정헌법으로 출발한 87년 체계를 안정화시킨 것은 역설적으로 첫 번째 정권인 노태우 시절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노무현, 무엇에서 실패하였는가?

한 사회에는 '평균수익률'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평균수익률보다 어느 한 업종이 지나치게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되면 돈과 인력이 그 쪽으로만 들어가게 되어서, 결국에는 경쟁이 지나쳐져서 수익률이 내려가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평균수익률은 이자율과 일치하게 되고, 이걸 아담 스미스는 '자연이자율'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2만불 경제'는 이론적으로 평균수익률을 조금 높게 잡은 것인데, 이걸 조금 높게 잡아서 경제성장률을 조금 높이면 GDP 증가속도가 조금 빨라지고, 그래서 사회가 더 빨리 잘 살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걸 3년 전 노무현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이 평균수익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토목공사와 도로건설 그리고 도시건설 같은 것을 잡았다는 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이걸 그들은 '균형발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 자본을 집중시켜주면서 사회 전체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불균형 성장 전략이다.

두 개의 불균형이 전략으로 사용되었는데, 수도권으로 들어가는 자원을 지방으로 빼는 것이 첫 번째 불균형이고, 중소기업과 자영농으로 더 많이 들어갔어야 할 자원을 지방토목공사에 집중된 건설업으로 집어넣은 것이 두 번째 불균형이다.

이제 괴물이 된 부동산 자본

▲ '중산층 서민을 위한 재무설계' 강연회 모습.(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제 한국 사회의 부동산 대기자금은 거주지의 한계를 벗어나 농지와 나대지 그리고 아파트를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는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도 구분하지 않는다. 한 사회의 모든 대기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이유는 이게 평균수익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론 수익률이 높으면 위험률도 같이 높은 것이 증권시장을 포함한 모든 시장의 경우인데, 벤처자금이나 증권시장이 불안해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자체적인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높은 수익에는 높은 위험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이후 사람들이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2만불 경제가 달성될 때까지 정부는 아파트, 때로는 토목공사에 계속해서 정책적 지원을 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은 '땅'을 매개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개인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험이 동반되지 않는 투자에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고, 생산이 동반되지 않는 투자가 사실상 투기 메카니즘을 따라간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90년대 후반 이후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은행이 특이하게 기록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10년 동안에 생겨난 신화가 한 가지 있다.

부동산 불패...

▲ 개인이 노동 외에 평균수익률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한국에선 부동산 외에는 없다. 부동산 투자 전략 세미나에 모인 시민들.
ⓒ 오마이뉴스 김시연
개인이 노동 외에 평균수익률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적어도 한국에선 부동산 외에는 없다. 노무현 시대에 사실상 종료된 '종신고용제' 몰락과 평균수익률 저하는 마지막 남은 한 부문에 모든 국민들이 목매달게 하는 슬픈 '다이내믹'이 생겨난 셈이다.

40살이 된 나름대로 중산층인 한 사나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노무현 시대의 평균소득 가설에 의하면 이제 사실상의 경제생활이 종료하기 직전이다. 모아놓은 돈? 당연히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사나이의 다음 경제행위가 무엇일까? 조중동의 부동산 항목을 뒤지기 시작해서는 별로 답이 없다. 종이신문에까지 나온 부동산 정보는 이미 6개월 전에 유효시한이 지나간 정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집이라도 한 칸 장만하거나 그래도 분양권에 목매는 사람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나는 손가락질 못한다. 이 시기에 삼성의 이사급 이상, 정부산하단체의 처장급 이상, 그리고 극히 일부일테지만 재경부의 고위간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산층은 이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부동산과 건설시장은 전형적인 '제도 시장' 혹은 '국가매개 시장'에 해당한다. 이건 주택이라는 상품이 워낙 특수하고, 박정희 개발시대에 생겨난 '선분양'이라는 제도가 제품을 보지도 않고 구매해야만 하는 특수성을 만든 데다가, 사실상 국민경제의 핏줄에 해당하는 금융이 이 특수시장에 목을 매달고 있는 상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젖줄을 타고 흘러간 중산층은 재생산되지만, 불행히도 너무 점잖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몰락하는 이 게임이 3년간 진행된 셈이다. 그리고 지방의 골프장을 시작으로 각종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한 기획도시들에서 한바퀴 돌았던 이 부동산 자본이 드디어 수도권에 상륙한 셈이다.

평당 500만원 하던 10년 가량된 아파트가 1주일도 안 되어서 1000만원이 되었다. 달러 이자도 이런 달러 이자가 없다. 이 매력적인 시장에 투자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에 투자하란 말인가?

국민경제는 아사 직전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일부 정부 기금을 제외하면 민간 부문의 펀드는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1만불을 넘어가면 생겨나는 민간 복지기금 등 사회간접자본과 공공 지원장치 같은 것들이 형성되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부동산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전부문에 돈이 씨가 말랐다.

수익률이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시장이라고 거칠게 표현된 이 교환의 제도는 한국에서 사실상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수익률 게임과 비슷하다. 금전으로만 표현된 평균 수익률에서 지방은 절대로 수도권을 따라올 수가 없다.

