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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장집 고려대 교수.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제·사회적 효과만 집중 논의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국 민주주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최장집 고려대 교수(아세아문제연구소장)는 "현재 한국사회 최대 이슈인 한미FTA는 한국의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최장집 교수는 "만일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에 있는 행위자들의 재가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한미FTA 추진에서 느끼는 필자의 두려움은 그 충격효과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최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 간)를 통해 '한미FTA는 한국경제를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수직적으로 통합시키고 악화일로에 있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이미 민주정부의 무능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더욱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새롭게 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 : 하나의 시안'에서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나 정치사회에서 한미FTA에 대해 논의할 만한 기회가 없었다"며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돼 과격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한미FTA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통합 경고

최 교수는 한미FTA 정책 결정과정에 대해 "일반 국민과 그 정책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사회집단을 소외시키고 대통령과 몇몇 기술관료들이 중대 정책사안을 '폐쇄회로적 방법'으로 결정하는 권위주의 체제에 전형적인 기술관료적 결정방식을 닮은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한 "정책결정자들이 견지했던 신자유주의 비전과 한미FTA 추진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정책은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즉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양극화,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을 초래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비전의 최종판이라는 것이다.

이어 최 교수는 "한미FTA 정책은 신자유주의 독트린에 입각해 운영해온 기존의 경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는 한미FTA 추진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하지만 그 인과 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논리와 정반대로 최 교수는 "한미FTA가 결국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한미FTA에 대한 비판적 이해는 "IMF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세계화를 민주정부들이 적극 수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정책을 전환해왔다"는 최 교수의 또다른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사고와 가치체계의 미국화가 심화될 것"

▲ 최장집 교수의 신간 <민주주의의 민주화>.
ⓒ 후마니타스
또한 최 교수는 "서비스산업에서 개방수준과 생산성 저조가 함수관계를 갖는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신빙성이 약하다"며 한미FTA를 통해 고급서비스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정부측 주장을 일축했다.

최 교수는 "정책결정자들이 한미FTA와 관련해 언급하는 '서비스산업'은 금융·컨설팅·의료·법률·기술정보 등 서비스산업의 최상층 부문을 의미하는데 일자리 규모로 보자면 서비스산업 중에서도 아주 일부분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 서비스산업은 이들 소수의 상층부분으로 대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양국간의 격차가 극히 심한 조건에서 한국의 개방 업종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위계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나아가 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결집돼있는 이 분야 종사자들을 미국체제에 통합시킴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이미 깊숙이 진행된 사고와 가치체계의 미국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최 교수는 "미국에 개방, 통합된 서비스산업이 가져올 경제 전체에 대한 효과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고기술·고부가가치의 창출과 높은 소득 수준의 계층을 조성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 전반적인 고용증대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서비스산업의 개방이 국내 기업의 대미수출에 미칠 효과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이며 간접적일 뿐"이라며 "개방이 가져올 충격과 위험요인은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데 반해 막연한 기대효과를 위한 정책을 집행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한미FTA의 졸속 추진을 거듭 비판했다.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한국적으로 수용하자?

특히 최 교수는 한미FTA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전경로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며 '대안적 발전모델'의 밑그림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최 교수가 제시한 '대안적 발전모델'은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과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이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며,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내발(內發)적 산업발전 모델"이다.

노무현 정부가 초기에는 유럽식 모델을 선호했다가 한미FTA 추진 등을 계기로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로 돌아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한국적으로 수용하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최 교수는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중소기업을 재건해야 하며 이를 통해 내발적 경제발전의 경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러한 정책전환에서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노동배제적 노사관계를 민주화하고 이를 기초로 대안적 생산체제를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소기업의 강화와 발전을 동반했던 과거 권위주의 산업화 모델이 민주정부의 집권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모델로 전환돼 사회양극화 등이 심화됐다는 점을 헤아려 제시한 대안이다.

최 교수는 "새로운 산업정책으로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대학교육의 개혁'도 중요하게 짚었다. 그는 "교육의 공급구조와 사회의 수요구조를 동시에 변화시키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실현될 수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생산체제와 노사관계 그리고 복지의 개념을 통해 교육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수요측면에서는 제조업 중소기업을 강화하는 생산체제로의 변화가 필요하며 공급측면에서는 교육제도의 개편, 즉 복지제도와 연계해 산업·기업 특수적 기술교육을 제공할 기술전문학교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중간모델의 개척도 가능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제1차 범국민대회'가 15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1만여명의 농민, 노동자, 영화인,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27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렸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횃불과 각종 상징물을 들고 종각네거리까지 행진을 벌인 뒤 자진해산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 교수는 이러한 정책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 노동배제적 노사관계의 민주화 ▲둘째, 대안적 발전경로를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첫째와 관련해 최 교수는 "정부·기업·사회가 어떻게 노동을 파트너로 수용하고, 기업-노동 간의 협력적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며 "그것은 노사정 3자 협의의 틀로서 제도화되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의 발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는 "분배적 협약을 중심으로 했던 전통적 코포라티즘"이 1980년대 이후 유럽 복지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종래의 '분배동맹'과 균형을 이루는 '생산성동맹'을 중심으로 하는 '경쟁적 코포라티즘'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 교수는 ▲노동이 배제된 정책 결정 ▲노조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노사정 대표체제 등을 예로 들며 "현재와 같은 노사관계의 구조나 기반을 그대로 둔 채, '선진 통상국가' 실현이나 외국기업의 투자환경 조성 등의 정책목표를 실현하고자 코포라티즘이라는 용어만 불러들이는 것은 무매개적 의미 조작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끝으로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현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안적 발전경로를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대표체제가 사회적 요구를 얼마나 폭넓게 대표하는가에 따라 여러 다른 유형의 기술-교육-생산-성장-복지-노사관계의 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오늘날의 한국적 조건에서 유럽모델의 실현이 가능하다면 그것 역시 환상"이라며 "그러나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정치적 계기를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적절한 중간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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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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