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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2차 본협상이 오늘 시작한다. 정부는 협상을 앞두고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이고 있다. 반면 각계각층의 한미FTA 저지 목소리는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뒤틀린 것일까. 한미FTA는 꼭 필요한가. 한미FTA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가. 아직 늦지 않았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한미FTA, 그 내용과 문제점을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따져보는 기획을 시작한다. 첫번째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연구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롭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지난 2월 2일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한미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 개시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아래 두 개의 장면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장면 1] 모 정당의 농촌출신 국회의원이 한미FTA 한국측 협정문을 열람신청해서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가니, 복사는 물론 필사도 안될 뿐만 아니라 오직 눈으로만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협정문 초안은 영어로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의원은 영어를 못했다. 아니 영어에 능통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게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한글로 된 육법전서를 봐도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영어를 잘 해도 사실상 법률문서인 협정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장면 2] 최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보수교계 강연에서 협정문 초안 공개와 관련된 한 인터넷언론 이모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오히려 미국보다 더 공개하면 했지, 미국보다 덜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미국같은 경우는, 뭐 제가 미국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데, USTR(미 무역대표부)이 국회에다 팩트 시트(fact sheet)라고 해가지고 딱 두 장 써서 줍니다. 이 기자, 이것 명심하세요. 팩트 시트라고 해가지고 딱 두 장 써서 줍니다. 우리는 그 이상 합니다. 정부공무원 그게 또라이가 아니예요."('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www.nofta.or.kr) 사이트 인용)


준비는 인식에 비례한다. 영어를 못하는 의원에게 영문 협정문을 그것도 사전도 없이 눈으로만 보라고 하는 장면은 차라리 한편의 개그라 치자. 그러나 두 번째 장면은 심각하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실이라 생각할 만하다. 미국을 잘 아는 통상장관이 그렇게 말하니 말이다.

우리 정부가 더 많이 공개했다?

'팩트 시트'라고 하는 것은 중요 사안이 있을 경우, 미 행정부가 그 핵심 사항만을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압축해서 제공하는 일종의 보도자료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대개 분량으로 1~2쪽 가량 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다. 그런데 미 무역대표부가 통상현안 특히 한미FTA와 관련해 의회에다 팩트 시트만 달랑 두 장 써서 보냈다고 하는 것은 사안이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 말은 미국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 정부는 더 많이 공개했다고 하는 통상교섭본부 주장의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알려진 것처럼 한미FTA 협상개시 선언 직전인 2월 2일 미 무역대표부는 상하양원에 협상개시 선언 통고문을 송달한다. 이 문서는 만천하에 공개되어 있다. 양으로 총 7쪽이다. 따라서 "딱 두장" 보냈다고 하는 김 본부장의 주장은 여기서부터 이미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이 통고문에 담겨있는 미국의 협상 '목표(objectives)'이다. 위 <장면2>의 김 본부장 강연에서 협정문 초안의 공개는 곧 '협상전략'의 공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공개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즉 국회에도 공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협상목표 이미 법률로 정해져 있어

그런데 전략이란 대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자면 미국은 전략보다 상위개념인 목표를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통고문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총 15개 항목에 걸쳐 미국의 협상목표를 상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15개의 목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냥 미 무역대표부가 임의로 작성한 것일까. 아니다. 이 목표는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 법률이 바로 미 무역촉진법(TPA 2002)이다.

TPA는 모두 4부로 구성된 사실 매우 방대한 양의 법문이다. 그 중 우리와 직결되는 것이 바로 제2부 '초당적 무역촉진권한'이다. 이 법률 2102조 '무역협상목표'는 먼저 '포괄적 무역협상목표'(2102조 (a))를 열거한 뒤, (b)에서 '주요통상협상목표'를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아래 표에서 보듯 총 17개로 나누어져 있다.(괄호안의 숫자는 해당 법조항)

주요통상협상목표

TPA 2002

USTR협상목표

한미FTA 협상분과

무역장벽과 왜곡(1)

상품무역(농업,섬유포함)

상품무역

무역구제법(14)

무역구제

무역구제

농업의 상호무역(10)

 

농업

섬유협상(16)

 

섬유

국경 관세(15)

원산지/통관/단속협조

원산지/통관

위생 및 검역

위생 및 검역

기술장벽

기술장벽

해외투자(3)

투자

투자

서비스무역(2)

서비스(정보통신, 금융)

서비스

 

금융서비스

전자상거래(9)

전자상거래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경쟁

정부조달

정부조달

지적 재산권(4)

지적 재산권

지적 재산권

노동과 환경(11)

노동

노동

환경

환경

분쟁해결과 집행(12)

분쟁해결

분쟁해결/투명성/총칙

투명성(5)/반부패(6)/규제관행(8)/WTO및 다자무역협정의 증진(7)/WTO협상의 확장(민항기, 원산지 증명)(13)/아동노동금지(17)

투명성/반부패/규제완화 

 

ⓒ 이해영

위의 표에서 보듯 TPA가 규정한 주요 협상목표와 미무역대표부의 협상목표는 위생검역, 기술장벽 그리고 TPA의 WTO관련 조항 등을 빼고 사실상 일치한다. 그리고 이 협상목표는 한미FTA의 17개 분과로 관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한미FTA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TPA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치가 김 본부장이 말하듯 미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팩트 시트 "딱 두 장" 써주고 가능했을까.