이게 수도권의 과대팽창을 억제한 이유이고, 온갖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 총량제가 도입된 이유이다. 지방과 수도권 사이에 불안한 힘의 균형이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억제책이었던 셈이다.

서울은 이명박의 뉴타운으로 이 힘이 깨졌고, 수도권은 '명품도시'로 깨졌다. 시장이 불안하게 수도권과 지방도시의 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힘 싸움이 새로운 균형으로 갈지 아니면 과거로의 회귀가 될 지에 대한 지루한 머리 싸움이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서너 달 지나간 셈이다.

이 힘이 완전히 깨어진 것이 '수도권 신도시 개발'이다. 앞으로 빨라야 3년이나 걸리게 될 이 작은 뉴스 하나가 시장을 뒤집어 놓은 것은 검단과 파주에 공급하는 아파트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결국 지리했던 힘 싸움에서 소위 '중앙파'가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 년간은 부동산 외에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제 총자본을 넘어서는 부동산 총공급에 의해서 버블이 깨어질 것인가 밖에는 없다. 온 국민이 은행권 대출창구를 두드리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선진국이 된 경우는 역사상 한 번도 없지만, 그 폭발의 메카니즘 문턱을 한국 경제는 이미 넘어간 셈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문제이다.

한 사회의 평균수익률은 공간에 대한 자원배분의 변수이기도 하고, 자본간 수익률 배분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대한 자원배분의 척도이기도 하다.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지금 소비하는 방식을 택하고, 수익률이 떨어지면 소비를 뒤로 미루는 방식을 택한다. 이걸 '세대간 소득분배'라고 부른다.

아주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부동산 시장과 같이 특수하게 수익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면 다음 세대가 소비할 것들을 당겨서 현 세대가 미리 소비하게 된다. 부동산의 경우는 부모가 돈을 벌어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는 개인적 생각을 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현 세대의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

치명타는 중산층의 재생산!

단기적으로 부동산 버블폭발에 의해서 노무현 시대를 살았던 모든 어른들은 경제적으로 한 번은 치명타를 받게 된다. 물론 정책적으로 그런 폭발을 막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장치를 사용하겠지만, 이윤율이 가지고 있는 '무정부성'에 의해서 일단 시작된 투기 메카니즘을 정지시킬 정책적 수단은 시장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부동산과 토목공사에 목매달았던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전 서울시장 그리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관료들의 전면에 서서 만들어낸 지난 3년 간의 이 시스템은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들과 함께 동반몰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중산층, 정확히는 '중산층 2세'에게서 생겨난다. 만약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중산층은 2세를 중산층으로 재생산하기 어렵다. 그들이 빈손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집 한 채를 가지고, 가처분 소득 10년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다음 세대에서는 반복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의 2세는 가난한 사람들로 재생산된다. 그들의 2세가 중산층으로 상승하는 길은 조폭이 되는 길 외에 사실상 이 사회가 막아놓고 있는 셈이다. 더 몰락할 것도 없는 이 집단은 재생산된다.

이건희를 비롯한 상류층도 재생산된다. 그들 중 공적인 직무, 즉 장관이나 총장 혹은 국회의원의 역할을 분담하게 된 일부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자라겠지만 이미 많은 상류층은 미국 시스템으로 편입되어서 부를 이전받으며 다시 상류층으로 재생산된다.

문제는 중산층 2세에서 생겨난다. 지금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있을 중산층 2세, 그들에게 이 시스템은 어떤 희망과 꿈도 제공하지 못한다. 열린우리당이니 한나라당이니 하면서 만들어낸 그들의 '가상적 논쟁'은 전체적으로 중산층 2세들에게는 음험한 공모자들이다.

사회는 실질적으로 그들이 사용해야 할 자본과 재원을 앞당겨 사용하면서 그들이 누려야 할 기술적 인프라, 지식의 인프라 그리고 복지의 인프라에 들어갈 민간 자본들을 모두 부동산에 집어넣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비정규직이 뻔하고, 3년 이상 한 직종에 근무하기 어려울 이 중산층 2세들에게 검단과 파주의 아파트 열풍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30대와 40대가, 우리도 아파트 한 번 살아보자고 달려가고 있는 이 와중에 실제로 웃고 있는 건 이미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부동산 전문가들'이고, 이걸 보면서 진짜로 울면서 절망하는 사람들은 바로 중산층 2세이다.

지금 고등학교에 있거나 아니면 대학을 졸업할 생각을 하는, 그래도 멀쩡한 집에서 사교육을 많이 혹은 적게 받으면서 나름대로 안온한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은 중산층으로 재생산되지 않는다. 그게 이 시스템의 현실이다. "그깟 집값 정도야"가 아니다.

평균 수익률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판교에서 시작해서 '제2 분당'이라고 현세대가 덩더쿵 덩더쿵 하는 사이, 과연 그 제2 분당에 '분당 2세대'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3억원이 넘을 아파트를 턱 하니 2세에게 사줄 수 있는 분당 주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건설회사와 그와 사실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공무원 몇 명 그리고 수도권을 장악한 정치인 몇 명이 만들어낸 시장의 왜곡은 현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정말 심각하게 노리는 셈이다. 이게 건교부 소관사항인가?

