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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이용자들은 이번 자전거 활성화 정책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자전거 커뮤니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에 실린 댓글들.
ⓒ 김대홍

'서울시내 차도 폭을 줄이는 대신 그 자리에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든다.'

지난 17일 서울시가 발표한 '자전거 이용 활성화 방안'의 핵심 내용이다. 지금껏 우리나라 자전거도로는 인도 옆 또는 하천변이었다. 레저용 또는 보행자에 가까운 교통수단으로 인식했던 것.

하지만 이번 발표에 따라 자전거는 명목상 '차'가 아니라 실제 '차'의 지위를 얻게 됐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차폭을 줄이는 '도로 다이어트(Road-Diet)'와 또 하나는 차로수 축소다.

이로 인해 기존 인도는 변함이 없지만 자가용 운전자들은 현재보다 줄어든 차도를 달려야 한다. 일단 자동차 운전자들은 부정적 반응이 강한 편이다.

17년째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김종덕(경기도 남양주 거주)씨는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조치"라며 비판했다. 접촉사고가 빈번해지고, 운전이 서툰 사람들은 당황하게 될 것이라는 것. 이어 "차도를 자전거와 나누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더 활성화하는 게 보다 효과적인 조치일 것"이라고 서울시가 방향을 달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동해시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김기춘씨(15년째 자동차 운행)는 "운전이 능숙한 사람은 차도 폭이 줄어도 크게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운전이 서툰 초보운전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안전하다는 인식을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심어줘야 할 것이고 밝혔다.

서울시와 함께 관련 문제를 협의하게 될 서울지방경찰측은 판단을 유보한 상태. 어느 곳에 할 지 지점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 운전자들 구체적 실행 방법에 촉각

이번 조치에 대해 자전거 이용자들과 전문가들은 일단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알 수 없어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자전거 커뮤니티인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 회원들이 기사 댓글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기대 속 우려라는 복잡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런 기사 나오면 그냥 좋아만 하고 있다가 해놓은 것도 없이 슬그머니 정책이 바뀌면 그때 가서 욕하고…. 더 이상 그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정책과 계획이 제대로 실현 되는지 우리가 나서서 감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레쥐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나 실적보다는 차후 얼마나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 왈드번치

"잘 시행이 될지 걱정부터 앞서는 건 왜일까요. 모쪼록 이번에는 말 바꾸는 일 없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 이린


▲ 서울시가 지난 17일 밝힌 <자전거 활성화 정책>의 핵심 내용은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게 한다는 것. 사진은 이번 정책에서 밝힌 도심 자전거도로 연결망이다.
ⓒ 서울시
민만기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일단 좋다고 운을 뗐다. 민 사무처장은 "차로 폭은 주행속도와 관련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나라는 도심 내 제한속도가 굉장히 높아 과속사고가 종종 일어나고, 넓은 차로 폭 때문에 불법 주차가 만연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차로 폭 제한이 이런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것.

이어 "차로 폭을 줄이면 일시적으로 주행속도가 떨어지겠지만 병목현상을 없애면 오히려 평균 속도는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운전자와 주민의 공감을 얻는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면서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정책 설명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안에너지로서 자전거를 연구하고 있는 '대항지구화 행동'의 이화숙씨는 "가치에 대한 공감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조건을 달았다.

즉 차폭을 줄이면 자동차 속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껏 누려온 자동차 기득권을 시민들이 포기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이어 교통흐름 조정에 대해 미리 설명하지 않고 밀어붙이면 쉽게 좌초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차도에 자전거차선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꾸준히 해온 '발바리'의 김용욱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에 대해선 좋다고 하지만, 차도를 자전거에 할애하는 데 대해선 싫어한다"면서 그런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과제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유럽 또한 이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자전거 문화를 만든 만큼 해외 사례를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 뒤 "되도록 자전거 이용자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도로 다이어트, 실적 중심 경계해야

▲ 서울시는 자전거전용도로 확보를 위해 차폭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 서울시
그렇다면 도로 다이어트를 했을 때 교통 흐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이번 서울시 발표에 어느 구간에 어느 정도 거리를 어느 정도 폭으로 줄일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또한 차 이용률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도 따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도로 다이어트를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효과 또한 정리돼 있지 않은 상태.

국내외 자전거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최진석 책임연구원은 당장 도로 다이어트를 실시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로 다이어트는 주차 공간 확보 차원 목적으로 교통 전문가들 사이에서 몇 년 전부터 이야기됐던 주제라는 것. 주차공간이 자전거전용도로로 바뀐 것 뿐이라고 언급했다.

오히려 한적한 도로를 다이어트 해놓고 실적으로 올리지는 않을지 모르겠다며 실적 중심의 행정을 경계했다.

또 다른 문제는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확보한 자전거전용도로의 적절한 위치. 최 연구원은 버스중앙차로 옆이 좋다고 밝혔다. 좌우측은 승용차와 갈등을 빚을 수 있고, 불법주차 문제 때문에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환경운동차원에서 자전거를 연구하는 윤호섭 국민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자전거전용도로의 위치가 어디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차도를 자동차와 자전거가 함께 쓴다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즉 자전거전용도로가 있지만 필요에 따라선 자동차가 쓸 수도 있게 한다는 것.

단 자동차는 자전거를 절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윤 교수는 "자전거전용도로와 차도 사이에 블록을 쌓는 형태로 구분을 짓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못 박았다. 몇몇 연구가들은 블록을 쌓는 게 자전거운전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단 이번 조치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담겨 있지 않다. 실행 일정, 실행 주체도 포함돼 있지 않다. 앞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추가 계획서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민만기 사무처장은 "차도에 자전거도로를 설치할 때 유럽에선 사회 가치에 대한 일대 토론이 벌어졌다"면서 "승용차 운전자, 자전거 운전자, 보행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자전거 지하철 연계 방안 들어 있어

▲ 차폭 축소와 함께 제시된 방안인 차로수 축소.
ⓒ 서울시
이번 '자전거 활성화 방안'엔 도로 다이어트 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방안이 '도심 자전거 도로' 건설. 쇼핑센타, 문화시설, 종교시설, 학교, 도서관, 주민자치센타 등 생활편의시설과 자전거도로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자전거와 지하철을 연계할 수 있도록 대형 자전거 주차장을 설치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600평 2000대 규모로 꽤 큰 규모다. 현재 1구 1개소씩 설치한다는 방침만 나와 있다. 자전거 관계자들은 지하철 내 빈 공간을 활용해 실내 주차장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별도 대안을 내놓고 있다.

자전거 대여, 수리, 폐 자전거 수거 등 자전거 일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탈 서비스 센터 설치도 지금껏 없었던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설치 지점. 지금 자전거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한강과 지천변에 관련 시설이 거의 없어 세밀한 현장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박물관과 같은 공공시설 이용시 요금 할인을 받게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 외에 자전거 조례 재정, 자전거 교실 운영, 저소득 소외계층 학생을 위한 자전거 무료 보급 운동 전개, 자전거활성화 전담교사 지정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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