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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참으로 황당하고 허망스럽다."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진위논란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과 지역신문 사설들이 한날 동시에 비슷한 유형을 한 목소리로 쏟아내기는 모처럼만의 일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참담하다는 걸까.

'국민' 또는 '우리 사회'의 참담함이라고 표현했지만 마치 신기루를 향해 열심히 달리다 수렁에 빠지기라도 한 듯 망연자실해 하는 언론사 내부 표정을 드러내 보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때문일까. 과열된 속보경쟁과 과대 포장해 왔던 보도행태가 너무나 참담하고 허망한 결과를 초래케 했다며 언론계 내부의 자성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곳도 있다.

7개월만에 일제히 '천당'서 '지옥'으로

지난 5월만 해도 '황우석 쾌거로 미국 뉴욕증시 줄기세포 관련주가 급등' '국제 과학자들, 황 교수를 모셔라' '난치병 환자들 황 교수만 바라 본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국내 주류 매체들은 일제히 실망과 우려, 심지어 황당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꼭 7개월 만이다. 영웅의 탄생에서 참담하기 짝이 없는 나락으로 전락한 극과 극의 의제로 둔갑하기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당시 <사이언스>에 실린 황 교수의 논문 내용에 관한 엠바고 파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언론사들도 이젠 "진실을 알고 싶다"며 진위논란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상반된 주장의 기자회견으로 우리 사회가 심리적 공황사태를 맞게 됐다"면서 일부 언론사는 진실보도를 외면한 한국 언론의 동반자살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자조적인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의 초중고교의 시절 등 그가 살아온 과정을 앞다퉈 보도하면서 "그의 쇼크가 부시도 이겼다"며 한때 미화경쟁을 주도했던 보수신문들은 '진실규명'과 '재출발'을 '국민' 또는 '우리 사회'의 이름으로 주문하고 나섰다.

<조선>·<중앙>, "국민과 사회는 진실을 알고 싶다?"

17일 <조선일보>는 '황우석 파문 거짓 털어내고 진실위에 재출발하자'의 사설에서 "줄기세포가 없다는 고백에 허탈해 있는 국민들은 지금도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 채 헤매고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청와대와 정부 쪽으로 겨냥했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청와대, 총리실, 과학기술부는 황 교수 연구의 이런 문제점을 정확히 언제부터 알았고, 왜 알고 나서도 '이쯤 하자' '두고 보자'는 말만 하면서 국민들을 진실에 눈뜰 수 없게 만들었는가"라며 국민의 이름으로 다시 날을 세웠다.

특히 이 사설에서 <조선>이 "정부를 뒤쫓아 국민 프로젝트, 미래 프로젝트라는 장밋빛 수사를 붙이면서 황 교수의 주장을 중계방송하듯 받아 써왔던 언론의 책임도 비껴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점이 이채롭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자사의 보도행태에 대한 반성이나 자성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정치와 과학의 경계선을 지키지 못하고 정부와 장단에 맞춘 특정 언론사들의 보도행태'를 꼬집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참으로 모호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 '진실을 알고 싶다'에서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진실규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5월 엠바고 파기로 구설수를 타면서까지 속보경쟁에서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 했던 <중앙>은 사설에서 "줄기세포 논란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절망과 좌절로 이어져선 안 된다"며 "진실을 밝혀내고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밝혔다.

<조선>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면 <중앙>은 '우리 사회'의 이름으로 진실규명을 촉구했다는 점이 다르다.

