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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화가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앞에서 우리 운명은 늘 밖에서 결정되어 왔다고 했지만, IMF사태가 한국경제를 살렸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변화는 낡은 패러다임의 모든 논리를 삼키고도 남습니다.

이른바 미ㆍ일(美日)역전(逆轉)이라는 일본경제의 세계지배는 90년대 초반 허망하게 무너지고 다시 미ㆍ일 재역전으로 반전했습니다. 미국의 국가경제가 다시 강해진 것이 아니라 89년 도쿄 증시 대폭락에 이어 92년 북한 핵이 조성한 전쟁 분위기가 예의 국제 과잉유동성을 월스트리트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IMF 때 광고처럼 "돈은 안전이 제일"이어서 달러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머니게임이라는 대변화의 한 국면이 미국을 살린 것입니다.

전쟁 위기를 조성한 북한 핵이 미국을 살린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미ㆍ일 재역전(再逆轉)에 비하면 규모에서는 사소하지만 한국경제의 숨통도 열어 놨습니다.

대변화의 한 국면만 보고 미국 헤게모니 시대라고 한다든가 더 나아가 '미국 주도의 세계화' 운운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우리가 IMF를 "극복했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미국경제의 중심 뉴욕 맨하탄의 빌딩숲
ⓒ 코비스 제공
90년대 중반 한국은 이른바 '네 마리 용'에서 추락했다고 했습니다. 최근에 보면 중국의 복건성과 광동성에 파고 든 대만이나 홍콩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순항하고 있는 데 반해 'IMF 이래 최악'이라는 우리 경제의 모습은 그 '추락'이 기정사실임이 다시 드러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반부터 동남아산 일본제품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일본의 대미 수출을 억제하자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나 남미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미국은 물론 세계로 수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경쟁자 하나가 더 나타난 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우리 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사변(事變)'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는 언제나 산업구조의 재편성에 따른 정치적ㆍ사회적 고통을 수반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영국의 초기 산업혁명에서 이 같은 고통은 어린이들을 갱도(坑道)로 몰아넣는 그림으로 묘사되었고, 또 예컨대 탄광 산업에서 방직으로 주력 산업이 옮겨가면서 폐광(廢鑛)촌의 고통이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산업구조가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대가를 요구해 왔던 것입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끝없이 낡은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그 진통이 안으로 사회에 긴장을 조성하고 밖으로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곧 자본주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본주의의 발전 공식이 우리나라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구조조정의 고통이 없었기 때문에 후술하겠지만, 선진 경제가 200년이 걸린 성과를 지난 40년 동안에 쫓아간 것입니다.

무슨 '후발성 이익'이나 '한강의 기적'이 아니어서 IMF로 그 대가를 한꺼번에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구조조정'이, 경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지난 시대 자본주의의 '생산적인 진통'이 못 된다는 점입니다.

한국경제는 어떻게 그처럼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유명한 브루스 커밍스는 '동북아 정치경제의 기원과 전개 : 산업부문, 제품 사이클 그리고 그 정치적 결과(1984)'라는 논문에서 한국경제가 어떻게 그처럼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러나 그 한계가 어떻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가를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이 지역에만 독특한, 일본ㆍ한국ㆍ대만의 '산업순환'에 주목했습니다. 이 산업순환은 일본의 독특한 식민지 경영과, 미국을 중심에 두고 일본이 이른바 반주변이 되고 한국과 대만이 주변부가 되는 정치ㆍ경제적 교환관계입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와 대만을 합병한 1910년대 이후 30년 동안이나 세계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한반도와 대만이었습니다. 일본이 한반도와 대만을 동원해서 대미 수출과 전쟁준비로 경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50년대 어른들은 "일제 시대가 살기 좋았다"라는 곤혹스러운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70년대 우리 경제성장을 무슨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단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동북아에서 일본을 다시 키워서 소련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의도대로 65년 한일국교가 정상화되어 경제적으로는 전전(戰前)의 한일관계 패턴이 재현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을 모르면 아무리 바로 보려 해도 빗나가게 마련입니다.