재정경제부는 원래 이런 다음 세대까지 포괄하는 큰 그림을 그리라고 있는 곳인데, 경제장관들이 모여서 집 지을 궁리나 하는 경제장관회의를 3년 간 운영하다가 그야말로 다음 세대의 곳간까지 몽땅 저당잡힌 것이 현 형국이다.

대안은 있는가?

▲ 정부의 8·31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1년여 지난 8월 한 시민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표를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이제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주택 시장이나 토지 시장의 좁은 범위에 갇혀 있지 않다. '못난 어른들'은 '까우디요(Caudillo)'라고 부르는 멕시코의 토호들과 행동하는 방법이 너무 똑같다. "국내에서 돈을 벌어 외국에서 만끽한다…" 이게 현재의 한국 사회의 폴라로이드 사진이다.

수익률 50%가 상회하는 돈을 부동산에서 닥치는 대로 빼가는 상류층이 할 일이라고는 외국에서 유토피아를 향유하는 일밖에 없다. 이걸 지지하느라고 소위 하류층과 중산층의 뼈골이 빠지는 것이 '노무현 시대'라고 규정하면, 정확하기는 하지만 눈물이 찔끔 난다.

이 상황에서 '대안'은 없고, '대안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안들은 잘못되었다. '부동산의 것'을 다시 '부동산'에게 주는 대안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사회의 모든 뼈골을 끌어가서 만든 '부동산의 것'을 다시 땅과 아파트에 투자하는 토공과 주공, 그리고 인프라의 메카니즘은 이 상황을 가속시키고, 구조화시키고, 영속화 시킬 수밖에 없다.

대안은 '부동산의 것'의 일부라도 '사회적인 것'에 돌려주는 방식이 되어야 하고, 정확하게는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의 '하이퍼 링크'가 만들어낸, 망가져버린 '중산층 2세'의 메카니즘이 작게라도 복원된다.

지금 한국의 정책은 수도권에서 발생한 부동산의 세금을 지방의 도로에 퍼부면서 민자도로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또 지방에서 생긴 세금을 다시 수도권의 토지보상비로 지불하면서 아낌없이 부동산 투기를 정부가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조세 재순환(tax recycling)'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100년이 가도 한국은 IMF처럼 폭발하기 전에는 이 시스템을 세울 수가 없다.

부동산을 지탱하느라고 민간인들이 은행 빚으로 지불한 돈이 다시 보유세로 들어가는데, 이 보유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은 다시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건설로 들어가고, 더 많은 세금이 나온다.

이 시스템은 돌아갈 수가 없지만, 지금 사실상 '일반회계'와 '경기부양'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결합시켜서 정부가 이렇게 돈을 돌리는 셈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시스템은 다음 세대가 완전히 몰락해서 더 이상 집을 살 수 있는 중산층이 없어질 때까지 영속된다.

예를 들면, 수도권의 신도시에 세금을 부과해서 국민소득 대비로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의 등록금을 지불하면 어떨까? 수십 조원이 움직이는 이 시장에서 몇 개 되지도 않는 국내 대학의 등록금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어디에 쓰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현재의 채권이나 지방세와 국세의 일부를 전환해서 다음 세대에게 1차적으로 가장 큰 압박이 될 대학등록금을 지불하면 안 될까? 혹은 고용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집값에 연동해서 대학등록금을 지불하는 텍스 리사이클링은 사례는 없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국립대학에 연 등록금 50만원 미만의 수준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이미 경제 전체가 다음 세대의 교육비를 미래를 위해서 부담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학 국유화하자고 하면 좌파니, 대학설립의 자유니, 시장질서의 저해니 난리칠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나라 최대의 시장, 우리나라 최대의 다이내믹을 자랑하는 이 신도시의 아파트들에서 그들이 몰락시킨 '중산층 2세'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사회적 지출을 부담하라고 하는 수밖에….

교육은 교육대로 사교육과 유학 열풍이고, 부동산은 부동산 대로 난리이다. 이 모든 것들이 중산층 2세들의 몰락이라는 동일한 효과로 나아가고 있는, 사회적으로는 같은 힘이다. 어차피 폭등한 부동산에 '조세' 정책이 들어간다면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또 투기를 불러일으킬 집 짓는 바보 같은 일은 그만하고, 차라리 대학등록금을 지불하면 좋을 것 같다.

현재의 등록금 대출금을 갚는데, 8년에서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 등록금이라도 부동산에서 지불하는 것이 한국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현 시스템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염치라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은 그렇다.

대학교육은 공짜? 그게 한국 땅에서 실현되면,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 정 안 되면 인문학과 기초과학 그리고 일부 공과계열만이라도 시범사업으로 실시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땅 보러 다니고 보상하고 입지 선정하고, 언론 플레이 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고, 보람도 있는 일이다. 재경부가 조율해야 하는 일은 원래 이런 일이고, 총리실이 조정해야 하는 일도 원래 이런 일이다. 아파트 짓고, 투기열풍 만들라고 국민들이 월급주고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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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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