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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부터 선비들에겐 정신적 지표였으며 서민들에게는 일상생활용품의 재료로 쓰인 대나무. 이 대나무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 이돈삼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베어 흐르고
대숲은 좋아라
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적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 신석정의 '대숲에 서서' -


대나무의 줄기가 꼿꼿하고 둥글며 속이 비어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생장이 빨라 하루에 20∼30㎝씩 자란다는 건 쉬이 짐작하기 어렵다. 실제 대나무는 5월 죽순으로 나와 6월까지 두 달 사이에 성장을 끝낸다고 한다. 성장이 끝나면 단단해지는 것만 남는 셈. 또 '홀쭉이'로 자랄 것인지, '통통이'로 클 것인지도 죽순에서 결정된단다.

이 대나무는 예부터 선비들에게 정신적인 지표였다.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의 하나로 흔히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다. 그런가 하면 서민들에겐 일상 생활용품의 재료였다. 대젓가락, 대바구니, 대베개, 붓통, 대바늘, 참빗, 대발, 죽부인, 죽창, 지팡이, 효자손 등등 대나무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 담양군이 대나무 테마 숲으로 만들어놓은 죽녹원. 산책하기 좋도록 대숲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 이돈삼
▲ 대잎차로 한 다도체험. 슬비는 차를 내는 '행주'역을, 예슬이는 차를 마시는 '손님'역을 맡아 재미있게 체험을 했다.
ⓒ 이돈삼
아이들과 함께 이 대나무를 찾아 나섰다. 목적지는 '대나무고을'로 익히 알려진 전라남도 담양. 그동안 수없이 가본 담양이지만 따로 대나무를 테마로 정하고 떠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걸어보고 먼저 찾아간 곳은 '대나무 건강나라'. 담양에서 자생하는 대나무의 어린잎만을 따서 '대잎차'를 만들어 선보인 곳이다. 다른 차와 마찬가지로 세척과 덖음 과정을 거쳐 만드는 대잎차는 식이성섬유질이 풍부한 반면 카페인이 없고 칼로리가 낮아 '건강차'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다도를 체험했다. 사실 차를 마시는 것은 좋지만 늘 '다도'가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여서 아이들이 얼마나 호응을 할지 우려가 됐다. 하지만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아이들은 차의 역사와 효능, 그리고 차를 마시기 위한 예절, 차를 내는 방법, 맛있게 마시는 방법 등을 배우면서 전혀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배우는 '다도'가 신기했는지 아니면 재미있었는지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슬비는 차를 내는 '행주' 역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생각보다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게 슬비의 얘기였다. 작은아이 예슬이는 '손님'역을 맡아 언니가 내주는 차를 마시고 덤으로 나온 한과를 먹으면서 신이 났다. 대잎차의 감촉이나 은은한 향은 관심 밖이었다. 한과를 먹으면서 목을 축이는 용도로 차를 마셔댔다. 아이들이 마시기에 부담이 없었던 모양이다.

▲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관에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는 '관방제림'. 아름다운 숲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죽녹원 앞에 있다.
ⓒ 이돈삼
▲ 담양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관방제림과 죽녹원 사이에서 또 하나의 보고 즐길거리가 되고 있다.
ⓒ 이돈삼
대나무 향과 영양이 듬뿍 담긴 대통밥으로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죽녹원. 식사를 한 다음인지라 대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기 위한 배정이다. 부러 관방제림(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관에서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곳.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 있다)에서 담양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 죽녹원으로 향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는데 아이들은 그냥 좋은지 뛰어다닌다.

담양군이 대나무 테마 숲으로 만든 죽녹원은 5만여 평에 이른다. 대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빽빽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돌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르니 살랑살랑 봄바람에 대나무들이 몸을 비비며 사각사각 연주음을 내는 것 같다.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라는 죽로차도 널려 있다.

아이들은 대숲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저희들끼리 논다. 죽로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으나 관심 밖이다. 반면 군데군데 설치돼 있는 판다와 우마차 모형에 친근감을 나타내고 대나무로 만든 정자와 의자, 지압로 등에 호기심을 보인다. 특히 대나무 지압로에서는 어른들과 달리 착실하게 신발을 벗어들고 거닐며 지압의 효과를 체험했다. 슬비는 "아빠! 정말 시원해요"하면서 나에게도 직접 해볼 것을 권한다.

하긴 대숲체험이 별 건가. 대숲에 가면 됐지. 죽림욕은 또 얼마나 고상한가. 대밭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뛰놀면 됐지. 웰빙(참살이) 또한 몸과 마음이 즐거우면 되는 것이지. 따로 부담을 줄 필요가 없었다. '대숲 바람이 시원하다'는 것 하나만 알아도 충분할 것이니.

