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청와대가 < PD 수첩 >의 취재를 막지못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던 지난 6일자 <동아일보> 기사.
ⓒ <동아일보> PDF

결과론을 들이대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남아있기에 결과를 전제하긴 이르다. 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참작 사유'가 될 수 있다. 사자의 머리보다는 인간의 심장을 우선시했던 언론의 접근법에 정보 부족까지 겹쳤으니 오보와 오판이 양산된 게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것만은 지적해야겠다. 아무리 정상을 참작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행태들이 있었다.

상당수 언론은 < PD수첩 > 등을 향해 왜 나서느냐고 비난했다. 과학계가 알아서 검증할 문제를 왜 아마추어인 언론이 나서 이러쿵저러쿵 하느냐는 힐난이었다.

< PD수첩 > 등이 하고자 한 건 의혹 제기였다. 판관으로서 논문의 진위를 판별하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 건 아니었다.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게 만드는 여러 의혹들을 제기함으로써 과학계의 검증을 촉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접근은 법률도 보장하는 언론의 권리다. 설령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률 조항 말이다.

보수성과 엄격성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법률조차도 허용하는 의혹 제기 기능을 언론 스스로 부정했다. 자기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다.

"제보자 색출하고 취재 차단하라"며 스스로 족쇄 채운 언론

그 뿐인가. 조중동은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 사실이 밝혀진 후 두 가지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제보자 색출과 취재 차단이 그것이다.

'애초 PD수첩 제보자는 누구인가'<조선일보>
'악의적 제보자는 과연 누구?'<중앙일보>
'PD수첩 뒤에 프로급 제보자 있었나'<동아일보>


'황교수 돕겠다던 청와대, PD수첩 협박 땐 뭐했나'<조선일보>
'청 협박취재 알고도 방관… 불씨 키워'<동아일보>


< PD수첩>의 취재윤리 위반 사과성명 직후 조중동이 쏟아낸 기사의 제목들이다.

▲ < PD 수첩 > 제보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보도했던 지난 5일자 <조선일보> 기사.
ⓒ <조선일보> PDF
평지풍파를 일으킨 제보자를 찾아내 엄단해야 한다는 주장, PD수첩의 취재를 사전 차단하지 못한 청와대는 책임지라는 주장이,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언론에 의해 제기됐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돼 있는 마당에, 취재의 상당 부분이 제보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조중동은 제보자를 색출해 엄단하라고 했다.

정무직 공무원의 인터뷰·기고와 협찬을 제한한 정부 홍보지침이 언론자유를 훼손한다고 맹비난한 조중동이 청와대에게 취재과정을 세세히 살펴 문제가 있는 취재는 차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미디다. 아주 음울한 색조를 띤 코미디다.

음울한 악성보도 코미디

제보자의 고발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는 언론은 없다. 마찬가지로 취재 과정에서 얻은 파편적인 정보를 그대로 기사화하는 언론도 없다. 그것은 충분한 검증과 내부 게이트키핑을 거쳐 비로소 기사화된다. 기사화되기 전에 이뤄지는 취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진행되고, 제보 또한 고발과 무고의 양 측면을 모두 고려하면서 접수하는 게 상식이다. 언론은 오직 보도된 기사를 통해서만 평가받고 검증받는다.

물론 반론의 여지도 있다. 취재행위가 취재윤리를 현저히 위반하고 있다면 중도 제재가 가능할 것이다. < PD수첩 >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조중동도 바로 이점에 착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돼 있었다. 취재윤리 위반에 대한 비판은 정당했으나 비판 범위는 너무 넓었고 비판 방향은 비뚤어져 있었다.

조중동이 취재 차단을 역설하던 시점에 밝혀진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행위는 미 피츠버그대 연구원 인터뷰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서울대 연구실의 보안을 지적했다. < PD수첩 >이 황우석 교수팀의 사전 허락을 받고 접근한 것조차 문제 삼았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경호를 책임진 당국은 뭐하고 있었느냐고 비난했다. 황 교수팀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간섭하면서까지 취재를 차단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중동은 그랬다. 자사 소속 기자들이 해당 공무원의 양해 하에 정부 부처 사무실을 출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 PD수첩 >의 정상 취재조차 차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재 제한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양자의 합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조차 조중동은 부정했다.

그래서 조중동을 위시한 일부 언론의 보도는 진위 논란 결과와는 상관없는, 중증 수준의 악성 보도다. 언론이 스스로 취재의 자유와 보도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자해'를 한 셈이다.

▲ 황 교수가 외부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난 6일자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PDF
답답한 청와대... 신중할 때 나서고, 나서야 할 때 뒤로 빼고

일부 언론이 '자해'를 하는 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자폭'을 하고 있었다.

어제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배아줄기세포는 없다"고 말한 소식을 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좀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참으로 신중한 태도다. 그래서 아쉽고 답답하다. 왜 신중해야 할 때는 나서고, 나서야 할 때는 뒤로 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월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진위 논란을 촉발시키더니 < PD수첩 >의 취재윤리 위반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이 정도에서 정리하자"고 했다.

황 교수팀과 관련한 최초 논란, 즉 연구윤리 논란이 불거진 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사위원회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 일정을 미뤘고, 엊그제 또 다시 결론 도출을 유보했다.

연구윤리 논란과는 별개 사안인 진위 논란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처사였다. 연구윤리 준칙에 입각해, 또 법률 조항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면 될 일을 다른 사안과 연결해 조율하려 한 '정치 행보'를 보인 것이다.

260억원 국민 세금을 황 교수팀에 지원한 만큼 연구 과정과 결과를 관리하고 검증할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의 책임자, 즉 오명 과학기술부총리는 지난 8일 과학계의 재검증 요구가 비등해지는데도 "정부 차원의 재검증은 없다"고 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부터 과학기술 책임자인 과학기술부총리까지 논란의 전개 양상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이 때문에 논란은 증폭됐고 논란 과정은 거칠어졌고, 논란의 뒤끝은 처참하다.

'자해'와 '자폭'엔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정당한 자기 권능을 부정했다는 점, 그리고 이런 행태 이면에 자기 권위를 갉아먹는 눈치보기와 야합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 달여의 논란이 빚은 상처가 너무 크다. 국가를 구성하는 각 분야의 뒷모습을 양지에 끌어낸 순기능이 있지만 햇살 아래 드러난 그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비틀려 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기'를 시작할 것인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