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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의 '사학법 무효화' 투쟁 강도가 예상외로 세다.

장외 규탄투쟁은 기본이고 김원기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겸 원내대표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퇴로를 열어놓지 않은 채 '너 죽고 나 살자'식 투쟁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어제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검은 바지, 즉 전투복을 입고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퇴전의 투쟁에 나서는 한나라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한나라당 소장파는 사학법 무효화 투쟁을 국가정체성 수호 투쟁과 등치시키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강재섭 원내대표도 이런 강경투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견은 비공식적으로, 외마디로 흘러나올 뿐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곳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강경투쟁에 문제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궁시렁대는' 차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나서 박근혜 대표가 주도하는 강경투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당내 이견은 '궁시렁'일 뿐, 아무도 박근혜 대표를 막지 못한다

이는 뭘 뜻하는가? 박근혜 대표가 명실상부하게 당의 정점에 올라섰다는 얘기다.

그럴 만도 하다. 탄핵 역풍으로 존립이 위태로운 당을 구했고, 두 번의 재보선에서 압승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게다가 당 지지율이 50%를 넘보는 전무후무한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누가 감히 박근혜 대표의 공적과 당내 위상에 도전을 하겠는가.

한나라당은 어제 노무현 대통령을 투쟁의 고리로 걸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개정 사학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이 요청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으로선 투쟁의 대상을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전해 집중시킬 수 있다. 국가 정체성 수호투쟁의 성격에 비춰 더 없이 좋은 구도다.

박근혜 대표로서도 더 없이 좋다. 이런 구도가 형성된다면 사학법 무효화 투쟁을 '노무현 대 박근혜'의 빅매치로 전화시킬 수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약진 등으로 일시 흔들렸던 위상을 추스르면서 자신의 격을 야권의 영수로 올릴 수 있다.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판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구도가 성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박근혜 대표는 두 가지 부담을 안고 바지를 입었다.

하나는 퇴로 없는 투쟁이 갖는 위험성이다. 박근혜 대표는 사학법 무효화를 주장하지만 이건 현실적인 주장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과 지점에 적당히 물러서야 하는데 그럴 만한 명분이 현재로선 별로 없다.

열린우리당은 감세안 일부 수용 등의 양보안을 흘리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그건 협상대상이 아니다'고 딱 잘랐다. 그럼 박근혜 대표가 취할 수 있는 '공세적 퇴각'의 명분은 뭘까?

또 하나의 부담은 국민 여론이다. 박근혜 대표는 국가 정체성 수호를 외치고 있지만 상당수 국민은 사학비리 척결을 바라고 있다. 이 현격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결집력이 높은 종교계가 어깨동무를 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사학을 거치면서 몸소 겪은 비리 경험도 강렬하다.

국민여론도 퇴로도 없는 투쟁, 이정표는 어디를 향할까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표의 이번 선택은 모험에 가깝다. 모험의 특성은 그 결과가 간명하다는 데 있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그럼 박근혜 대표는 어떻게 될까?

박근혜 대표로선 사학법 무효화 투쟁의 열기를 내년 지방선거로 이어가 또 다시 압승을 거두려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까지 이어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다. 해를 넘기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의안은 뒤로 미룬다고 쳐도 새해 예산안이나 자이툰부대 파병연장동의안 같이 시한이 '연내'로 정해진 사안을 마냥 팽개칠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모험의 결과는 연내에 판가름 날 것이다. 그 결과가 대박이냐 쪽박이냐는 내년 초에 세워질 이정표를 보면 알 것이다.

내년에도 서울시청이나 서울역 앞 광장을 찾아가는지, 아니면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로 15번지 헌법재판소'로 향할 것인지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헌법소원은 필수겠지만 그것이 '단독'이냐 '병행'이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사립학교법이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규택 `사학법 무효투쟁 및 우리 아이지키기 운동본부`(가칭) 본부장 등 의원 20여명은 12일 오전 11시께 국회의장 면담 형식으로 의장실을 방문한 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이규택 의원이 의장실에서 김원기 의장이 나간뒤 사학법 개정안 통과를 비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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