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는 5일부터 9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 워싱턴에 파견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원정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강인규 통신원을 워싱턴에 급파했습니다. 강인규 통신원은 원정시위대의 활동이 마무리되는 오는 10일까지 워싱턴에 상주, 시위대의 활동을 자세히 전해줄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 교육책자의 표지 이미지. 젊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가한 시위답게 프로그램 내용에서도 창의성과 재치를 느낄 수 있었다.
ⓒ 강인규
3일 낮 워싱턴 디시. 공항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자 마자 덥고 습한 공기가 숨을 막는다. 늪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여름이면 덥고 습한 최악의 날씨를 자랑한다. 6월 초의 날씨는 벌써 여름의 찌는 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공항 근처 공중전화에서 원정시위단 측에 전화를 걸었다. 재미위원회 워싱턴지역 대표인 이재수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들이 묵고 있는 숙소의 위치와 오후 일정에 대해서 친절히 답해 주었다. 현재 그들은 조지워싱턴대학교 학부기숙사에 묵고 있으며, 야외의 시위일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행사는 학교의 시설물을 빌어서 사용하게 된다.

지하철역 '포기바텀(Foggy Bottom)' —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 에 내려서 기숙사를 향해 걷다보니 길 앞쪽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기숙사 앞 계단에 앉아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 중 한 명에게 "한국에서 오신 분들 맞습니까?"하고 물었다. 상대방은 기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했다. 대신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이재수씨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았다.

▲ 시위대가 묵고 있는 조지워싱턴대학교의 학부기숙사 풀브라이트 홀의 내부 모습이다. 왼쪽은 방문자를 안내하는 이재수 재미위원회 워싱턴대표.
ⓒ 강인규

▲ 시위대의 '상황본부'. 시위 참가자들이 쓸 물건들이 빼곡히 놓여있다. 주제준 상황실장이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 강인규
교민들이 더 많이 참여한 '원정시위'

▲ 시위대와 자원봉사자들이 묵고 있는 대학기숙사. 4인용이지만 6명이 함께쓰고 있는 방도 있다.
ⓒ 강인규
소박한 도시락이었지만 모두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있었다. 그 대화들은 한국어와 영어가 반반 섞여서 들렸다. 그제서야 기자는 앞에서 필자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는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았지만, 나무 젓가락으로 도시락의 멸치를 집는 솜씨는 어느 한국인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한국어로 옆의 동료와 대화를 나누던 한 젊은 여성이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회사 업무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휴가를 냈거나 휴일을 이용해 시위대에 참여한 듯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젓가락을 잡는 그녀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뉴욕에서 왔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영어로, 그리고 일부는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위대들이 묵는 숙소를 한 번 돌아 보았다. 그들이 묵는 숙소는 일부 언론에서 '돈 많아서 가는 것'이라는 비아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층침대 두 개가 놓인 4인용 학부 기숙사였는데, 일부는 한 방을 여섯 명이 나누어 쓰고 있었다. 바닥에 잠자리를 까는 사람도 보였다.

'상황본부실'이라는 곳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제법 엄숙함이 느껴지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 방은 사실상 '창고'였다. 거기에는 한국과 미국 곳곳에서 가지고 온 짐과 종이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곳에서 몇 명은 바쁘게 전화를 받기도 하고, 식사를 먼저 마친 일행은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첫날 일정으로는 시위를 위해 합류한 단체와 개인의 소개와 평화적 시위를 위한 사전교육이 늦은 시간까지 잡혀 있었다. 일행은 행사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100여명의 시위대. 한국에서 20여명이 참석했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 교민들이었다.
ⓒ 강인규

▲ 오종렬 의장이 오리엔테이션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 강인규
시위는 항상 '불법'이고 '폭력적'?

주제준 공동상황실장의 사회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그는 '한미FTA는 소수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한국 농민과 노동자는 물론 전 세계 민중들의 삶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말을 연 후, '원정시위대는 반드시 이를 막아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마빈센터(Marvin Center)의 3층 강연장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참가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 윤해영 변호사가 시위대의 권리와 책임에 대해서 교육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시위기간 내내 참가자들의 법률문제를 담당하게 된다.
ⓒ 강인규
오리엔테이션은 오종렬 의장의 인사와 개막사로 시작되었다. 한미FTA가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영향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고, 원정시위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예상되는 성과도 언급되었다. 모든 순서는 영어와 한국어 2개 국어로 진행되었다. 오리엔테이션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것은 어떻게 평화적인 시위를 효과적으로 진행할 것인가였다.

연단에 오른 윤해영 교포 변호사는 미국 내에서 시위대가 갖는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설명했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국익을 해치는 폭력시위’를 기정사실화 했지만, 시위대는 오래 전부터 법률자문을 통해 법적인 문제에 대비해 왔으며, 어떤 상황에서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시위를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단지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은 주최측에서 꼼꼼히 준비해서 배포한 교육자료들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윤 변호사는 합법적 시위의 법적 범위를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설명했다. 미국에서 합법적인 의견표명은 민주적 권리로 언제나 보장되며, 이것은 비단 미국인만이 아니라 미국 내에 머무는 모든 외국인들에게도 적용되지만, 간혹 문화적 차이나 오해로 인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위자의 권리뿐 아니라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있었다.

▲ 외국인 참가자들이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시위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멕시코 FTA 등 외국의 사례를 함께 나누고 통역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한다.
ⓒ 강인규

▲ 교민 참석자들이 시위에 사용할 구호를 연습하고 있다. 구호는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 모두 3개국어를 사용한다.
ⓒ 강인규
반대시위를 넘어 연대와 교류의 장으로

이후 진행된 순서는 단순한 반대시위를 넘어 국가를 뛰어넘는 연대를 지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번 '원정시위'에는 다수의 미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참여하며, 워싱턴 거주 시민들에게 한미FTA의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목표 가운데 하나이기에 오해를 사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언어를 한국어로라도 삼가자는 것이었다. 이는 한미FTA가 '한국 대 미국'이라는 국가간의 싸움보다는 한국과 미국을 모두 포함한 '기득권층 대 서민'의 싸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참가자들이 시위때 입을 티셔츠를 받아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 강인규
이 연대의 메시지는 외국인 참가자들의 인사로부터도 발견할 수 있었다. 플로리다 이모칼리 노동자 연대(Coalition of Immokalee Workers)측 대표는 멕시코가 미국과 FTA를 맺은 후 파국을 맞은 서민들의 삶을 언급하며 한미FTA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 경고했다.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을 총기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 보았다.

한국에서 참석한 20여명의 금융, 농민, 자동차, 약사, 간호사 대표들의 소개가 있었다. 그들은 한미FTA가 제조업과 서비스 각 분야에 미칠 악영향을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뒤이어 워싱턴, 뉴욕, 보스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각지에서 찾아 온 70여 명의 교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소개한 후, 한미FTA가 비난 한국뿐 아니라 미국내 교민들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리엔테이션은 문화행사 시간에 펼쳐질 공연의 '맛보기'와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된 흥미로운 구호연습으로 마무리 되었다. 함께 목청껏 소리를 외치며 함께 웃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연대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