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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발행인협회(OPA)가 주최한 첫 세계포럼에 패널 토론자로 초대받았다. 이 포럼은 '미래를 위한 포럼'이라는 주제로 기존 언론사에서부터 포털사이트, 광고업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사들을 초대해 인터넷이 미래에 미치는 변화와 충격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였다.

원래는 오연호 대표를 초청했지만 오 대표가 바빠서 대신 참석했다. 꿩 대신 닭이 간다고 해도 어서 오라고, 왕복 항공권과 숙박료를 줄 테니까 오라고 해서 갔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초청을 받았다. 사실 <오마이뉴스>이기 때문에 이런 파격적 초대를 받은 거다. 3개월 전에 입사, 별로 한 일이 없는 나로서는 팔자에 없는 호강이다. 물론 걱정도 됐다.

2일부터 이틀 간의 예정으로 런던의 별 다섯 개짜리 랜드마크 호텔에서 포럼이 열렸는데 가방에 양복과 넥타이를 넣어갔다. 언제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소한 7년은 넘은 것 같다. 전야 행사로 칵테일 파티를 한다고 해서 넥타이를 맸다. 칵테일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넥타이라나.

# 칵테일 파티 : 말거는 사람이 없다, 쪽팔려서 돌아왔다

▲ 온라인 발행인 협회의 첫 세계 포럼이 열린 랜드마크 호텔. 1899년에 세워져 고풍스럽고 으리으리한 호텔이어서 이번과 같은 기회가 아니면 문을 열었다가 한번 보고 뒤돌아 나갈 호텔이다.
ⓒ 홍은택
1899년에 생긴, 으리으리하고 고풍스런 호텔에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 방은 5층에 있는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룸. 퀸 사이즈 침대가 두 개나 있고 욕실과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각각 다르고 바닥은 다 대리석이다. 수건은 몸을 몇 번 칭칭 감아도 남을 만큼 많다. 옷을 걸려면 옷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아늑한 소파도 놓여 있고 전화기만 세 대다. 하루 객실료가 50만원이 넘는다. 호텔 종업원은 기분좋게 "이미 OPA가 지불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자전거여행을 할 때 비바람 맞으며 풍찬노숙을 한 생각이 났다. 여행 마지막 무렵에 다른 라이더 3명과 비용을 분담하며 78달러짜리 호텔에 동숙했을 때 너무 황송해서 수도꼭지조차 살살 틀었었다.(여기서 경고등 하나. 얘기가 꽤 길어지니까 각오하세요.)

넥타이를 매고 칵테일 파티장으로 가는데 입구에서 포럼 등록을 받았다. OPA의 부사장 엘리가 "불편한 게 없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무적인 어조였다. 사실 할 얘기가 있었다. 항공료를 회사에서 선불했기 때문에 돌려받아야 하는데 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미국식 칵테일 파티는 질색이다. 명찰을 목에 걸고 돌아다니면서 서로 말을 붙이면서 사교를 하는데 이미 다들 얘기할 임자를 찾아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모두 백인들이다. 뻘쭘하게 근처에서 와인을 한 잔 들고 맴돌다가 의자에 앉아서 가져온 자료를 읽었다.

남들은 서서 신나게 얘기하는데 기껏 자료나 보고 있다는 게 쪽팔려서 방으로 돌아와버렸다. 오랜만에 맨 넥타이가 무색했다. 회사에서는 가서 이른바 네트워킹 같은 것도 하라고 보냈을 텐데 다시 파티장으로 갈까 말까.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 토론 준비 : 목표는 '망신 안 당하기'... 항공료 얘기 해야하는데

사실 오기 전부터 약간 위축돼 있었다. 참석자들의 면면이 너무 화려했다. <로이터통신> 사장, <뉴욕타임스>의 온라인 담당 부사장, 야후의 임원에 이르기까지 온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모였다. 일단 최대의 목표는 망신 안 당하는 것으로 잡았다.

톰 글로서 로이터 통신 사장의 기조연설로 시작되는 포럼에는 7개의 패널 토론이 예정돼 있다. 나는 '어떻게 독자들을 끌어안을 것인가'의 주제 토론에 패널이었다. 일정표를 보니 조금 비중이 낮은 시간에 배치돼 있다. 오후 2시 45분. 다들 점심 먹고 낮잠 한 잠 자고 싶을 시간이다. 나는 시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새벽 1시부터 깨어있었다. 이러다 나중에 헤매면 어쩌지? 커피를 네 잔이나 벌컥 벌컥 마셨다.

