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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노동당 장애인부문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장애아동을 둔 부모 활동가이기도 하다. 혹여 논란이 되더라도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하려고 한다.

며칠 전 송년모임에서 만난 선배는 내가 민주노동당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민주노동당은 황우석의 연구성과를 왜 그렇게 비판하는가, 국민정서를 모르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잘못 아닌가'라며 질타했다. '황우석 개인의 성과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줄기세포를 둘러싼 정책과 윤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진보진영은 비판적이다'라고 강변했지만, 잘못을 다그치는 선배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혼란

이제 온전히 살아 있는 배아줄기세포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황우석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고 그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황 교수를 지지하고 그 연구성과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은 마치 패닉 상태인 듯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황 교수가 이루어 놓았던 성과에 관계없이, 과학자가 윤리를 저버리고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그 과학적 업적도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 황우석 교수는 아직도 시간을 달라고 기술적인 주장을 하지만, 이제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과학의 목적과 윤리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제 비로소 혼란이 정리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잘은 모르지만 상식과 보편적 윤리의 눈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생명공학산업(이른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진보정당 활동가로 일하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혀 둔다. 나는 생명공학이나 줄기세포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고, 따로 공부한 적도 없다.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장애인복지 등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로서 줄기세포 연구가 일부 난치병과 장애에 대한 치료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고, 진보정당 활동가로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논의에 대해 일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MBC가 보도하기 전에도 국내외에서는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 획득 과정에 윤리적인 문제 제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생명공학산업(BT) 정책이 생명윤리나 연구목적에 대한 국민적 합의보다는 상업적 가치와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있다고 보고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자의 업적을 존중하여 두어 개의 배아줄기세포라도 진실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배아줄기세포의 생성이 과학으로서 입증된다는 것은 진일보한 성과이며, 그것은 황우석 교수가 늘 이야기하던 치료 목적의 '맞춤형 줄기세포' 가능성을 이론적으로나마 여는 셈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에 대해 본래 보수적인 사람들은 윤리를 강조하여 주저하는 입장이 되고, 진보진영은 과학적 성과에 따른 진보를 강조하기 쉬운데, 오늘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거꾸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는 생명공학 연구기술 이전에 그 윤리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국가의 경제적 이익만을 내세우는 경제주의가 국민들의 생각을 교란하고 보수주의를 물구나무서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성과를 둘러싸고 무언가 잘못된 환상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익을 내세운 경제지상주의의 오류

황우석 교수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든지, 노벨상감인데 국가 차원에서 키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경제와 국익논리가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지만, 이런 논리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연구 윤리를 지켜야 하고, 과학적 진실에 부합해야 하며, 그리고 국민 다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상식을 마비시킨다.

생명공학의 경제적 성과에 매몰된 정부와 언론이 합세하여 냉정해야 할 과학적 연구에 신화를 만들어냈다. 황 교수를 비롯한 그 신화의 주인공들은 난치병 치료라는 박애주의까지 동원하여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과대 포장하고, 결국 연구윤리나 과학적 진실마저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은 국가정책적 오류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맹목적으로 두둔하는 무책임한 자세와 도덕적 해이를 스스로 노출시켰다. 이에 청와대를 비롯해, 검증도 없이 황우석 팀에 막대한 재정을 투여한 정책당국자들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당국의 철학 부재와 국익을 내세워 경제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천박한 보수언론의 책임이 크다. 평론가 진중권씨가 오죽했으면 '애국질'이라는 신조어까지 말해야 했을까.

경제지상주의자들이 보기에 줄기세포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고 관련 산업이 활력을 갖는 등 직접적 경제효과는 배아줄기세포의 성과가 가시화한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이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했다. 폭락하고 있는 줄기세포 주식들이 이를 말해준다. 치료 목적으로 개발이 완성되어 안전하다는 게 임상적으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난치병과 장애인을 위한 소위 '맞춤형 치료'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배아줄기세포, 과연 희망인가

현재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배아줄기세포가 있다고 해도 채취된 난자 속에서 만들어져 인공적으로 배양된 것이므로 암을 유발할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배아줄기세포는 골수나 탯줄 등 우리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환자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성체줄기세포와는 다르다. 이런 면에서 인공으로 배양된 배아줄기세포가 암세포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그런데도 황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세계줄기세포 허브'에서 난치병 환자들로부터 치료 신청을 받고 있다는 것은 상식 이하다.