아무튼 '산업순환'이란 일본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기술을, 격차를 두면서 한국과 대만에 이전시키는 방법으로 일본 산업구조의 지속적인 고도화를 도모해 온 전략입니다. 전전(戰前)이나 전후(戰後)가 그 전개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 미국은 동북아에서 일본을 다시 키워 소련을 봉쇄하려 했다.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 자료사진
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래 섬유ㆍ제철ㆍ조선ㆍ가전ㆍ자동차 등 일본의 주요 전략산업 부문에서 일본은 한국에 기술을 이전해 왔습니다. 10의 기술에서 8만 주는 이 '격차를 두는 이전'을 통해 일본은 좀더 부가가치가 높은 쪽으로 치달아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존 시설의 개폐(改廢)에 따른 비용이든 노동자들의 저항이든, 앞에서 본 자본주의 일반의 고통이 불가피한데, 낡은 것을 한국이 제때 제때 인수해 줘서, 마치 기러기가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날 듯, 한국과 대만을 거느리고 안형 성장(雁形 成長), 단기간에 가공무역으로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예컨대 80년대 초 미국이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200만대로 제한하는 쿼터로 묶었습니다. 여기 대응해서 미쓰비시는 좀더 부가가치가 큰 중형차 생산라인을 확대하기 위해 현대자동차에 미라지라는 소형차 생산라인을 몽땅 옮겨 줬습니다.

이 미라지, 현대의 엑셀은 미국에 진출하자마자 소형차 시장을 석권했습니다만, 도시바가 VTR 생산라인을 담당과장까지 삼성으로 보낸 것도 그 고전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같은 일본의 산업순환에 동원된 한국의 재벌들은 제일모직이든 현대건설이든 대우실업이든 업종과 관계없이 이른바 원 세트(one set)주의로 이들 일본이 물려주는 산업부문 전부에 뛰어들어 '그룹'을 이루게 됩니다.

기업내부에서 인력을 재배치하고 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가, 그것이 IMF 때 재벌들의 엄청난 누적적자로 나타났지만, 건설회사가 선박과 자동차를 생산하는 식이어서 달리 사회가 산업구조의 개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의 동남아산 일본제품의 등장은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 산업순환이 끝난 것을 의미했습니다. 커밍스는 84년에 벌써 "노동의 비교 우위가 아니라 원천기술과 마케팅, 조직역량의 비교 우위는 산업순환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 올 것"이라고 했고 그것이 '동남아산 일본제품'으로 또 이어서 중국의 부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2004년 현대자동차 1000만대 수출차량인 프랑스행 투싼이 선적되고 있다.
ⓒ 현대자동차
공부를 제대로 못한 K대학의 무슨 명예교수가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서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잔혹한 식민 통치 시절의 민족적 아픔을 건드린 것이다라고, 지나간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바다 료타로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65년 한일수교 어름해서 이 사람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특별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합니다. 그는 일본이 패망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그 막강했던 일본 관동군(關東軍) 70만이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괴멸(壞滅)하고 만 것을 감정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는데, 청와대에서 그 "관동군을 보았다"고 자못 영탄조(詠嘆調)의 글을 썼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는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적으로 일제 시대의 재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살아 있는 과거'가 지금껏 자기 전개를 거듭하면서 우리를 어떻게 다시 미증유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가를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과거', 지난 100년 우리를 지배해온 낡은 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치열한 오늘의 문제입니다.

권력은 물론 사회 전체가 이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밍스가 말한 '산업순환의 정치적 결과', 그 전개를 제대로 봐야 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의 기초입니다.

해방 전이나 해방 후의 '과거사' 모두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엘빈 토플러의 말대로 미래(未來)가 쳐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복잡하지만 여기가 세계 역동성의 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숙명입니다.

IMF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위기구조로 '전화'한 것

아무튼 90년대 초반 '세계시장의 단일화, 생산기지의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세계화'라면 '미국 주도!'지만, 이때의 세계경제 통합의 주역은 일본이었습니다.

바로 이 생산기지의 세계화, 세계시장의 단일화라는 일본 산업자본주의의 전개는, 곧 바로 '세계화'라는 미국이 아니라 무국적 금융자본주의에게 먹히지만, 우리에게는 앞에서 본 한ㆍ일간의 경제적 특수관계의 와해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이 막히자, 삼성이 자동차, 현대가 제철 식으로 이른바 중복투자 판이 벌어졌습니다. 영업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업종이나 시설투자를 벌여 기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자경기로 명맥을 유지하던 막다른 골목에서 갑자기 IMF가 나타났습니다. 대혼돈이 쳐들어 온 것입니다.