▲ 대밭을 배경으로 서서 대숯으로 하는 천연염색체험. 청자빛 감도는 색깔이 나중에 회백색으로 된다고.
ⓒ 이돈삼
죽녹원에서 나와 찾아간 곳은 대숯을 이용해 천연염색을 하는 '황토대가'. 대숯천연염색을 연구·개발해 신지식인에 선정된 김명희씨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황토와 대숯 등을 이용한 천연염색과 고구마 구워먹기, 미꾸라지 잡기 등을 해볼 수 있다. 우리기 해본 것은 대숯 천연염색.

원단은 1인당 셔츠 한 벌과 양말 한 켤레다. 손수건 같은 하얀 천에다 물을 들이는 체험은 말 그대로 체험으로 끝나버릴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집으로 가져가서 직접 입고 신을 것이기에 대개 체험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슬비와 예슬이도 '아빠가 입고 신을 것'이라며 정성껏 주물렀다.

미리 준비된 염료는 맑고 푸른 청자빛이 감도는 쪽빛이다. 대숯으로 만든 염료라지만 얼른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염색을 끝내고 나면 회백색의 기운으로 신비로운 색상을 연출한다는 게 김 선생님의 얘기다. 실제 완성품을 보니 대숯으로 물들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다. 회백색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뿐….

시간 관계로 염색작업의 마무리는 집으로 가져가서 따로 하기로 했다. 한 차례 주물러 말리고 또 주물러서 말리고…. 그 다음에 깨끗하게 씻어서 식초 몇 방울을 떨친 물에 담갔다가 말리면 끝이란다. 나머지 작업은 비 갠 다음에 집에서 해볼 일이다. 대숯이 공기정화작용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흡착작용으로 악취를 제거하고, 잠자면서 흘리는 땀을 제거하고, 원적외선을 내뿜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등등. 대숯의 효능을 알게 된 것은 덤이다.

▲ 죽초액을 이용한 비누만들기 체험시간. 피부상태나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를 섞어 '나만의 비누'를 만들어낸다.
ⓒ 이돈삼
대나무체험의 마지막 일정은 죽초액을 이용해 내가 쓸 비누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 체험은 대나무 관련 신소재 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나무바이오텍'에서 이뤄진다. 대나무숯을 굽는 과정에서 채취되는 죽초액에다 올리브, 포도씨 등으로 만든 고급식물유와 천연 아로마오일을 사용해 만드는 비누는 보습력이 뛰어나고 자극이 없다고. 비누 만들기는 식물유와 오일을 젓는 것으로 시작됐다.

여기에다 자신의 피부상태와 기호에 따라 식물오일이나 허브 등을 추가해 섞는다. 아이들은 팔과 어깨가 아플 만도 하지만 오일이 굳지 않도록 열심히 저었다. 여자아이였기 때문일까. 슬비와 예슬이는 문화유산해설사의 이야기보다 비누 만들기 체험을 하면서 들려준 피부미용에 대해서는 깨나 관심을 보였다.

아무튼 하루 동안 대숲을 보고 대통밥을 먹고 또 대숯을 이용한 염색체험과 비누 만들기를 해보면서 슬비와 예슬이의 몸도 마음도 대나무처럼 쑥-쑥- 자랐을 것이다. 동심도 굵은 대나무처럼 단단히 여물고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도 차곡차곡 담았을 것이다. 책을 뚫어져라 보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보다 색다른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뿌듯해지는 '죽(竹)이는' 하루였다.

▲ 죽녹원에 설치된 판다 모형과 나란히 앉은 슬비와 예슬이.
ⓒ 이돈삼

▲ 대숲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슬비와 예슬이 그리고 이날 대숲체험여행을 함께 한 경진이.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슬비와 예슬이랑 함께 한 대나무체험여행은 전라남도 담양군이 내놓은 버스투어상품이다. 대나무를 통한 웰빙을 체험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투어는 시범적으로 4월과 5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일요일에 떠난다. 출발 시간과 장소는 일요일 오전 9시 30분 광주역 앞이다.

*여행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체험, 다도체험(대나무건강나라), 민속체험(송학민속체험박물관), 죽림욕(죽녹원), 대숯염색체험(황토명가), 죽초액비누 만들기(대나무바이오텍), 한국대나무박물관 관람 등으로 진행된다. 대통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문화유산해설사 송명숙씨가 동행, 대나무와 담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참가비는 1인당 1만7000원. 접수는 담양군청 문화레저관광팀(☎ 080-380-3114)이나 담양군청 인터넷 홈페이지(www.damyang.or.kr/tourism) '버스투어'를 통해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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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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