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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20일치 1면 사이드 톱 기사. 이 기사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등록금 비싸다고 자립고 억제하니 사교육비가 더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 중앙PDF
「등록금 비싸다고 자립고 억제하니 사교육비 더 늘어」

<중앙일보> 20일치 1면 사이드 톱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최근 교육부가 자립형사립고(자립고)를 늘리지 않기로 한 결정을 비판한 뒤 "이렇게 되면 많은 학부모가 지금처럼 비싼 사교육에 계속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주장이 들어맞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자립고 재학생이 일반고 학생에 견줘 사교육비를 덜 쓰거나 사교육 참여율도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무척 재미있는(?) 취재방식을 사용했다. 서울대에 입학한 자립고(전북 상산고) 졸업생 한 명의 사교육비를 다른 일반고 졸업생 한 명의 그것과 비교해본 것이다.

이렇게 따져봤더니 '일반고 졸업생의 사교육비가 월 85만원(전체 교육비 102만원)으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반면 '돈 많이 든다는 논란의 대상인 자립고 졸업생의 사교육비는 고작 20만원(전체 교육비 55만원)이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이 이 신문의 1면 사이드 톱을 장식한 '등록금 비싸다고 자립고 억제하니 사교육비 더 늘어'란 제목의 근거였다. 물론 6면에 특수목적고 주변인사 몇몇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지만 곁가지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신문은 교육부가 이미 지난해 9월 자립고 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사교육 현황을 조사한 뒤 발표한 자료를 왜 무시했는지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2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자립고 시범운영 평가보고서'를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중앙일보> 기자도 이날 이 자료를 받아 다음처럼 보도했다.

"예상과 달리 자립형 사립고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 비율은 68.2%에 달했다. … 이 같은 현상은 자립형 사립고도 대학입시에 초점을 둔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일치 <중앙일보> 보도는 한마디로 '엉터리'란 사실이 단박에 드러난다. 자립고 학생들이 차지하는 사교육 비율과 이에 드는 돈이 일반고에 견줘 더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들이 지난해 9월 3일치에 버젓이 보도한 내용을 해괴한 사례를 들어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리즘 탓인가, 아니면 목적의식 탓인가

▲ 교육부가 지난 해 9월 발표한 자립고와 지역 일반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 정도.
ⓒ 윤근혁
먼저 교육부 조사자료에 나온 사교육 참여 비율부터 보면 부산 해운대고 83.7%, 광양제철고 81.4%, 현대청운고 74.1% 등 전체 6개 자립고 평균이 68.2%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국 일반고 평균치인 58.7%(2004년 한국교육개발원)를 크게 웃돌고 있는 수치다.

<중앙일보>가 학생 한명의 사례를 든 상산고는 전국 평균과 거의 같은 58.4%의 사교육 참여율을 나타냈다. 이 수치도 상산고가 있는 전북 전주지역 일반고 학생의 평균 사교육 참여율 53.0%보다는 높은 수치였다.

사교육에 쓰는 비용 또한 자립고 학생들이 훨씬 큰 것으로 집계됐다. 학생들의 11.6%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민족사관고는 1인당 월 사교육비가 105만원이나 됐다. 이는 전국 일반 고교생 사교육비 월 평균액 36만원(2004년 한국교육개발원)보다 3배나 컸다.

이밖에도 월평균 사교육비를 차례대로 보면 해운대고 56만원, 상산고 42만원, 포항제철고 39만원, 현대청운고 36만원, 광양제철고 33만원이었다. 전체 자립고 학생들의 월 사교육비 평균은 52만원으로 전국 일반 고교생보다 16만원이나 비쌌다. <중앙일보>가 사례를 따온 상산고도 사정은 같아서 사교육비가 전국 평균보다 10만원이나 더 들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보고서에서 "(기숙사가 있는) 상산고와 민족사관고의 경우 방학 중 사교육 시간은 약 2배로 증가하며 이는 지역사회 사립고보다 더 많은 시간"이라면서 "현실적인 사교육비를 감안하면 자립고 학생의 교육비가 비싸지 않다는 주장은 민족사관고를 제외하고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보면 <중앙일보> 보도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사실왜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립고 학생을 전수 조사한 과학적인 조사결과를 외면한 채, 특수한 학생 한두 명의 상황을 마치 일반적인 것인 양 보도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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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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