패널 토론이 어려운 것은 미리 원고를 준비해서 낭독할 수 없고 바로 사회자와 청중들의 질문에 즉답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영어로 토론을 잘 소화할 자신이 없어 "파워포인트 같은 것으로 프리젠테이션 하면 안 되겠냐"고 사전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제프 자비에르라고 하는 사회자는 "청중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많이 주자"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포럼이 열리는 회의실에 갔더니 내로라 하는 인터넷 기업을 대표해 250여명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숨이 막혔다. 일본에서 온 몇 사람과 나를 제외하고는 백인 일색이다. 포럼 참석비만 1백만원이 넘으니까 사실 웬만한 나라에서는 참석하기가 부담스러운 자리다. 회의장에 들어설 때 엘리한테 항공료 돌려달라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정신없이 바빠 보인다.

내가 오후에 있을 패널 토론에서 잘못하면 항공료 달라고 하기가 더 어려울 텐데, 오전 중에 얘기해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사람들은 전날 칵테일 파티에서 다진 우의를 발휘하며 서로 친밀하게 얘기하고 있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 구석에 처박혀 앉아 오전 패널 토론을 지켜봤다.

머리 속에는 '오후 토론에서 뭘 말하지, 어떤 질문이 나올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들의 말이 잘 안 들어온다. 생각보다 토론에 밀도가 없다.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백만원을 냈다고 생각하면 좀 돈이 아까울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자리가 성황을 이루는 것은 여기서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그것이 거래로 발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명찰들을 유심히 보고 다닌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내게 말을 먼저 걸지 않았다. 물론 나도 걸지 않았다.

점심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브라질 최대 출판사의 이사라고 하는데 그 역시 나처럼 영국과 미국 중심의 이 회의에 적응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오마이뉴스>를 알고 있었다. 너무 꼬치꼬치 캐물어서 조금 성가셨지만 그래도 패널 토론을 앞두고 혀 준비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 <포브스닷컴>의 리치 칼가드 발행인(왼쪽)과 <로이터>의 톰 글로서 사장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 홍은택
# 패널 토론 : 쟁쟁한 참석자들,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점심을 마치고 패널 토론이 시작되기 전 일본 광고전문가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광고효과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사람들의 주의가 산만했다. 생각보다 시간을 오래 끌어서 기다리는 동안 내가 뭘 말할 지가 가물가물해진다.

역시 산만한 박수소리와 함께 그의 발표가 끝나고 토론자들이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단상에는 의자 네 개만이 단출하게 놓여있다. 앞에 놓인 탁자가 훤하게 터져있어서 발이 시릴 것 같았다. 나는 양복에는 어울리지 않는, 목없는 흰 양말을 신은데다가 구두 대신 캐주얼화를 신고 있어서 아래를 보여주기가 싫었는데 할 수 없었다.

어느 자리에 앉을지 미리 계산했다. 안 그래도 주목을 못 받는데 맨 가장자리에 앉으면 더욱 더 초라해 보일 것 같다. 사회자 바로 옆에 앉기로 했다. 토론자는 나 말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편집국장인 마이크 오레스케스와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 에밀리 벨. 평소에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쟁쟁한 참석자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사회자는 최근 <오마이뉴스>가 소프트뱅크로부터 1천1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소식을 전하면서 <오마이뉴스>의 성공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 아니냐는 것으로 첫 질문을 던졌다. <오마이뉴스> 말고 세계적으로 시민참여 저널리즘으로 성공한 사이트가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논거였다. 다행히 예상 질문에 있었다.

나보다 앞서 발언한 오레스케스 국장은 "대중과 쌍방향으로 대화하려는 시도는 그 전에도 중요했고 지금도 중요하다"면서 "대중과 언론의 관계가 온라인 시대라고 해서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기 앞서 오레스케스 국장의 발언에 대한 내 생각에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갔다.

"지금 우리는 문화혁명기에 있다고 본다. 그 문화혁명은 정보와 메시지가 흐르는 방향의 역전에서 생겨났다. 이전에 정보는 위에서 아래로 흘렀다고 본다면 지금은 밑에서 위로 흐른다. 미국에서 '마이스페이스닷컴(Myspace.com)'이라든지 '아워미디어닷컴(ourmedia.com)' 또는 '스튜피드비디오닷컴(stupidvideo.com)'이 뜨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쌍방향성의 확보보다는 아래서 올라오는 정보 흐름의 물꼬를 어떻게 트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다. 나도 <오마이뉴스>가 언론사인지 또는 인터넷 기업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우리는 밑에서 올라오는 정보가 우리를 거쳐가도록 하는 채널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는 보도하는 게 아니라 채널링(Channeling)을 하고 싶다."

