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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된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24일 오후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62·고양 일산갑)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함에 따라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총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성총리 지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임중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첫 여성 총리'로 지명했지만, 그는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서리'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 중도 하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에서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해 인준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독일에서 첫 여성총리가 탄생한 데 이어 칠레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등 세계적 흐름도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한명숙 총리지명자가 첫 여성 총리로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명숙의 핵심 코드는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

정치인 한명숙이 표방하는 핵심 코드는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이다. 우리나라 제1세대 여성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의 '코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구호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첫 여성총리로 발탁하게 된 첫 번째 배경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초 4명의 여성장관을 임명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개각을 통해 이들은 전부 물러나고 남은 이는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뿐이다. 노 대통령은 여성장관을 늘리겠다고 몇차례 밝혔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여성총리 기용은 노 대통령이 진 '빚'을 한꺼번에 갚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 남성 정치학자는 김영삼 정부와 대비되는 김대중 정부의 차별성을 '진보적인 통일정책과 급진적인 여성정책'이라는 함축적인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장관을 지낸 한명숙 의원은 김명자 환경부장관과 박선숙 청와대 공보수석(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국민의 정부 장·차관급 발탁 인사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각각 국회의원과 환경부차관 등으로 참여정부에서도 중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여성부장관으로 발탁한 그를 총리에 기용하는 것은 국정운영 기조의 연속성으로 읽힌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배경은 그가 야당과의 '대화 복원'을 통해 참여정부의 '안전항해'를 책임질 1등 항해사로서 적임자라는 것이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20일과 21일 기자실을 찾아 "집권 4년차인데 이제 항해일지를 한번 점검해야 할 때"라며 "참여정부의 안전항해를 위한 분을 총리로 맞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야당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 후임 총리로 기용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런데 이런 이 실장의 발언은 언론보도를 통해 '한명숙 총리 기용 확실시'라는 사실판단을 넘어서 '야(野) 반대 적은 총리... 한명숙 쪽으로'라는 정치적 판단으로 대세를 형성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다시 대변인의 '2인 병렬 검토' 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이 한명숙 의원과 김병준 정책실장 중에서 막판까지 고심중임을 내비쳤다.

정치권의 '여성 네트워크 허브'로서 정치성향은 '중도'

▲ 2003년 2월 27일 오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명숙 환경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그러나 이는 언론의 분위기가 너무 일방적으로 한명숙 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연막전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총리 인선과정에서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너무 '저자세'로 끌려다닌 것으로 비칠 경우 관료사회의 '복지부동'과 레임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명숙 총리 기용은 '야당이 반대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카드'라는 점에서 사실상 처음부터 가장 유력한 카드였다.

재선의원인 한명숙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가 열린우리당 내의 양대 계파인 '민주평화국민연대'의 회원이자 '바른정치모임'의 준회원이란 점 역시 중도파로서의 그의 당내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민주평화국민연대'는 재야파 의원들의 모임인 '평민연'과 '국민정치연구회'의 뒤를 잇는 열린우리당 대중조직이다. 반면에 '바른정치모임'은 2000년 당시 재선그룹인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이 '정치개혁'을 목표로 구성한 민주당 내 의원모임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두 조직에는 각각 김근태 최고위원과 정동영 당의장쪽 사람들이 많다.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 여성의원들의 당직 인선을 조율하는 등 여성 의원의 '대모'로 꼽힐 만큼 리더십과 조정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장관으로 재임중이던 2003년 12월 환경부는 정부업무평가에서 최우수 부처로 선정되었으며, 그 또한 <중앙일보>의 장관 리더십평가에서 1위로 선정돼 리더십과 장악력 모두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한 의원은 2004년 9월 <조선일보>가 조사한 17대 국회의원 인맥 조사에서 여·야 여성 의원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여성 네트워크 허브'로 조사됐다. 동료 의원들의 신망을 바탕으로 한 이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한나라당도 반대할 수 없는 카드로 작용한 셈이다.

남편이 말하는 한명숙 "누구에게도 경쟁심을 유발하지 않는 사람"

▲ 여성부 장관 당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한 한명숙 총리 내정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를 누구보다는 잘 아는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 겸임교수(66·신학박사)가 말하는 한명숙은 '인화(人和)의 사람'이다. 박 교수는 "평범한 아줌마 같은 편안한 인상의 한명숙은 그 누구에게도 경쟁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면서 정치인 한명숙을 이렇게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한명숙은 인화의 사람이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대화와 화합을 통한 조정(調整)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널리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반대파나 반대되는 정당의 사람들도 이러한 평가에는 인색하지 않은 듯하다. 한명숙과 함께 일해 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한명숙에 대한 이상과 같은 평가에 동의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의원의 후배이자 동학 그리고 여성운동의 동지로 30여년간 그의 삶의 행로를 지켜본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는 그를 '품이 넓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한명숙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해내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수많은 갈등과 부대낌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비난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만큼 그는 품이 넓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긍정적 사고방식과 낙관적 삶의 자세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치열하게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지만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여유있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도 않았다."

한명숙의 인생행로를 바꾼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이사장을 지낸 강원룡 목사(평화포럼 이사장) 또한 그의 진면목을 '고된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 얼굴에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내가 30년 이상 가까이 지내온 한명숙은 1960년대 군사독재 정부시절 고된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 얼굴에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억울한 일을 계속 겪으면서도 마음속에 독기가 없는 착한 사람으로 오뚜기 같이 살아왔다."

'인화의 달인' 한명숙 총리의 역할은 '여자 고건'?

▲ 2004년 4월 6일 당시, 경기도 일산갑에 출마했던 열린우리당 한명숙 후보가 일산 이마트 부근에서 유세활동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대 내각의 수반으로 고건 총리를 기용하면서 자신와 고건 총리의 역할을 '몽돌과 받침대'에 비유했다.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라는 자신의 구상에 따라 적임자를 물색한 결과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후 탄핵사태에 이어 총선에서 '여대야소'로 정국구도가 전환되자, 일 잘하는 여당의 5선인 이해찬 의원을 참여정부 2기의 '분권형 책임총리'로 기용했다. 능력은 있지만 성격이 '각진' 이해찬 총리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은 '천생연분론'까지 내세워 그를 옹호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야당과 '각'을 세우고 물러난 지금, 노 대통령은 '중도파'인 한명숙 의원을 참여정부 제3기 내각을 통괄하는 '완충역 총리'로 기용하는 '실용 인사'를 단행했다. '행정의 달인' 고건 전 총리에 비유하면 한명숙 의원은 '인화의 달인'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역할은 '여자 고건'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임 총리가 벌여놓은 국책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가운데서도 참여정부의 '안전항해'를 원하는 노 대통령이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도 어쩌면 고건 전 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의 '중간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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