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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군은 20일 오후 남해군청에서 '서불과차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 윤성효

"서불기례일출(徐市起禮日出)".

수수께끼가 하나 풀리고 있다. 경남 남해 금산 거북바위에 새겨진 고대 그림문자의 비밀이 풀리고 있는 것. 학자들은 이 그림문자는 중국 진나라 시황제(진시황·BC259~BC210)의 시종인 '서불'(徐市)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남해를 다녀가면서 남긴 금석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이 고대 그림문자는 경남도기념물(제6호)로 지명을 따서 '남해 상주리 석각'(南海尙州里石刻) 내지 '서불과차'(徐市過此)라 불리었다. 그동안 이 문자는 우리나라의 고대 문자이거나 거란족의 문자라는 등 다양하게 해석되었는데, 남해군과 서울대 국제서복학회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작업을 벌여왔다.

학자들은 금산 암각은 인위적으로 새겨진 것이며, 중국인 금석학자 하추도(何秋濤)는 주문(籒文)이라는 6개의 중국 글자로 새겨진 '서불기례일출'이라고 했다는 것.

20일 오후 남해군청 회의실에서는 '서불과 남해'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남해군은 지난 3월 서울대 국제서복학회에 금산 암각바위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고, 학술용역 결과에 따라 이날 토론회를 연 것이다.

▲ 남해 금산에 새겨진 고대 문자.
ⓒ 남해군청

▲ 남해 금산의 고대 문자는 중국글자인 '주문'으로 새겨진 '서불기례일출'이라는 6개의 글자를 조합해 놓았다는 주장.
ⓒ 윤성효

주영하 부교수 "남해는 서불 유적 근사치 보유"

▲ 발제를 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부교수.
ⓒ 윤성효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부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중국·한국·일본에서 전해내려오는 '서불' 관련 전설 등에 대해 정리했다. '서불'과 관련한 문헌으로는 <사기>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한다. <사기>에 보면 "서불 등이 상서를 올리고 … 서불을 파견하고 동남녀 수천명을 보내어 바다에 들어가 선인을 찾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또 <사기>에 보면 "서불 등이 바다에 들어가 신약(神葯)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얻기는커녕 비용만 과대하니 견책이 두려워 거짓말을 아뢰어 약을 얻을 수 있으나 큰 상어에 지치다보니 결국 얻지 못하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국의 최초 서불 관련 문헌은 조선 성종2년(1471년) 신숙주가 저술한 <해동제왕기>이고, 이후 이익의 <성호사설> 등에도 나온다. 일본에서도 서불과 관련한 문헌이 있다는 것.

또 중국과 한국, 일본에도 서불과 관련한 전설이 여럿 전한다. 한국의 경우 제주도 서귀포 정방폭포를 비롯해 남해군 서리곶, 통영 소매물도, 고흥 팔경산 등에 관련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

주 부교수는 "중국의 한 서불 관련 웹사이트에 소개된 한국의 서불 유적지를 소개하면서 남해 상주리의 암각화를 가장 으뜸으로 소개한다"면서 "그만큼 남해의 서불 유적은 동북아시아 어느 지역에 비해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해군이 서불 유적 중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실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라면서 "남해군에서 가칭 '남해서불지식정보센터'를 설립하고, 이 센터는 전시관이면서 도서관과 지역주민 정보센터의 기능을 담당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일권 연구위원 "다양한 해석의 여지 남겨 놓아야"

김일권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금산 암각바위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를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불과차' 암각문의 실재 유물자료는 남해 금산의 야산 기슭에 놓여있는 거북바위뿐"이라며 "기존에 서귀포 정방폭포의 절벽에 동일한 암각문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로서는 그 실물 내지 흔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중국인 금석학자 하추도(何秋濤)가 '서불기례일출'의 주문(籒文) 6자로 해석한 관점을 견지하려 한다"면서 "한학자 오문복의 견해에서는 중국의 옛 글자의 하나인 '과두문'으로 해석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주문'이든 '과두문'이든 서체의 판별도 중요하지만 글자의 내용 판독이 현재로서 아무도 선뜻 나설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면서 "새겨진 글자가 '서불과차' 네 글자인지 아니면 '서불기례일출'의 여섯 글자인지부터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글자의 난해성 자체가 고문자 각자설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므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면서 상주리 암각문의 의의를 확산시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20일 오후 남해군청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 윤성효

자문위원들 '인위적으로 새긴 글자'

전경수 서울대 교수는 '서불'을 문화콘텐츠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서불 신화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이어주는 이야기"라며 "동아시아 문화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 되지 않는 문화요소들 중의 하나로 서불 신화에 대한 의미로 천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관광 상품화해야 한다면서 "'불로초 진열관'과 '금산 암각의 디자인화', '서불극장' 등의 추진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자문위원인 하영휘씨는 "하추도는 이 석각이 '주문'이라고 했는데 서불이 살았던 시기에는 이미 중국문자는 소전(小篆)으로 통일된 뒤였다"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문으로 썼을 개연성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좌용주 경상대 교수(지구환경과학)는 "이 암반은 지하로부터 지표까지 연결된 암체의 일부가 아니라 어디선가 떨어져내려 지표에 널려있게 된 전석(轉石)에 해당한다"면서 "암각문자가 암반의 표면에 새겨진 것으로 보아 전석으로 떨어진 다음 암각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좌 교수는 "암각문자가 새겨진 암반의 표면에는 많은 정동(암석 표면에 분포하고 있는 작은 크기의 구멍)이 발달해 있고, 암각문자는 이 정동을 이용하여 새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백인성 부경대 교수(환경지질과학)는 "이 석각이 자연적 풍화침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바위 표면에 새긴 결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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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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