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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길모어의 새로운 삶과 <오마이뉴스>

▲ 미국판 오마이뉴스 <베이오스피어>의 창립자 댄 길모어.
ⓒ 토드 태커
실패는 언제나 배움의 기회를 준다. 다른 사람의 실패로부터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 '패자'가 솔직한 사람인 경우 특히 그렇다.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정직함 못지 않은 자신감과 이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실패의 고백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존경의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바로 댄 길모어다. 실리콘 밸리에서 과학기술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04년 <산호세 머큐리 뉴스>에 사표를 던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길모어의 '다음 직장'이 미래도 불확실한 인터넷 시민저널리즘이라는 것을 안 사람들의 눈은 더 휘둥그레졌다.

평생의 명성과 안정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둘 때, 그는 이미 머리가 반백인 중견 언론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 열정에 불을 당긴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오마이뉴스>였다. 그는 한국을 방문해 <오마이뉴스> 사람들을 만났고, 이 새로운 인터넷 신문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가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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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길모어는 시민저널리즘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훈계저널리즘(journalism-as-lecture)'은 막을 내리고 기자와 독자들이 상호교류하고 역할을 교환하는 '대화저널리즘(journalism-as-conversation)'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엮어 <우리가 바로 언론이다 (We The Media)>라는 책을 내고 대학과 언론을 통해 시민저널리즘의 필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참여언론의 미국적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 백펜스에 흡수되기 전의 <베이오스피어> 첫 화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베이오스피어>

블로그와 참여 저널리즘을 결합한 인터넷 매체 '베이오스피어 (Bayosphere)'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길모어의 목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샌 프란시스코 해안의 만 지역(Bay Area) 주민들의 실생활과 밀착된 정보가 상호교류하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한국과 달리 지역중심의 경제와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미국사회에서 이런 '미시적 접근'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지역주민에 의한, 지역주민을 위한' 이 시민저널리즘 매체는 안타깝게도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길모어와 투자자들은 지난 달 4월 재정난에 빠진 <베이오스피어>를 지역정보 사이트인 '백펜스(Backfence)'에 병합시키기로 합의했다. 이후 그 사이트는 길모어의 개인블로그 형식으로 운영되다가 이달 초 완전히 통합되어 사라졌다.

사실상 <베이오스피어>는 창간 초부터 어려움을 겪었으며, 지난 해 말부터는 더 이상 투자비용을 잠식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길모어의 개인비용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며 근근히 명맥만 유지해오던 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베이오스피어>의 중단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사실 이 대안매체의 문제점과 한계는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베이오스피어>는 철저한 '지역화'를 표방하며 출발했지만, 사실상 웹사이트 대부분의 공간을 채운 것은 지역주민의 삶과 괴리된 기술관련 정보들이었다.

"새로운 기술 혁명이 오고 있다"는 식의 일반인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거대담론'들이 지역주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초반부터 일반의 참여가 저조했던 이 '시민저널리즘' 매체는 "기술정보 전문웹사이트 시네트(CNET)의 자매 사이트냐"는 냉소를 받으며 더욱 대중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탐 그루비시는 <온라인 저널리즘 리뷰> 에 기고한 글에서 <베이오스피어>의 테크놀로지 집착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만일 당신이 캔자스주의 외딴지역에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베이오스피어>라면, 당신은 샌프란시스코 사람이 모두 '포드캐스팅'이나 '무선인터넷' 같은 이야기만 하면서 살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 탐 그루비시, "댄 길모어의 베이오스피어로부터 얻는 교훈은?" <온라인 저널리즘 리뷰> 2006. 1. 29.

'시민전문가'들의 참여 부재

앞서 삶과 괴리된 <베이오스피어>의 기술중심 보도가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보도태도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부족한데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어차피 기술관련 보도는 길모어와 그의 측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전문영역이었고, 다방면의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관심사의 시민들이 <베이오스피어>를 다양한 정보로 채워주었다면 기술보도는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정보 가운데 하나로서 남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다른 정보'를 제공할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했다는 데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시민저널리즘의 모토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기존의 매체가 극복하지 못했던 '뉴스생산자'와 '뉴스소비자' 사이의 위계와 편향을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뉴스생산을 '진정한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들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필자같은 '백수'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라면 끓이는 것과 신문 꼼꼼하게 읽기에 관한한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탁견을 갖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시민저널리즘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주장은 몇 백명보다 몇 만명 사이에서 전문가를 찾기가 쉽다는 기초적인 산술을 간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수만 명에 이르는 이 시민전문가들이 참여해서 그 사이트를 다양한 고급정보로 채워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이오스피어>에는 이런 축복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때문일까? 길모어는 자신의 '사업수완부족'을 원인으로 꼽음으로써 <베이오스피어>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지고 있다. 그러나 <베이오스피어>의 실패는 단지 한 사람의 실책 때문이 아니다.

길모어가 재정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실리콘 밸리의 첨단기업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에 우선 집중함으로써 대중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대중적인 접근을 통해 최단기간에 최소독자수를 확보하고 그 다음에 투자 유도계획을 세웠더라면 웹사이트를 지금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수익모델'이 <베이오스피어>의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베이오스피어>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창간자 자신이 아니라 미국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판 오마이뉴스'의 실패는 무엇 때문인가?

