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칼바람이 몰아치던 12일 밤, '밥풀떼기' 개그맨이었던 김정식씨가 진행하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사랑의 소리 방송' 스튜디오를 찾았다.

김씨는 곰 인형 두 개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인형으로 판매수익금은 모두 희귀병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밤 12시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치매 어머니 때문에 매일 밤샘 씨름을 한다는 김씨의 모습은 매우 초췌해 보였다.

"자자, 저녁 먹읍시다. 윤 기자님, 식당으로 가시지요."

김씨의 말에 나는 외투를 챙겨 입었다. 허름한 스튜디오 문을 열고 나간 곳은 바깥 식당으로 통하는 길이 아닌 스튜디오 내 자체 식당이었다. 두 평 남짓해 보이는 골방 같은 분위기기의 좁다란 통로에 식탁이 놓여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갖다 줬다는 몇 가지의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퍼주는 밥그릇을 들고 자리에 앉았는데 두꺼운 외투를 입은 탓에 몸이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얼른 외투를 벗었다. 식당에서 밥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이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장애인 방송을 하고 있었다.

▲ 비좁은 스튜디오 내 주방. 막상 들어가보면 골방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 윤태
식사를 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서 예전에 잘 나가던 개그맨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영화 등으로 큰 돈을 벌어 호강도 했다고 말하는 그는 세월이 지나니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 잘 먹고 잘 살 때 돈이며 물건들을 창고에 가득 쌓아두었다면, 지금은 그것들을 마음 속에 쌓아놓았다고 할까요?"

비록 예전처럼 가진 건 없지만, 마음만은 부자라는 뜻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식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려는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치매 어머니께서 뇌압이 올라가 또 쓰러지셨다는 가족의 전화였다. 가봐야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걱정에 그는 늘 있는 일이라며, 상황이 급하면 119를 불러 병원에 가시는 게 낫다고 침착하게 말한다. 그러나 어느새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뭔가
"장애인 인터넷 방송인 사랑의 소리 방송 본부장을 맡고 있고 대불대 실용음악과 강사로 활동 중이다. 또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방송컨텐츠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사회복지 분야에 초청강사로 간간이 뛰고 있다. 이와 함께 희귀 난치병 어린이 돕기 단체인 '여울돌'에서 고문위원으로 있으며 장애인 지원 단체인 스마일협회 홍보대사로 있다.

사회복지쪽 일도 전문적으로 하려다보니 이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하고 자격증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보다는 자원봉사를 위한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자격증이 아니더라도 소외된 사람들, 장애인들을 위하는 방법과 실천방안을 잘 알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구태여 관련 자격증을 요구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 장애인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된 동기는
"한참 잘 나가던 80년대 합정동에 위치한 외국인 묘지 홍보영화를 찍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복음을 전파하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묻힌 곳이 외국인 묘지다. 그러다 올 1월 사랑의 소리 방송이 청담동에 있을 때, 뇌성병변 1급 장애인인 한 학생이 오늘같이 추운 날 경기도 광주에서 청담동까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적이 있다. 손에 들린 과자봉지에서 과자는 모두 빠져나가고 빈 봉지만 달랑 손에 쥐어져 있는데 그 아이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후 내가 가야 할 길을 확고히 굳히게 됐다."

- 장애인 인터넷 방송인 사랑의 소리 방송이 장애인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나
"장애인들은 사랑의 소리 방송을 다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더 좋겠지만 장애인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일반인들부터 받는 외부적인 도움보다는 장애인들이 이 방송을 들음으로써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게 이 방송의 목적이다.

사실, 장애인들은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고 가족들도 이들을 밖에 내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 위축된다. 우리 방송을 통해 이들이 좀 더 문화적으로 접근하기 쉽게 하고 이를 통해 대화의 창을 여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장애인 방송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 전문 방송인 사랑의 소리 방송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쓰나미 지진해일 때 인도네시아에서 방역 및 봉사활동을 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사랑의 소리 방송이 한창 바쁠 때 희귀난치병 홍보대사로 봉사에 참여했다. 혼자서 연출, 작가, 피디, 디제이까지 하는 상황에서 일주일 밤을 새워 준비해놓고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경황이 없던 탓에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 예방접종을 하지 못하고 출국했다. 몹쓸 병에 걸리지 않을까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그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갑작스런 재앙의 충격 때문에 실어증 증세를 보이는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심리상담과 언어치료를 했다. 실어증으로 '아끼'라는 단어만 말해 '아끼'라고 이름 붙여준 어린이가 있었는데, 내가 떠나오던 날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기쁨에 나도 울고 '아끼'도 울었다.

