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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들과 함께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정명훈 상임지휘자
ⓒ 유영수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지른다. 세계적인 거장이라 불리는 정명훈 예술감독을 바로 눈 앞에서 지켜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주민들이 사는 동네의 한 교회에서이니 더욱 그렇다.

16일 연주회 장소인 서울 구로구 궁동 연세중앙교회에는 오후 5시부터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공연은 저녁 7시 30분부터였지만 더 가까이에서 정명훈 감독을 만나려는 주민들의 열정은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만했다. 무료공연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간혹 지방에서 부러 공연을 보기 위해 상경한 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 1만5000석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서울시향의 연주에 푹 빠져있는 모습
ⓒ 유영수
공연장이 구민회관이 아닌 교회라고 하기에 '좀 규모가 큰 데라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니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간 게 사실이다. 헌데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전용콘서트홀에 와 있는 게 아닌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와 음향시설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1시간 30분 정도의 리허설을 마치고 정명훈 음악감독은 언론사와 인터뷰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해설자의 소개로 무대 위로 올랐다. 시민들은 열광하며 박수를 보냈다. 세계적인 거장을 대면하는 기쁨이 박수로 터져나온 듯했다.

▲ 연주를 시작하기 앞서 공연기획팀장의 해설을 듣고 있는 정감독
ⓒ 유영수
1만5000석의 좌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공연장 밖에서는 멀티비전 앞에서 5천여 명이 약간은 서운하지만 중계되는 영상으로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려 2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든 것이다. 정명훈 음악감독이 취임하고 나서 이렇게 많은 관람객 앞에서 연주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서울시향의 백수현씨는 말했다.

본격적인 음악회에 앞서 공연장소를 대관해 준 연세중앙교회의 당회장인 윤석전 목사는 "정명훈 음악감독님을 비롯해 쟁쟁하신 분들이 연주하러 오셔서 그분들의 얼굴만 봐도 벌벌 떨린다"며 "이렇게 훌륭한 콘서트홀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 유영수
서울시향의 공연기획팀장인 오병건씨의 해설로 음악회는 시작됐다. 오씨는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정숙해 줄 것을 당부한 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퇴장해 사라질 때까지 박수를 계속 쳐주는 것 또한 관람객의 예의라고 강조했다.

연주회에 온 관람객들은 해설자의 당부를 금방 흡수했나보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또 정 감독이 무대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박수소리는 계속 공연장 안을 맴돌았다. 세계적인 지휘자에 걸맞은 수준의 관람객들만 초청한 것처럼 말이다.

▲ 격정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거장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 유영수
얼마 전 정명훈씨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후 새로운 오디션을 거쳐 젊은 인재들을 많이 보강한, 서울시향의 연주는 감미롭고 세련됐다. 뛰어난 인재들은 물론 그들을 훈련시키는 지휘자의 수준이 세계적이니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눈을 지그시 감고 들어보니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장엄하면서도 화려하고 찬란하다 할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 정명훈 감독의 현란한 지휘는 눈이 부실 정도로 열정적이다.

때론 잔잔하게 그러나 격렬하게 음악이 흐르면 그의 몸짓도 함께 빨라지고 마치 춤사위를 보고 있는 듯한 동작을 선보인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전율이 느껴진다. 기자가 있는 곳에서 3m도 안 떨어진 거리에서 거장이 연주를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따름이다.

▲ 같은 과 친구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박미리 학생(사진 왼쪽). 이 교회를 다니는 친구 이선희 학생(사진 오른쪽)의 소개로 이 음악회를 알게 됐다고 한다.
ⓒ 유영수
"평소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오케스트라의 음악회가 다소 지루하지는 않을까"라는 기우는 접어둬도 될 듯하다. 한 곡이 시작될 때마다 해설자의 소개가 이어지고, 혹여 해설이 없는 음악회라 할지라도 음악은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섯살 먹은 아들 한건우와 함께 음악회를 찾은 이숙미(30·울산 복산동)씨는 서울에 사는 동생의 권유로 일부러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울산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 아닐 수 없다. 학창시절에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했다고 하니, 그러한 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종합예술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같은 과 친구끼리 음악회를 찾은 이선희(22·경기도 시흥시)씨와 박미리(22·경기도 부천시)씨는 평소에도 자주 클래식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솔직히 누구 보러 왔어요?"라는 질문에 "당연히 정명훈씨 보러 왔죠"하고 곧바로 실토한다.

