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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이후 발표에 의하면 이 자리의 핵심 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동맹이었으나, 그뿐 아니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었다.
ⓒ 연합뉴스 백승렬

'부시 위폐전략은 예고됐었다'라는 제목의 11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에 대해 청와대와 외교통상부는 한 목소리로 "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을 왜곡한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와 외교부는 무슨 발언을 어떻게 왜곡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먼저, 청와대와 외교부는 "작년 6월 10일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핵문제 및 한·미 동맹이었으며, 북한의 불법행위는 주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즉 <오마이뉴스>가 지적한 대로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위폐문제와 '더티 밤'(dirty bomb, 방사능물질을 이용한 소형 폭탄) 등 북한의 각종 불법 행위(illicit business)를 거론한 것은 맞지만, 한·미간의 '주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논리다.

한편 청와대와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남북장관급회담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식으로 부시 대통령이 하지 않은 발언을 끼워넣어 거짓으로 브리핑한 것에 대해서는 양측 실무자들간에 합의한 '조율된 언론설명방향'(Coordinated Press Guidance)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당시 예정된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방북 계획을 감안해 우리측이 미측에 "가급적 좋은 톤(tone)으로 대외 발표를 할 것을 제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가급적 좋은 톤'으로 발표하다보니 부시 대통령이 안한 말도 끼워넣게 되었다는 해명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이 위폐문제를 언급한 사실은 숨기고, 오히려 "부시 대통령이 남북 장관급회담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날조한 것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문제는 정상회담 핵심의제에 대한 해명인데,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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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단독공개]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 ①... 부시 '위폐 전략'은 예고됐었다

청와대·외교부 "핵심의제는 북핵문제와 한·미 동맹이었다"... 정말 그뿐일까?

은폐?... NSC 사무처가 5당 대표들에게 보고한 '한·미 정상회담 결과' 보고서.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였던 북한의 긴급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오마이뉴스
청와대와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핵문제 및 한미동맹이었다"면서 양국 정상의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 원칙 재강조'와 '확고한 한미동맹 재확인'을 성과로 내세웠다. 그러나 두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의 접근법에도 이견을 보였으며, 특히 한·미동맹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심각한 이견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같은 사실을 한·미 정상회담에 배석한 한국측 고위 관계자로부터 직접 확인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와의 수차례 취재 및 전화통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작계 5029'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두분 정상이 '이 문제는 양국 국방장관들끼리 협의해 나가도록 하자'며 넘어갔기 때문에 잘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한·미 정상회담 대화록은 정상회담의 핵심의제와 한·미간에 이견을 보인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적시하고 있다. 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발계획'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한·미 관계)와 ▲북핵문제 및 6자회담 전략(북·미 관계)이었다.

그런데 전자에 관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정부의 공식 브리핑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5당 대표들에게 보고한 '한·미 정상회담 결과'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난해 6월 14일 청와대 초청 오찬설명회에 참석한 한 야당 대표도 "당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보고받지 못했고 매우 성공적인 회담이었다는 보고만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청와대와 정부는 양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유사시 '우발계획'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동맹관계의 핵심의제에 상당 시간을 할애해 논의한 사실 자체를 언론과 국회 그리고 정당 대표들에게 숨긴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 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전문] 한·미 정상의 '우발계획' 및 '전략적 유연성' 관련 발언

ⓒAP/연합뉴스
부시 대통령 "한·미 관계는 전략적인 관계이며 두가지 사항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습니다.

(한·미 관계에서)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우발사태'에 대한 계획을 갖추어 군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기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최악'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정치적 성격의 발표 없이도(without making a political statement)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두번째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should not allow this to be a political issue).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위험에 처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로서는 한반도 밖에서 지원군을 보내고 각종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하며, 이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입니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군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정부 전체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 그러면 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제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노 대통령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국은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미군 당국이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경우에나 한국 정부의 승인 없이 사전에 모든 것을 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한국 국민들은 사전이든 사후든, 원천적으로 허용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그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양국 외교·국방장관들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동맹에 지장이 없도록 협의해서 정리할 것을 제의합니다."

부시 대통령 "이 문제는 장관들끼리 협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론 의식해 논의 사실 자체를 은폐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두 가지 핵심의제에 대해 보인 '인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두 정상은 회담 초반부터 의제의 순서를 두고서도 '신경전'을 벌이다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양국 외교·국방장관들에게 문제 해결의 '공'을 넘겼다.

