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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1970년대에 초중고 시절을 보낸 내게 장작이나 조개탄 난로 위에 놓인 금빛 도시락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하얀 쌀밥 한가운데 계란 프라이가 얹혀져 있는 도시락은 부자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 때 당시 꽁보리밥이든 하얀 쌀밥이든 도시락을 제대로 싸오지 못한 친구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십시일반 한 숟가락씩 밥을 모아 함께 먹었고, 그것은 훗날 우리네 공동체 의식을 설명하는 데 좋은 사례로 쓰였다.

바야흐로 2000년대다. 이제 거의 대부분 학생이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학교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다. 직영이냐 위탁이냐, 우리 농산물이냐 마구잡이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학교 급식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 먹는 밥값이 없어 허덕이는 가정이 심각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다. 한 끼 2000원에서 2500원 정도 하는 밥값을 못 내 몇 달 동안 연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돈 없어 힘들어하는 아이들, 예산상 이유로 혜택 못 받기도

그래서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 결식 학생이 없도록 정부와 학교가 대책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저소득층 자녀 학교 급식비 지원 사업'이라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녀, 자치단체가 정한 결식아동, 복지시설 수용학생, 모·부자 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층을 위해 국고보조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 학생들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돕고 있다. 참으로 잘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자격 미달이나 예산상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지역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거나,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모·부자 가정 등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지닌 경우를 제외하곤, 엄정한 심사를 거쳐 고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지역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월 2만 원에서 3만3천 원 정도를 납부하는 가정은 수업료나 학교운영비(도합 40만 원 선)를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밖에 지원 기준에는 초과되나, 채권 압류 등 뚜렷한 사유로 가정생활이 곤란한 학생은 담임교사의 가정환경조사서가 첨부되면 심사를 거쳐 수업료 등을 지원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예산상 이유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우리학교에 학비감면 100여명이면 전국엔 얼마나 많을까

어제와 오늘 학급 담임들이 건네주는 학비감면 신청서를 받았다. 학년별로 학비 감면 희망자를 받은 뒤, 교육청에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맡은 고교 1학년의 경우 현재 집계된 인원만 37명이다. 3개 학년으로 따지면 백 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다. 이 숫자를 학교단위로 지역단위로 전국단위로 환산하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된다.

학비지원 신청서를 모아서 심사하고, 시 교육청에 지원을 요청하는 일을 맡은 내게 너무나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슬프게만 다가선다. 우리 학생들이 '돈'이라고 하는 애물단지에 얽매여 고개를 숙이며 생활해야 한다니 마냥 저리다.

보증금 몇 백에 월세를 살고, 건강 악화로 생업을 포기하는 가운데서도 두세 자녀를 교육시키는 부모의 이야기는 가슴을 죈다. 채권 압류로, 교통사고로, 사업 실패로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학부모의 각양각색 학비지원 신청사유를 읽으며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짐작한다.

사업부도, 거래처 도망, 임금 체불…학비감면 사연들

여기 학부모들의 학비지원 신청사유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일용직 근로를 하고 있습니다. 계절과 연관된 일인지라 겨울 날씨가 너무 추우면 추워서, 여름엔 너무 더워서, 비가 오면 비와서, 임금이 제때 나오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습니다. 지면으로 저희가 처한 어려운 상황 등을 상세히 설명드리지 못하는 점 등을 이해해 주십시오. 저의 아들의 학비 감면에 도움을 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도 개인 사업 부도로 인하여 현 거주지인 00시 00면으로 귀농하여 가축 사육을 시작하였으나 경험부족과 연약한 환경으로 도산하게 되었음. 또한 금융계 각종 대출로 인하여 연계 연체 되는 과정으로 신용불량자 및 개인 파산 신청자로 낙인 찍힌 상태임. 특별한 직업 없이 막노동에 의존하고 식당에서도 일을 하며 기초 생활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음. 그러나 자녀에게 만은 이런 어려운 현실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음."

"저희가 조그만 장사를 하다가 거래처에서 수금을 해주지 않고 도망을 가서, 물건 값 빚을 많이 지게 되어 하던 가게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택시 운전을 하고 있고, 아내는 몸이 조금 좋지 않아서 집에서 살림을 하며 쉬고 있습니다. 회사 택시 기사의 봉급이 얼마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기 힘들고, 집세와 여러 가지 세금도 간신히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학비 지원을 신청합니다."


이외에도 학비 지원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의 요청은 끊이지 않는다.

1960년대, 1970년대에 돈이 없어 밥을 못 먹었거나 학교를 중단해야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설움의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신분상승과 계층이동을 위해 피땀을 흘려야 했는가.

그러함에도 우리 사회엔 여전히 밥값이 없어 밥을 못 먹는 학생들이 있고,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중단해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국가 지원책이 마련돼 어려운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우리 사회 양극화는 학교 현장에도 심각하게 투영되어 있다.

정치가들에게 바란다.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국민(國民)이 궁민(窮民)으로 살고 있는지 학교현장을 방문하여 학비감면 신청서를 찬찬히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 학생들이 저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내일을 향해 정진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을 늘려야 한다. 흔히 말하듯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돈이 없어 밥을 못 먹고 수업료를 못내 설움을 당해야 할까.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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