<동아> "어느 쪽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스럽다"

<동아일보>는 '줄기세포, 후속연구 멈춰선 안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어느 쪽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혼란스럽다"며 하루 전의 엇갈린 기자회견의 내용을 분석했다. 이후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계속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고 말한 황 교수의 입장을 부각시키면서 줄기세포 후속연구에는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아>는 그러나 "뛰어난 연구 성과를 계속 내놓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황 교수가 사진 조작 같은 결정적 흠결 때문에 사이언스 게재 논문을 취소하게 된 것은 한국 생명과학계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며 "황 교수는 말이 아니라 검증된 논문과 연구결과를 통해 원천기술의 존재를 확인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초기의 신화 만들기 속보 경쟁과는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이들 신문사는 그동안 황 교수의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논문 발표 이후 그의 과거 이력을 낱낱이 들추면서 '한국의 노벨상' '황우석 또 해냈다' '외국 언론 황우석 극찬' 등의 기사로 그를 미화하면서 속보경쟁을 주도해 왔다.

이들 신문사의 과열된 속보경쟁은 뉴스기사 검색에서도 알 수 있다. 이날 오전 7시 현재까지 <조선>과 <중앙>의 황 교수와 관련된 등록 기사는 모두 2천건이 넘었다. 조선 2090건, 중앙 2051건, 동아 1656건 등의 순이었다.

지역신문들도 사설에서 황 교수와 관련된 비슷한 의제를 일제히 다뤘으나 다소 간 차이가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동안 황 교수 연구의 윤리문제와 진위공방에 대해 우려와 함께 언론의 지나친 속보경쟁의 자제 필요성을 주장해 왔던 <부산일보>와 <광주일보> <대전일보> 등은 이날 일제히 진실규명에 초점을 모았다.

"허깨비 보도, 신화 만들기 보도가 언론 황폐화 초래"

또 <국제신문>은 허깨비 보도와 신화 만들기 보도 등이 언론의 황폐화를 불렀다며 언론의 자성론을 주장해 시선을 끌었다.

<부산일보>는 '새 국면 줄기세포 진위논란 차분히 지켜보자'의 사설에서 "국민 모두를 허탈과 실망, 분노와 혼돈에 빠뜨리는 폭탄발언이 아닐 수 없다"면서도 지나친 예단과 부풀린 의혹은 금물임을 지적했다. 이 사설은 "우리 모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며 "차분하게 검증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추측 보도나 성급한 결론 도출에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 했다.

<국제신문>은 정부와 언론의 책임을 물었다. <국제>는 사설 '황우석 사태 낱낱이 밝혀야 한다'에서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도대체 무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책임을 가릴 것을 주장한 뒤 언론의 황폐화도 심각함을 지적했다.

이 사설은 "언론이 사실 확인에 소홀히 함으로써 '신화'를 부풀렸고 결과적으로 '허깨비 보도'를 일삼았다"며 "선정성과 추측보도, 전문성 부족. 편가르기 등 우리 언론의 치부들이 한꺼번에 분출된 셈이니 철저한 반성과 함께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고 언론의 자정과 책임론을 제기했다.

<광주일보>는 이날 사설 '진실게임이 된 줄기세포, 국가적 불행이다'에서 "국민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고 확대 해석하면서도 "일희일비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한국 과학계의 손실로 이어지고 국가적 불행만 가져다 줄 뿐이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대전, 경기지역, "진실규명만이 해법, 정확하고 객관적 검증을"

황 교수의 고향인 대전지역은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찾으려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대전일보>는 이날 '줄기세포논란 진실규명만이 해법이다'의 사설에서 "서울대 재검증위원회가 다음 주부터 본격 조사활동에 들어간다"며 "잘못의 범위와 책임소재 규명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한다. 있는 진실을 그대로 밝혀주길 바란다"고 차분하게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사설은 말미에서 또 "세계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며 "진실규명만이 사태의 해결"이라며 냉정함을 거듭 나타냈다.

또한 <중도일보>는 '누구 말이 진실인가'란 사설에서 "서울대 조사위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한 점 의혹도 남김없이 낱낱이 밝히고 소상하게 국민에 알려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밖에 <경기일보>도 이날 사설 '황 교수 파문 진실규명을 기다리자'에서 "감정적 애국주의 두둔도, 맹종적 영웅주의 힐난도 지금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면서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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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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