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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은 금거북이 등에 경전을 싣고 가는 모습이다. 대웅전 뒤 바위는 경전바위다.
향일암은 금거북이 등에 경전을 싣고 가는 모습이다. 대웅전 뒤 바위는 경전바위다. ⓒ 정근영
향일암. 여러 번 가 본 곳이긴 하지만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사하문학회 문학기행으로 남해를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향일암을 가는 줄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향일암을 다시 가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남해안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렸다.

부산에서 여덟시를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대략 네 시간 가량은 달려온 셈이다. 전에 향일암에 갔을 적에는 절까지 차로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차는 주차장에 대놓고 셔틀버스로 가도록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가자니 시간은 좀 걸리지만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갯바람, 갯내음을 맡으며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느새 향일암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향일암 가는 길을 모르는 선두에 선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서자 길거리 가게 주인이 바르게 일러 주어서 바른 길을 찾아갔다.

일주문의 용 무늬
일주문의 용 무늬 ⓒ 정근영

향일암의 바위, 갑골문자를 보는 듯 하다
향일암의 바위, 갑골문자를 보는 듯 하다 ⓒ 정근영

석재로 계단을 다듬어 놓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콘크리트 계단에다 돌을 덮어 놓거나 박아 놓는 것을 많이 보는데 향일암은 석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일주문의 육중한 돌기둥은 용무늬가 하늘로 오르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바윗돌이 뒤엉켜 굴을 이룬 그 굴속으로 들어간다. 바위틈새에 난 작은 길을 따라 굴속을 헤치고 들어단다. 바위틈새 그 길에서 사진을 찍어 보지만 너무 가까워서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아 낼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몇 장의 사진을 찍어보지만 향일암의 전모를 담기는 역부족이다.

향일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여기서 수도하는 도중에 관세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나라 고찰 가운데 원효, 아니면 의상대사가 짓지 않은 절이 몇이나 있을까. 원효대사는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도중에 묘지에서 해골의 물을 마시고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향일암은 숲과 바위속에 숨어 있다.
향일암은 숲과 바위속에 숨어 있다. ⓒ 정근영

관음전(용왕전)의 불상(용왕과 남순동자가 보처불이다.)
관음전(용왕전)의 불상(용왕과 남순동자가 보처불이다.) ⓒ 정근영

향일암은 바위들이 서로 기대며 굴을 만들고 그 굴속으로 길이 나있다.
향일암은 바위들이 서로 기대며 굴을 만들고 그 굴속으로 길이 나있다. ⓒ 정근영

원효대사는 요석공주를 만나 파계를 한 뒤 스스로 소성거사로 일컬으면서 절로는 돌아가지 않고 서민 대중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에 힘썼다고 하는데 이 나라 방방곡곡의 그 많은 절이 원효대사가 지은 것으로 믿어지지가 않는다. 절 직원에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믿을 만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절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고승을 그 절의 창건주로 근거 없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실제 그 절을 짓기 위해 땀 흘린 이름 없는 승려의 공덕이 고승의 공덕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 향일암에서 내 놓은 쪽지에 따르면 향일암은 1300년 전 신라 선덕왕 8년(659)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한 절이다. 고려 4대 광종 9년(958) 윤필대사가 금오암이라고 그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윤필대사는 낯선 인물인데 남해 보리암 좌선대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좌선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거사는 출가한 승려가 아닌 재가 신자다. 윤필이란 이름이 동일인 같아 보이는 데 향일암에서는 대사로 보리암에서는 거사로 부르는 것은 모순이다.

향일암의 영구암이란 편액은 경봉 스님이 이곳에 주석할 적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경봉스님은 금오산 동쪽 기슭에 있던 암자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절 근처의 기암괴석들이 거북이 등의 욱각문형으로 새겨진 신기한 모습을 보고 영구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오해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향일암은 경봉스님이 중수 또는 만든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관음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관음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 정근영

삼성각
삼성각 ⓒ 정근영

산 이름 금오산은 금거북이란 뜻으로 산의 형상이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상이 말세가 되어 불법이 망하게 되면 거북이가 불경을 짊어지고 용궁으로 옮겨 놓는다는 전설이 전한다. 왜 하필 불법이 망하게 된다는 것을 예상한 것일까. 이 역시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전설이다. 용궁에 간직해 놓았던 경전을 말법세 중생을 위하여 가져 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향일암에는 대웅전, 관음전, 또 다른 용왕전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관음전, 삼성각, 해수관세음보살, 경전 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다. 용왕전이나 해수 관세음보살은 몇 해 전에는 없던 시설이다. 향일암은 원효가 창건한 고찰로서의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 모습이 더욱 갸륵해 보이는 절이다.

바위틈새에 제비집처럼 지어 놓은 향일암
바위틈새에 제비집처럼 지어 놓은 향일암 ⓒ 정근영

덧붙이는 글 | 여수 향일암, 신라의 고승 원효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향일암은 말세가 되어 금거북이가 경전을 싣고 용궁으오 옮겨 온전하게 보전하는 모습이라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말세가 되어 도덕이 희미해진 지금 용궁에 보관한 경전을 가지고 나와 중생을 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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