공황감이 팽배했지만 그러나 환율이 두 배, 세 배 뛰어서 일거에 수출경쟁력을 개선했습니다. 어쨌거나 핫머니가 쇄도해서 바닥난 외환보유고를 '적정수준'으로 채워주었습니다.

환율인상, 수입원자재 가격상승이 인플레를 일으키지도 않았으며! 더러 기업주는 죽었으나 대부분 대기업은 건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외국자본이 주식시장의 40%를, 그만큼 남의 것이 되어 버렸지만, 채워줘서 경제의 외양은 그대로입니다.

한마디로 IMF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위기구조로 '전화(轉化)'한 것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2004년 연초 우리 경제의 장래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습니다.

▲ '천재찾기'를 선언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수원 삼성전자 공장에서 열린 세계유수기업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 삼성전자
그의 고민은 '장래'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조립 수출 주도의 경제가 아니라 삼성과 포철이 주도하는 반도체와 제철들, 중간생산재 모노컬처로 변했습니다.

삼성은 반도체며 휴대폰 등 많은 부분에서 '전화(轉化)'에 성공했고 우리 경제사상 유례없는 세계제패(世界制覇)를 이룩했지만, 일등만 살아남는 과잉시대 기업환경이 두려운 것입니다. 더 이상 일본이 '장래'가 아니어서, 일본에서 배울 것이 없어서, 삼성은 전략회의에서 '천재 찾기'를 선언했습니다.

아무리 '인재 제일'의 삼성이지만 천재가 나타나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성이, 우리 경제가 홀로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심각한 것은 삼성의 이런 고민이 우리 기업 일반에게는 '장래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이 돈을 빌려가지 않아서,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공격적 가계 대출을 벌이고 그것이 다시 부동산투기로 나타나 정부를 괴롭히고 있지만 정작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은 그 다음 국면입니다.

'장기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주저앉든, 환투기가 촉발하든, 부동산가격이 폭락하면서 다시 가계와 기업이 파산(破産)에 내몰리는 일이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IMF로 드러났지만 지난 40여년 우리나라의 30대 기업, 5대 기업은 더, 엄청난 누적적자를 안고 있었습니다. IMF를 극복했다, 구조조정에 성공했다지만 사실은 이 부채는 실질적으로는 지난 40여년 천문학적으로 상승한 지가(地價)와 상쇄(相殺)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과는 또 달리 고무줄처럼 자산 재평가가 허용되기 때문에 부채비율을 장부상으로만 줄여놓은 것입니다. 이래서 부동산가격 폭락은 재앙입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깨진다면...

남 다른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세계 전체에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한해 국민총생산(GNP)보다 땅값이 비싼 곳은 일본과 한국뿐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대만이나 영국처럼 땅이 비좁은 경우 GNP와 비슷하지만, 일본은 도쿄 땅값이 3분의1로 주저앉기 전에는 GNP의 여섯 배였으며 한국은 아직도 세계 최고, 무려 아홉 배 수준입니다.

▲ 우리 경제의 운명도 부동산에 달려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ㆍ일 두 나라를 '부동산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부동산 담보 대출 관행이 기업과 가계에 가장 기본적인 재산증식과 유지의 수단이 되고 있는 곳은 두 나라뿐입니다.

이래서 땅값은 끝없이 오르게끔 되어 있었는데, 경제 초강대국 일본에서 이 땅값 버블이 꺼졌습니다. 지금껏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경화 어쩌고 하는 오늘의 일본정치입니다.

도요다의 자동차가 GM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이 부동산 자본주의 덕택이었습니다. 도요다는 수십 년 동안을 기술자들에게 GM보다 싼값으로 연구개발비를 무진장 대줄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도요다가 소유한 많은 공장부지나 건물 등 토지가격이 수만 배나 뛰었기 때문에 자금 조달비용이 GM의 10분의1도 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경제의 운명도 부동산에 달려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토지의 45%를 토지 부자 1%가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상위 10%가 72%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집중'입니다. 자체의 수요 공급 논리가 아니라 무국적 악성 금융자본주의까지 가세한 이 투기판은 아무래도 갈 데까지 간 것 같습니다.