여기에는 한국과 미국의 두 사회를 사회문화적 차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한국과 달리 '공통의 분모'가 적은 미국의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사회문화구조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필요와 요구를 낳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구조는 미국 특유의 언론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몇 개의 '중앙지'가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광고조차 바꾸지 않은 채) 일괄적으로 배포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1500여개의 지역신문으로 시장이 미세하게 분할되어 있다. 이는 미국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질만한 '범사회적 논의'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 재정난에 빠진 <베이오스피어>는 채 1년이 안돼 지역정보사이트인 <백펜스닷컴>에 인수됐다. 왼쪽에 댄 길모어의 블로그가 위치해있다.
'참여'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사회문화적 차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베이오스피어>가 실생활을 위한 '지역정보'—예컨대 좋은 식당 정보(샌 프란시스코에서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 없다)—가 부족하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만일 <베이오스피어>가 샌 프란시스코 주민들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제공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대안매체'로서 갖는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이것이 <오마이뉴스>와 같이 한 사회의 언론과 정치의 지형을 바꾸는 것으로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비록 미국인이 '지역이슈'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 '전사회적 이슈'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사회는 빈곤, 의료, 복지, 인종, 정치, 언론개혁 등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거시적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지역적 참여의 장들을 서로 매개함으로써 상호 연대를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서 전사회적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전국방송은 이미 상업화 되어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상태다.

미국인들의 보편적 언론관은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아무런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오락중심의 상업언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사실 소수의 미디어 재벌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언론으로부터 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회가 '대안매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언론개혁을 중요한 사회의제로 인식해 온 한국사회와 비견된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은 <오마이뉴스>가 존재하기 전부터 <오마이뉴스>를 갈망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이 시민언론을 가장 영향력있는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의식'인 셈이다.

참여에는 언제나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은 단지 금전 제공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성취감, 명성, 흥미 등 어떤 형태로라도 '지급'되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창간초부터 소액의 원고료를 지급했지만(이것은 아주 뛰어난 전략이었다), 시민기자들에게 더 큰 보상은 자신의 참여로 사회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성취감이었다. 물론 미국과 달리 '기자'라는 명칭에 부여된 특권적 의미도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대안매체를 통한 참여가 시급한 사회적 필요로서 인식되지 않고 있는데다, 기자가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도 아닌 미국의 경우, 보상은 보다 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 바로 돈이다. <베이오스피어>가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적절한 보상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모어도 자신도 '인센티브의 부재'를 실패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일은 당신이 하고, 돈은 내가 갖고" 식의 운영방식은 참여자들에게 매력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모델' 속에서 (그와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시민저널리즘을 일구어 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국 시민저널리즘의 딜레마다.

▲ 시민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미국의 인터넷 매체들. 왼쪽이 <아이토크뉴스>, 오른쪽이 <뉴스바인>의 첫 화면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도들

<아이토크뉴스> <뉴스바인> <브래틀보로>…. 인터넷 이곳 저곳 일어나고 있는 미국 시민저널리즘 매체의 이름이다. <베이오스피어>는 아쉬움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지만, 길모어의 열정은 여러 시민참여 언론에게 지속적으로 밑거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아이토크뉴스 iTalkNews>의 실험은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에 창간된 <아이토크뉴스>는 통신사(AP) 뉴스와 시민저널리즘을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아직 시민들의 참여는 크게 활성화 되지 않았지만, 미국 전역 뿐 아니라 세계뉴스를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하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기사배치는 독자들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며, 최근 들어서는 기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독자들이 마음에 드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직접 온라인송금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아이토크뉴스>는 창간부터 <오마이뉴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창간자 자신도 <오마이뉴스>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베이오스피어>가 잘 드러내 주었듯, 시민저널리즘의 미국적 모델을 정착시키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다.

기사를 읽고 검색하기 쉬운 편집과 배치, 모든 시민기자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도구의 개발, 그리고 장기적인 재원조달 방안 등은 여전히 <아이토크뉴스>의 숙제다. 아직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에 이른 상태이지만, 참여자를 늘리는 것은 <아이토크뉴스>에게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남아있다. 하루에 수십 개의 글이 올라오지만,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링크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며, 기사의 '댓글'도 한 두 개에 그치고 있어 아직 크게 활성화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보다는 늦었지만, 미국은 인터넷을 통한 참여저널리즘의 실험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그 가운데 기존 언론들도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웃음거리로 끝났지만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는 독자들로 하여금 사설을 고쳐쓰도록 하는 실험을 해 보기도 했고, <뉴욕타임즈>는 기사에 독자들의 의견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블로그에 가장 많은 링크가 된 기사들을 따로 모아놓은 란을 별도로 마련했다. <위스콘신 스테이트 저널>은 인쇄판의 기사배치를 독자들의 온라인 투표에 맡기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변화와 시도의 불을 당긴 것은 댄 길모어가 일년 반 전에 던진 사표였다. 그리고 그의 일년간의 탐구와 그 결과에 대한 허심탄회한 고백은 미국 시민저널리즘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실패는 '성공적인 실패'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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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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