오레스케스 국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할 차례.

"<오마이뉴스>는 철저히 한국적인 현상인 것이 맞다. 세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 발달된 초고속 인터넷망이다. 전국민의 80%가 이 망을 이용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힘이 컸다. 둘째, 한국 사회의 단일성이다. 세 다리 반만 건너면 모든 한국사람들이 다 연결된다. 그러니 폭발적이고 응집력있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셋째, 보수 언론이 뉴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불균형한 언론구조. 기존 언론과 다른 목소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분출했다."

# 시민참여저널리즘 : 소수인종과 피해자에게 발언기회를

▲ 왼쪽부터 가디언 에밀리 벨 편집국장,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마이크 오레스케스 편집국장, 나, 사회자인 제프 자비에르. 내 발을 보면 목없는 흰 양말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 크리스티나 미셀
이제 '시민참여저널리즘이 세계적 보편성이 있느냐'는 문제로 공을 드리블할 차례.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세 가지 요인을 세계에 적용해볼 수 있다. 첫째, 세계는 점점 더 온라인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한국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망은 아니더라도 인터넷망은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둘째, 세계화의 진전으로 세계는 점차 한 지구촌이 되고 있다.

셋째, 한국의 보수언론이 그랬듯 서방의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세계 정보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구성만 해도 영미권 일색 아니냐. 여기 중동에서 온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가디언>과 <트리뷴>과 같은 유수한 언론사들이 소수인종과 다른 피해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려고 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의 문제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고 보는가. 거꾸로 생래적인 편견이 내재돼 있다고 보는 게 더 안전한 가정 아닌가.

그렇다면 소수인종이나 피해자들에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문제를 잘 보도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직접 발언할 기회를 주는 시민참여저널리즘은 세계화될 수 있다고 본다."

오레스케스 국장이 점잖게 반격성 보충질문을 했다.

"시민참여저널리즘은 인터넷이 없던 1940년대 미국에서도 이미 시도된 바 있고 그 이후로 그런 시도가 잇따랐지만 성공한 적이 없었다. 과연 지금에 와서 시민참여저널리즘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어딘가. 강점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뉴스를 재정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사는 백악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또는 유명한 연예인들이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정보의 발신지는 위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시민이 기자'라는 개념을 추구하고 있다. 어떻게 모든 시민이 기자일 수 있느냐 하면 기사가 시민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생각하는 게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게 세상을 움직이고 바꾼다.

우리는 전통적인 언론만큼 빠르고 정확한 디테일로 보도할 수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다룬다. 그게 기사이고 우리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분야는 축구에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제한이 없다."

이제 나는 점점 여유가 생겨서 청중을 둘러보게 된다. 다리도 바꿔 꼬아보고 턱도 괴어 보고 다양한 자세가 나온다.

패널 토론은 빠르게 <오마이뉴스>로 집중됐다. <가디언> 편집국장은 최근 독자들이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허용한 것에 대해 길게 설명했는데 이건 우리로 봐서는 한참 지난 얘기였다.

# 주제넘은 조언 : 서방 언론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오보, 팩트 뒤에 숨었다

사회자는 확실히 <오마이뉴스> 편이었다. 그는 "그럼 전통적인 언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달라"고 했다. 이게 함정이다. 여기서 의기양양하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 영미권에서는 그 전에 말한 것까지 다 까먹는다.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신문사들에 대해서 조언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오전에 톰 글로서 <로이터> 사장이 프로와 아마추어 기자의 결합은 기존 언론사에서도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글로서 사장은 그러면서 쓰나미와 같은 재난 보도에서 시민들의 사진 제보를 예로 들었다.

