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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원 신윤복/월하정인(月下情人)/지본채색(紙本彩色) 35.6x28.2cm/간송미술관 소장.
ⓒ 간송미술관

간결한 터치로 그려진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다. 그 당시 화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가운데가 접혀있다. 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빠른 길은 그림 중앙부에 혜원이 붓글씨로 써놓은 한문을 해독하면 금방 알 수 있지만 한글세대는 한자에 약하기 때문에 난해하다.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뜯어보면 남녀간에 흐르는 심리가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믐달이 뜬 야삼경(밤11시∼01시). 두 남녀가 데이트하고 헤어져야 할 시간. 하지만 두 남녀는 헤어지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이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건 당연지사.

담장에 기댈 듯이 서있는 여인은 옥색 치마에 자주색 회장을 댄 저고리로 보아 양갓집 규수인 듯. 남자 역시 신발 코와 뒤축을 옥색으로 댄 가죽신을 신고 멋을 부린 것으로 보아 대갓집 도령으로 보인다. 사나이의 준수한 외모를 받쳐주는 행색이 천하지 않은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요샛말로 풀이하면 오렌지족 못지 않게 멋을 부렸다.

여인은 이제 모퉁이를 돌아 박공지붕(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을 말함)에 정원수가 잘 가꾸어진 집으로 들어가야 하고 남자는 초롱불 밝히고 돌아가야 할 순간. 여자의 신발 방향으로 보아 처녀의 마음은 사나이에게 향하고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믐달이 부릅뜬 아버지의 눈썹 같다. “게서 뭐하는 거냐?”고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불호령이 담장을 넘어올 까봐 두렵다.

여자의 신발 코 방향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남자의 가슴에 파고들 것 같지만 양갓집 규수로서는 당치않은 일. 사나이를 보내야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남자의 신발 코는 돌아갈 길로 방향을 잡았지만 장옷을 입은 여인에게 보내는 사나이의 저 애틋한 눈길. 저런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의 저 눈길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손목을 잡아보거나 입술이 포개어지는 찐한 스킨쉽은 없어도 속(俗)하지 않은 진한 사랑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등장인물 두 사람에 간결하게 처리된 이 그림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화제(畵題)다. 月沈沈 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월침침 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 ‘달도 기운 야삼경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

남녀 관계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절묘한 표현이 있을까?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혜원(惠園)은 그림만 잘 그린 것이 아니라 화제(畵題)에서도 천재성이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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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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