'동반성장' '균형발전' 주장의 허구

아무튼 세계가 처음 경험하는 '무국적 금융자본주의'의 자기전개에 우리 운명이 맡겨졌습니다.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하던 천문학에서 혼돈의 기상학으로 옮겨 간 경제논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잣대로 거침없이 현실을 재단(裁斷)하는 무모함,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 사회의, 언젠가는 드러날 감춰진 모습, 위기구조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장기불황에 깊숙이 진입했는데도, 당장 5% 성장을 유지하느라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앞으로 3, 4년 뒤에는 본격적인 불황 한 가운데서 허덕이게 될 터인데도, 그때쯤이면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나마 경제를 지탱할 길이 막막한데 "불황이 아니고 양극화"라면서 "동반성장"하고 "균형발전"하자고 합니다. 무슨 획기적인 경제전략이 있어서 소득 2만 달러가 곧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전략이 아니라 '진보'라는 분배의 입장에서 동반 성장하고 균형 발전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극화는 불황이 빚는 현상이고, 무슨 균형발전은 자본주의 동서고금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회가 지적 혼돈에 함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지적 혼돈이 언젠가 일이 크게 터지고 말겠구나하는 우려를 더욱 깊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나 경제의 위기는 이런 지적 혼돈이 시작입니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이런 지적 혼돈은 결국은 모두 정치 쪽으로 수렴되고 또 거기서 확대재생산되면서,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가상현실(假想現實)'을 조작해냅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 사회는, 거꾸로 이 허구의 체계화, '가상현실'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측면이 아주 큽니다. 부동산 투기를 막는 갖가지 장치가 오히려 아파트나 땅값의 폭락을 막고 있습니다.

디플레 시대에 인플레 처방이 본격적인 디플레를 오히려 억제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실물이 아니라 '집단심리'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환율 등 충격이 가해지면 그 집단심리는 그대로 사라집니다.

카프라는 '인식의 위기'가 여러 다른 모습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자세하지만 '체계적인 가상현실'로까지 발전해서 국면을 장악하고 있는 예(例)는 알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부시의 '적 만들기'는 이미 실패단계

대변화가 '전화(轉化)'시킨 것은 경제만이 아닙니다. '북핵'은 90년 전후 한ㆍ중, 한ㆍ소 수교에 대응한 북한의 '카드'였고 미국에게는 냉전 후 테러 조직 등 상정 가능한,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일곱 가지 잔챙이 적"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서 클린턴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수순(手順)을 밟았지만 부시는 다릅니다.

'황화론(黃禍論ㆍ중국)'에서든 '문명충돌(아랍)' 쪽에서든 적을 만들어 내야 되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패턴에서 적의 부재에 대응한 '적 만들기'로 전화(轉化)한 것입니다. "키우겠다"는 것이 정책목표이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시의 '적 만들기'는 이미 실패단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는 중국이 되도록 분란을 피한다는 입장이어서 부시의 파워게임에 응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 지난 4월 부시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로라 부시 여사와 류용칭 여사 등이 백악관에서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다른 한편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 어쩌고 하면서 고구려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의 불균형 발전이 야기할지도 모를 국가 분열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올림픽 이후에는 나라 안의 긴장을 밖으로 수출하는 호전적인 정책들이 줄을 이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주의도 시대착오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래도 부시나 다른 정치 지도자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다음 국면'으로 넘어 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들은 냉엄한 현실정치의 빈틈없는 논리에 자만하고 있지만 시대착오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다음 국면'이 크게 보면 냉전의 와해 이후 미국이 92년 이래 '북한 핵'이라는 빗장을 질러 막아 놨던 동북아의 대변화가 한꺼번에 들고일어나는 국면입니다. 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일들, 그동안 반작용 때문에 주춤했던 대변화가 다시 가속(加速)하는 국면입니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리고, 고질적인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IMF 때처럼 다시 '세계 자본시장'이 이들 국가들과 벌이는 한판 승부가 혼란의 큰 흐름입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마치 거대한 건물을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무너뜨리는 것처럼 소련제국을 붕괴시켰고, 일본 기업과 가계(家計)의 강력한 경제력이 90년대 후반 일어날 수도 있었던 세계대공황을 일본 안에 묶어 두었습니다.

유럽이 대통합으로 탈(脫)국가 과정을 앞서 나가 버리면서 뭔가 폭발 에너지가 줄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낡은 틀의 와해는 이미 큰 고비는 넘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④정치대란 ⑤사랑의 패러다임 ⑥나는 알았네 생명! ⑦만들어가는 의지의 공부길 ⑧대~한민국의 아이디 등의 글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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