그러다 보니 이런 사실을 공개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당시에 '노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과 전략적 유연성 부인 발언으로 한·미 동맹의 신뢰에 금이 갔다'고 우려하는 국내 여론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아예 그런 의제를 논의한 사실 자체를 숨긴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참조)

우선 한·미 관계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먼저 노 대통령에게 "한·미 관계는 전략적인 관계이며 두가지 사항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다"면서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우발사태'에 대한 계획을 갖추어 군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6자회담 의제를 먼저 다룰 것을 제의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두가지 사항에 대해 명확히 하고 싶다"면서 북한 '우발계획'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북핵 문제보다 먼저 거론한 것이다.

부시가 말한 '우발사태에 대한 계획'(Contingency Plan)은 당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논란이 된 이른바 '개념계획 5029의 작계화' 문제를 의미한다. 한·미 군사당국은 지난 2003년부터 북한에서의 우발·급변사태 발생시 군사개입을 상정한 '개념계획 5029-99'를 '연합작전계획 5029-05'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해오다가 지난해 4월 이 문제가 언론에 불거지자 미국측이 한국측에 항의하는 등 논란이 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노 대통령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기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것은 정치적 성격의 발표 없이도(without making a political statement) 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부시가 말한 '정치적 성격의 발표'는 노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연설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8일 공사 졸업식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당일 크리스토퍼 힐 주한미대사가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면담해 발언의 진의를 확인할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부시는 이 대목에 이어 곧바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부시 "한반도 밖에서 지원군과 장비 투입하는 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

부시 대통령은 "두번째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should not allow this to be a political issue)"면서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위험에 처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로서는 한반도 밖에서 지원군을 보내고 각종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하며, 이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다"고 밝혔다.

부시는 이어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군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서 "이 점을 정부 전체가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안 그러면 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제구실을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유연성' 의제와 관련해서는, 부시 대통령이 직접 "한반도 밖에서 지원군을 보내고 각종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야 하며, 이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다"고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전략적 유연성의 요체는 동북아 유사시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으로 투사(out-put)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미군을 한반도 안으로 투입(in-put)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한 것은 동북아 유사시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으로' 투입될 경우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사태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전략적 유연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부시의 강경 발언은 우리측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실제로 이종석 차장과 반기문 장관은 정상회담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개념계획 5029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실무 혹은 고위급회담에서 협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상 차원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장관급 회담으로 공을 넘기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정치적 쟁점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국은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하지만 미군 당국이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경우에나 한국 정부의 승인 없이 사전에 모든 것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사안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상당히 많은 한국 국민들은 사전이든 사후든, 원천적으로 허용하면 안된다는 의견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은 그 사이에 끼어 있다"면서 "이 문제를 양국 외교·국방장관들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동맹에 지장이 없도록 협의해서 정리하자"고 부시 대통령에게 제의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한·미 동맹에 대한 몇가지 '이상신호'에 대해 질문을 한 뒤에 "이(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장관들끼리 협의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공감을 표시해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장관급회담에서 해결토록 하는 데 동의했다. 물론 정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국회와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숨겨왔다.

한·미간 갈등 끝?... 지난 1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 참석한 반기문 외교부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 두 장관은 이날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느닷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 정부의 양해사항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 로이터/연합

그리고 그로부터 7개월여만인 지난 1월 19일 반기문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워싱턴에서 열린 제1회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에서 느닷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 정부의 양해사항을 다음과 같이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①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혁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②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외교·안보 영역에도 '국민참여' 강조해온 참여정부가 국민을 두 번 속인 것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위폐문제를 거론한 사실을 숨겼다'는 <오마이뉴스> 보도와 관련해 12일 기자들이 해명을 요구하자 "정상회담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사는 정상회담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토록 목을 맨 6자회담의 걸림돌(위폐문제)로 작용한 중요한 의제를 국민에게 숨기고 없는 사실은 날조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뿐이 아니었다. 정부는 북한 유사시 '우발계획'(작계 5029) 문제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같은 한·미 동맹관계의 핵심의제를 논의한 사실조차도 국민과 여야 대표들에게 숨겼다. 외교·안보영역에도 '국민참여'를 강조해온 참여정부가 국민을 두번 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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