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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는데도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사이언스>에 게재된 2005년 논문이 거짓으로 밝혀졌고,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황 교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황 교수의 거짓말에 따라 지지자들의 입장도 춤을 춘다. 길고도 험한 거짓말의 대해를 건너 마침내 이들이 황 교수를 따라 도착한 곳은 '원천기술'이라 불리는 항구다.

요컨대 2005년 논문이 날조라고 해도,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바꿔치기 당했다는 황 교수의 주장이 자작극으로 판명난다 해도, 황 교수에게 원천기술이 있다면 모든 걸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황 교수의 열혈지지자들에게는 황 교수가 연구과정에서 저지른 윤리적 흠결도, 연구 데이터의 조작행위도, 거듭되는 치명적 거짓말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갖가지 음모론에 감염된(?) 이들에게 황 교수는 수난당하는 한국판 구세주다.

'대박'과 '몰염치'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기실 연구과정의 비윤리성과 날조된 논문을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 교수의 학자로서의 생명은 끝났음이 자명하다. 이것이 이른바 '황우석 사태'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도 원천기술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할 기회를 주자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마치 수능시험을 망친 한 수험생이 "나는 전국 수석을 할 실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번 수능시험 결과는 무효로 하고 재시험을 치를 기회를 달라"고 떼를 쓰는 격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한 두 명도 아니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토록 무모한 주장을 용감하게 펼칠 수 있는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대략 '사행심'과 '자존심'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대박의 꿈을 꾸며 투자한 주식이 연일 하한가로 내리꽂히는데도 불구하고 반등의 재료가 있을 거라고, 지금이 바닥이고 앞으로는 상승할 일만 남아있을 거라고 자신을 위무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물론 그 어리석은 투자자가 기대하는 그런 일 따윈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그 투자자에게 남는 것은 깡통 계좌와 뼈아픈 후회뿐이다. '사행심'에 사로잡힌 투자자에게 시장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까지 황 교수에게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사행심'이 아닐까 싶다.

줄기세포라는 독점적 신기술이,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어줄 것이고 천문학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여전히 황 교수를 지지하게 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경제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러나 대박심리에 지나지 않으며 대박심리는 '사행심'과는 샴쌍둥이 사이다.

대박을 쫓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도무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과 황 교수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놀랄 정도의 근친성이 발견되는데, 이들은 미구에 극적인 반전이 있을 것이고 그 반전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손실과 상처가 보상받을 거라고 믿는다.

불행히도 이들의 예측은 어김없이 빗나가곤 한다.

한편 황 교수를 결사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주장이나 입장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기왕에 했던 자신들의 발언과 행동 때문에 황 교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기존에 했던 주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원천기술의 시현'을 통한 면죄부 발급인 셈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자존심' 때문에 그릇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누구나 잘못을 범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후의 대응이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이를 교훈으로 삼는 사람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음은 일종의 공리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반성보다는 몰염치에 익숙한 듯 싶다. 황우석 사태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태경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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