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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공문에 대해 소년신문사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어린이동아> 6월 12일자 머리기사.
ⓒ 동아일보PDF
초등학교 교장단(한국초등교장협의회) 회장 등 간부님들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교육부가 특정 소년신문을 학교 안에서 몰아 보는 일을 사실상 금지하는 공문을 보낸 탓이란다.

교육부 공문 "(신문배달에) 학생 노동력 제공 말라"

교육부는 지난 5월 말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보낸 공문에서 몇 가지 새로운 지침을 끼어 넣었다. ▲학교 구독 소년신문 가정 전환 구독 ▲특정 신문의 구독을 유도하는 가정통신문 금지 ▲신문 구독 관련 학교발전기금 접수 금지 등이 그 뼈대다.

이 지침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신문배달에) 학생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도록 하고 학교가 '스쿨뱅킹'으로 신문 구독료 수납을 대행하지 말 것"도 적어놓은 것이다. 더 이상 신문사의 말단 조직인 신문보급소 일을 '코흘리개' 학생들에게 시키지 말라는 지시인 셈이다.

<소년조선일보> <소년한국일보> <어린이동아> 등은 비상이 걸렸다. 학교가 신문보급소 일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신문사가 이 일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어른신문의 배달시스템과 같은 가정배달을 뜻하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구독자를 새로 찾는 번거로움 또한 교장의 몫이 아니라 소년신문의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들 소년신문 3사는 6월 들어 두어 차례씩 1면 머리기사로 교육부 지침에 딴죽을 걸었다.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긴 하나 이른바 '밥줄'이 걸린 문제인데 오죽 급했으면 그렇게 했을까.

당사자들보다 더 애간장 태우는 까닭은 뭔가

이상한 것은 교장단의 반응이다. 이 단체 간부들은 소년신문 당사자들보다도 더 애간장을 태우는 듯하다. 이경희 정책위원(서울영림초 교장)과 배종학 회장(서울신답초 교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소년신문의 모체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시론을 썼다.

이 교장은 지난 3일 쓴 '학교에서 어린이신문 보지 말라니…'란 제목의 글에서 NIE(신문할용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고 악기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교육부 지침을 겨냥했다. NIE교육이 중요한데 학교에서 신문을 없애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어 김 교장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교육의 유신시대인가'란 제목이 보여주듯 그 흥분의 정도가 제법 심했다.

그는 이 글에서 "교육부가 초등학교에 시달한 공문을 보면 지금이 유신 시대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글 마지막에서는 "무엇을 위해 NIE라는 유용한 학습 방법을 없애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앞장서서 어린이 문화가 없는 학교로 만들어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고 교육부를 몰아붙였다.

▲ 교장단 간부들이 교육부 지침을 질타하고 나섰다. 사진은 <소년조선일보>를 내는 <조선일보> 6월 6일자에 배종학 교장단 회장이 쓴 시론.
ⓒ 조선PDF
이들의 글은 수학부호로 다음처럼 단순하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학교 집단 구독 금지 = NIE교육 금지
학교 집단 구독 금지 = 유신시대


"특정신문 구독은 NIE교육 상관없는 야합 행위"

과연 그럴까. NIE교육 등을 비롯 글쓰기, 독서교육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초등교사들은 이 교장단 간부들의 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 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이주영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무총장(초등교사, 어린이도서연구회 전 이사장)의 말이다.

"교장단 임원들이 소년신문 내용을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연예인소식이나 컴퓨터 게임 등 오히려 교육에 역효과를 주는 내용이 얼마나 수두룩한지 알고나 NIE교육을 말하는가. NIE교육을 하려면 다양한 매체를 갖고 견줘보고 따져보는 교육을 해야지 특정 신문 한 개를 놓고 무슨 교육이 되겠나. 진짜 NIE교육이 목적이고 소년신문이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한 반에 (신문을) 한 부씩 사서 게시판에 붙이거나 복사해 보면 되는 것 아닌가. 한 반에 한 신문을 집단 구독시키는 일이야말로 교육과 상관없이 야합한 행위다."

유영진 월간 <어린이와 문학> 전 편집국장(초등교사, 아동문학평론가)도 "소년신문 학교 구독 금지 조처를 놓고 유신시대 발상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희한한 소리"라고 말했다.

"유신시대부터 교장들이 소년신문의 뒷돈을 받고 경쟁적으로 강제구독을 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 아닌가. 특정 신문을 학교에서 집단 강제 구독시키는 것과 가정에서 학생이 신문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유신시대스러운 것인지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4776개 초등학교엔 NIE교육 없다는 소린가?

소년신문과 그 모체가 되는 신문에 얼굴을 내밀며 NIE를 강조하는 교장단 간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학교 집단구독 금지 조처가 곧 'NIE교육을 없애는 일'이라고 자꾸 말하면 수많은 초등학교 교장들이 무척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올 4월 현재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소년신문을 학교에서 집단 구독하는 초등생은 28만8000여명이다. 전체 인원 402만3000명에 비춰보면 93%의 학생들은 신문을 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또 전국에서 신문을 집단 구독하는 학교는 전체 5732개 초등학교 가운데 956개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과 <동아>에 글을 쓴 교장단 간부들의 논리라면 전체의 83%나 되는 4776개의 학교는 'NIE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 수많은 학교 교장들이 얼마나 불쾌할지 한 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

90년대 말 교장단이 소속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에서 만들어 팔던 초등학교 방학책을 교육당국이 왜 없앴는지 벌써 잊었는가. 이 또한 특정단체에서 만든 상품을 학교가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법규와 상식에 따른 조치였다. 이 당시에도 '방학책 학교판매 금지 조처는 방학에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화를 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소년신문 돌격대로 나선 교장단 간부님들! 도대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들을 보고 적지 않은 초등교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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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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