시민기자들의 현장 근접성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시민들이 쯔나미 현장 사진을 로이터에만 제보하라는 법이 있는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결합을 새로운 보도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직업 기자와 시민의 물리적 결합에 불과한 얘기다.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오마이뉴스>도 당면한 과제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을 기존 언론사의 보도 구조에서 수직계열화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청중들은 의외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딱 한 가지 질문은 어떻게 시민기자 기사의 정확성을 담보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근기자의 보도에도 적용되는 문제고 오히려 상근기자들의 기사가 오히려 언론윤리를 위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편집자들이 시민기자들의 신원과 기사의 정확성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의 몇 가지 안전장치를 두고 있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

사회자는 마지막 질문으로 기존 언론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와 우리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존 언론에서 글쓰기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본다. 지금 <트리뷴>이나 <가디언> 모두 기자들에게 종이 신문에는 기존 작법의 기사를 쓰도록 하고 온라인에는 블로그를 하도록 하는 이원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문에도 기자들에게 블로그처럼 1인칭으로 기사를 쓰도록 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중간에서 전달하는 방식의 3인칭 기사 작법은 시대의 요구와 잘 맞지 않는다. 독자들은 남 얘기 하지 말고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 서방 언론들은 모두 오보를 냈다. 정보를 쥔 사람들의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 기자의 임무가 끝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팩트 뒤에 숨은 것이다. 근데 만약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 내가 보증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과감하게 기사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남 얘기만 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의 세계화에는 참고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시민참여저널리즘의 세계화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으로 나는 그게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토론 이후 : 나는 밥값을 했다... "항공료 주세요"

▲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오길비의 스티브 헤이든 부회장이 발표하고 있다.
ⓒ 홍은택
토론은 여기까지. 토론회에서 안 한 내 얘기를 덧붙이자면 <오마이뉴스>가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나는 기여한 게 없지만)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는 방식이 통했다고 본다.

운영자나 시민기자들이나 돈보고 <오마이뉴스>를 굴리지 않았다. 난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비전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입사하고 나서 계속 떠나지 않는 주제다. 인터내셔널을 운영하면서 나 역시 그 비전을 추구하고 싶다.

토론회가 끝났을 때 청중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질문이 없어서 준비해간 것을 다 풀어놓지 못했다. 그런데 한 두 사람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굴지의 신문과 인터넷 기업 간부들까지 명함을 들고 와서 악수를 청했다. <뉴욕타임스>, AOL, <르몽드>, <로이터>, CNET.com에다 Astrology.com이라는 점성학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까지 찾아와서 <오마이뉴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피곤해서 다음 순서를 빼먹고 잠시 방에서 쉬고 올 때 보니까 OPA의 엘리가 회의장 밖에 앉아 있다. 항공료 얘기를 꺼냈다. 원래 항공료까지 다 주기로 한 것 맞지 않느냐. 좀 구질구질하지만 나는 떳떳했다. 밥값을 충분히 했으니까.

엘리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잠시 당황하다가 내가 건네준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무슨 사무착오 같은 게 있었나 보다. 그 영수증 밑에 있는 통장번호로 송금해달라고 했다.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느낌이다. 어쩌면 내게는 토론을 어떻게 더 잘하는가보다 어떻게 항공료를 돌려받느냐가 중요했던 것은 아닐까. 회사에서 꼭 받아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아마 자격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 일정이 끝난 뒤 다시 칵테일 파티가 열렸다. 이제는 더 이상 동양 저 켠에서 온 얼굴 까맣고 수염을 기른, 이상한 아저씨가 아니다.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앞다퉈 말을 건넸다. 만찬장에서는 원탁에서 내 양 옆으로 두 사람이 앉아서 계속 물어보는 바람에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유스호스텔로 : <오마이뉴스>는 '가능성'... 내년에도 초청받을까

결국 영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앞서가는 분야가 있고 그 내용을 잘 알면 어떻게 해도 저 쪽에서 경청한다.

시민참여저널리즘은 아직 세계적으로 검증된 모델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마이뉴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예외적 존재이기도 하면서 앞으로 전개될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범한 지 6년이 됐지만 아직도 가능성이다. 이것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년에도 과연 초청을 받을 수 있을지 두고보자.

포럼이 끝나는 날 나는 랜드마크 호텔에서 나와 런던 시내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옮긴다. OPA는 호텔 방값을 이틀만 부담하는데 나는 하루 더 묵어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에 하루 더 체류하려면 방값을 내야 한다. 혹시 회사에서 대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방에 10명이 함께 자는 호스텔이 더 편하다. 배낭족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여행담을 듣는 게 더 낫다.

갑갑한 양복도 벗어버리고 겨울철 내 교복이라고 할 수 있는, 목이 긴 스웨터와 골덴 바지로 갈아 입었다. 런던 시내는 서울처럼 매연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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