TPA 2102조(d)는 의회와 미무역대표부간의 '협의(consultations)'와 관련 매우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협상개시 전(2102조(d)(2))과 협상과정(2102조(d)(1)) 모두에서 미무역대표부는 미상원 재경위와 하원 세입세출위(Committee on Ways and Means), 그리고 의회감독그룹(Congressional Oversight Group)과 "긴밀히(closely)" 그리고 "매시기마다(on a timely basis)" 협의해야만 하며, 협상의 내용을 "완전히 통고"해야만 한다. 팩트 시트 "딱 두 장" 가지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위법 2107조는 의회감독그룹에 관한 것이다. 의회감독그룹은 상원 재경위, 하원 세입세출위 위원장, 원로의원(ranking member) 혹은 그 대리인으로 구성되며 그 기능은 "구체적 협상목표, 협상 전략과 입장, 실행가능한 통상협정의 개발, 통상협정 양허의 이행과 집행과 관련 미무역대표부와 협의하고 자문을 제공한다"(2107조(a)(4)).

▲ 지난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미FTA는 미국TPA에 따라 움직인다

바로 여기서 2월 2일자 미 무역대표부의 협상개시 통고문을 보자. "한미FTA 협상 관련 2005년 9월 8일자 의회감독그룹 그리고 기타 의원과의 첫번째 협의는 긍정적"이었다고 쓰여 있다. 이어 "행정부는 모든 쟁점에 대해, 협상의 전 과정에 걸쳐 의회감독그룹을 포함, 의회와 긴밀히 협의해 갈 것입니다"고 덧붙인다. 바로 2005년 9월이라는 날짜와 관련 하나 덧붙일 것이 있다.

지난 2월 21일 '관계부처합동' 명의로 작성된 <한미FTA추진과 협상전망>이라는 문건에서는 "2005년 7월과 9월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해 미 의회와 업계를 설득하는 등 우리측이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했다고 한다. 바로 이 "적극적인 노력"과 4대 현안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정부가 밝혀야 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과연 그럼에도 우리가 미국보다 "더 공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 무역대표부는 협상 목표, 전략 나아가 분과구성에 이르기까지 미 의회와 협의했다. 의회에 협상초안을 안 보여주고도 이것이 가능할까. 아니 TPA에 협상의 모든 내용을 완전히 통고하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만일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미 무역대표부 소속 공무원은 위법행위를 한 것이 된다.

TPA는 미 무역대표부의 협상지침이자 근거법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째, 우리 재계측에서는 한미FTA를 통해 반덤핑, 상계관세법의 발동요건 강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미 무역대표부 통고문의 무역구제항목은 "미국의 반덤핑, 상계관세법은 변경하지 아니한다(make no changes)"고 명시하고 있다. 관련 TPA을 보자(2102조 (b)(14)(A)). "미국은 반덤핑, 상계관세법과 세이프가드법을 포함한 통상법의 엄격한 집행권을 유지(preserve)"하는 것을 무역구제 관련 주요 협상목표로 한다. 한미FTA를 위해 미의회가 특별히 자국의 국내법을 변경하지 않는 한, 우리 재계가 오매불망하는 미국 무역구제법의 변경은 이렇듯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투자와 관련해서 미 무역대표부 통고문은 "한국내 미국 투자자에게는 미국내 법원칙과 관행하에서 이용가능한 권리에 상응한 권리를 확보"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은 TPA 2102조(b)(3)과 정확히 일치한다.

셋째, 농업과 관련 미 무역대표부는 한미FTA를 통해 "선의의 식량 원조를 제공할 권리와 미 농산물 시장발전과 수출신용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농산품에 대한 모든 수출보조금을 철폐하고자 하는 WTO 협상에서의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게끔 지원하는 메카니즘을 추구"하고자 한다. 쉽게 말해 자국의 농업보조금은 그냥 두고, 한국의 농업보조금만 철폐하라는 요구이다. TPA의 여러 조항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농업관련 조항이다(2102조(b)(10)).

여기서 미 의회는 농산품 협상 이전에 반드시 의회와 협의를 거칠 것을 명시하고, "가족농과 농촌공동체 지원프로그램 유지" 상대국 "보조금의 축소 혹은 철폐" "국영무역기업 철폐" 등 온갖 목표를 나열하고 있다.

▲ '한미FTA 저지 제1차 범국민대회'가 27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4월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1만여명의 농민, 노동자, 영화인,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와 관련해 참여정부는 이미 수많은 거짓말을 한 바 있다. 이제 그 리스트에 또 하나가 추가된다. 한미FTA 협상 관련 모든 것은 미 의회에 보고된다. 아니 미 의회는 미 무역대표부를 협상목표에서 세부조항까지 실질적으로 통제한다. 한미FTA의 실질적 열쇠는 미 무역대표부가 아니라, 미 의회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을 잘 아는 통상교섭본부장이 이 사실을 알고도 백주에 <장면2>와 같은 말을 했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고, 진정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모당의 농촌출신 의원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의 황당함은 사실 우리 모두의 고난이다. 이미 헌법 60조에 행정부가 진행하는 조약에 대한 국회의 체결동의권이 명시되어 있다. 비준동의권과 나란히 말이다. 그럼에도 '보안서약서'에 서명까지 하면서 그것도 오직 눈으로만 보아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놓고 우리는 외교통상부가 국민을 능멸했다고 말하기 전에, 있는 권리조차도 챙기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 전체의 무능함을 탓해야 한다.

미국에는 '미한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없다. 왜?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TPA같은 저런 법률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해서 우리 국민도 '범국본'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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