이 외에도 대부분 관람객들은 정명훈의 음악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호기심 때문에 공연장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이 점을 서울시향은 잘 활용하고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 유영수
1시간 10분 동안 계속된 연주회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으로 막을 내렸다. 수많은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하며 앙코르를 요청했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다시 무대에 등장한 정 감독은 준비하고 있던 250명의 성가대를 일으켜 세웠다.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가 우렁차고 멋진 화음이 되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들고 무대 인사를 하는 정 감독은 "이렇게 연주하기에 적합한 교회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며 "사실 오케스트라 연주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맞다. 애초에 교회음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 앙코르곡으로 성가대와 함께 '할렐루야'를 연주하는 모습. 세계적인 거장과 함께 무대에 서는 축복을 받은 성가대의 장종덕 총무는 '감동스러웠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 유영수
'2006년 새해, 구로구가 드리는 멋진 선율'이란 제하에 음악회를 마련한 구로구청의 양대웅 구청장은 "작년 가을부터 이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문화행사에 목말라하는 구로구 주민들을 위해 좋은 것들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훌륭한 예술가를 따질 때에 어찌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가리겠냐만, 왠지 삼겹살만 매일 먹다 부드러운 쇠고기 등심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한 느낌이 든다. 최고의 음악을 맘껏 감상하는 이런 호사는 자주 누릴 만해 보였다.

▲ 그의 섬세한 손짓 하나하나에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는 절정에 다다른다.
ⓒ 유영수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입 앙 다물고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 임하는 젊은 단원들을 지켜보며, 세계적 거장에 걸맞은 수준으로 도약할 서울시향의 장래를 기대해 본다.

"오페라하우스·전용콘서트홀 건립 문제 해결해야"
정명훈 예술감독과의 일문일답

- 작년에 바로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지 않고 1년 동안 고문으로 활동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음악감독은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므로 준비가 철저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할 순 없지만, 오페라의 1막에 서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 네티즌들 중에 서울시향과 KBS 교향악단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정 감독님이 보시는 객관적인 서울시향의 수준은 어떤지 그리고 향후 서울시향을 어느 정도까지 성장시킬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일단 비교한다는 건 좋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목표는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키우는 것이지만, 거기에 앞서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하나 정도는 우리나라에 있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 올 한 해 베토벤 교향곡 9번까지 연주하며 집중적으로 조명하신다고 들었는데, 예전에도 도쿄필하모닉과 협연하신 적이 있고…. 굳이 또다시 베토벤의 곡을 선택하신 이유는.
"오케스트라 트레이닝 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다, 심포니 작곡가로서는 베토벤이 최고이기 때문에 주저없이 그분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 상임작곡가로 선임된 진은숙씨를 정 감독님이 추천하셨는데 원래부터 교분이 있으셨나요? 그리고 진은숙씨의 서울시향 내에서의 구체적 역할은 어떤 것인지.
"그분의 음악을 예전부터 좋아했을 뿐 따로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음악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진은숙씨는 상임작곡가로서 공연기획과 교육프로그램 분야에서도 폭넓게 역할을 수행하리라 믿습니다."

- 올해 구민회관 공연을 11회 여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예정인지 그리고 지방으로 확대하실 계획은 없는지요.
"당연히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될 거구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방에서도 공연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공연도 무척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 그렇다면 전용콘서트홀이 완공된 후에도 이런 공연을 중단하지 않으신단 말씀인가요.
"물론입니다."

- 구민회관 공연과 실내악 공연 등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연주를 하다보면 정 감독님이 추구하는 음악세계에 훼손을 주지 않을지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아닌 구민회관에서 하는 공연이라 해서 대충 음악회를 준비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같은 곡을 연주할 때 한 노트(note)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다만 해설을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쉽게 다가갈 수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 흔히 '거장'이라 불리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외국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가들에게도 하나씩 별칭을 만들어서 부르곤 하는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정경화, 정명화 두 누님과는 자주 만나시는지요.
"제가 피아노를 안 하기 때문에 협연할 일은 거의 없구요, 그래도 일년에 한두 번씩은 개인적으로 만납니다."

-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오페라하우스와 전용콘서트홀 건립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 감독님의 활동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인지.
"장기적으로 본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오케스트라에 꼭 필요한 악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안 되면 안 할 수도 있는 거죠." / 유영수

덧붙이는 글 |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명훈 음악감독님과 촬영과 인터뷰 등 여러 행정업무에 도움을 주신 서울시향의 백수현님 그리고 구로구청 문화홍보과 홍민정님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한 제 개인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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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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