성체줄기세포와는 달리 배아줄기세포가 맞춤식 치료가 될지, 재앙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배아줄기세포 연구과정에서 드러난 윤리문제와 정부의 원칙 없는 개입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재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배아줄기세포의 안전성과 실용화를 입증하더라도, 이를 둘러싼 상업자본과 경제주의 논리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혜택은 부자인 극소수 환자에게만 돌아가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진다고 해도 과연 일반 장애인들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배아줄기세포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배아줄기세포에 대해 과도한 기대와 환상이 유포되고 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로서 많은 장애인들과 난치병 환자들 심정과 희망을 조금은 알고 있다. 주변에 아는 장애인들을 만나면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에 거는 기대가 지나치다.

시각장애인인 한 교수는 황우석 교수가 머지 않아 자신의 시력을 되돌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 했다. 청각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줄기세포가 자녀의 청각신경을 회복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언어발달을 위해 당장 필요한 달팽이관 시술을 보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척수장애인들 중에는 머지않아 휠체어를 버릴 기대를 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가 척수를 다친 개를 줄기세포를 이용해 고쳤다는 발표가 보도되면서 더욱 심해졌는데, 과연 검증이 된 것인가. 이렇게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치료효과에 대해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참여정부는 반성해야 할 게 많다.

필자도 장애를 가진 아이를 생각하며 생명공학이 뇌신경세포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면 뇌신경조직의 위축으로 나타난 정신지체 장애도 의학적으로 극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본적이 있다.

물론 부질없는 상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설령 그것이 미래에 가능해진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며, 그 치료에 응할 생각도 갖지 않을 것이다. 상업주의 의료체계에서 경제주의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생명공학이 극소수 부자 외에 일반 환자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겠는가.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기초적인 공공의료 보장을 먼저 확대하는 게 백배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해야 할 것

이런 의미에서 공인이자 연예인으로서 강원래씨가 보여준 행동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황우석 교수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해도 난자 제공 여성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MBC에 대한 항의시위에 참여하고, 마치 황우석 교수가 난치병 환자들의 구세주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강원래씨도 척수장애인으로서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이해하지만, 치료가 요구되는 대다수 장애인들이 매일 필요한 약값도 지원받지 못하는 현실을 제대로 알기 바란다.

백혈병 환자들은 생명과도 같은 글리벡 약값마저 지원받지 못해 싸워야 했고, 엄동설한 국회 앞에서는 지금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최소한 법적 장치로서 '장애인차별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거리 농성중이다. 장애인들과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기초적인 의료보장제도도 안된 상황에서 난치병 극복이라는 이상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기만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황우석 교수가 만들었다는 줄기세포와 논문의 진위에 관계없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검증도 안된 배아줄기세포 연구개발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난치병 환자들을 위해 성체줄기세포를 통한 다양한 치료개발을 활성화하는 게 급선무이다.

연구과정에서 매매 난자가 사용되었고 연구원의 난자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반인권적 행위로서 어떤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줄기세포허브는 검증도 안된 난치병 치료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야 하며, 치료를 위해 신청받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방치한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성공할지라도, 막대한 국민세금을 투여한 연구 성과가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의 난자를 착취하여 극소수 부자 환자만을 치료하는 비극을 낳을 것이며, 이는 또 다른 사회적 재앙을 의미한다. 오늘날 보수주의가 거꾸로 서서 경제주의를 외치는 상황에서 진보는 생명과 윤리 앞에 소심하게 되며,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인터넷 장애인신문 <위드뉴스>에도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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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웃는날> 편집위원 장애인교육권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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