또 그곳에서 손으로 야자열매를 깨면서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손이 퉁퉁 부었는데 이 모습에 신기해 하는 어린이들을 보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한낮 무더위가 내려쬐는데 40kg이나 되는 소독약통을 등에 메고 하루에 예닐곱 번 소독약을 뿌리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 인터뷰 내내 곰인형을 안고 있는 김정식 씨. 직접 디자인 한 것으로 판매수익금은 모두 희귀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고 합니다.
ⓒ 윤태
- 요즘 경기도 안산에 사는 희수의 특수 맞춤 휠체어 비용 성금을 마련 중인데 모금 현황은 어떤가
"따뜻한 분들의 도움으로 2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보청기 업체 스타키코리아 사장님이 100만원의 성금을 기탁해주셨고 한양대 학생처 선생님이 20만원을 건네주셨다. 의류회사인 리바이스코리아 본부장님이 50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간 후로 십수만원의 성금이 모였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420만원을 반드시 모금하겠다고 제작진들과 굳게 약속했다."

- 희수 휠체어에 애착을 갖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사실, 대표한테 한소리 들었다. 매일 접하는 게 눈물, 콧물 쏟게 하는 장애인들의 아픈 소식인데 희수 휠체어 비용에 목메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희수의 경우는 특별하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지만 조부모가 연로하셔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희수는 당장 생사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 밀린 방세 등 생활비를 직접적으로 도와줄 순 없지만 최소한 생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특수 맞춤 휠체어는 꼭 있어야 한다. 그 어린 것이 비록 몸은 아프지만 세상에 태어난 맛은 보게 해줘야 할 게 아닌가."

- 앞으로 희수 돕기 운동을 어떻게 전개해나갈 계획인가
"내가 강의를 나간 한양대학교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1차적으로 휠체어 비용이 마련되면 지역사회와 연계해 거주 문제 등 안전한 생활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학교나 관련 단체 등에 연결고리를 만들어줄 계획이다.

희수 이야기가 어느 정도 확산된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안산시나 구청에서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아직 요원한 것 같다. 법이나 제도, 규정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러한 사연들을 먼저 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앞으로 장애인 관련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올해 희귀난치병 캠페인을 위해 중증 장애인과 함께 전동휠체어를 타고 전국투어를 하며 독도까지 가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독도에 사람이 너무 몰려 포기했다. 그래서 내년에는 중증 뇌성장애인 1명과 하지, 청각장애를 가진 본사 피디 1명과 전통휠체어 전국 투어를 할 계획이다. 이는 이동권 보장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것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장애인 복지와 관련해 정부에 바라는 점은
"감시자 즉 장애인, 소외계층에 대한 공무원들의 관리감독이 너무 허술해 안타깝다.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늘에 묻혀 있고 이름이 알려져 비대해진 일부 사회복지관 등은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고 예산을 탕진하는 게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현주소다. 이는 모두 사회복지 정책을 다루는 정부, 지자체 등 관계자들의 관리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 방송(개그계)에 복귀할 생각은
"현재까지는 전혀 없다. 혹시 돈을 많이 줘서 내가 하고 싶은 복지 관련 일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면 방송 쪽에 뛰어들 의향도 있지만 지금의 생활이 더 행복하다. 방송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고 이러한 목적이 뚜렷한 방송이라면 생각해볼 일이란 얘기다. 그러나 아직까지 김정식을 '딴따라'라고 생각하고 시청률을 높이거나 신문, 잡지의 지면 인지도를 위해 나를 끌어들이는 데는 나가고 싶지 않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 문제는 편견을 없앤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던 내 자신도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는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김정식씨와의 인터뷰 모습.
ⓒ 윤태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그는 여담을 들려줬다. 요즘 연말이다 보니 불우이웃, 장애인 등을 소재로 내보내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섭외가 종종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식씨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고 한다.

김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같이 생활을 하며 있는 그대로를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9월 한 인터넷매체에서 모 기자가 취재를 왔는데 이 기자는 김씨가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보육시설과 장애인 요양원에서 펼치는 봉사활동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보더니 그것을 기사로 썼다고 한다.

"이 방송 저 방송에 얼굴 비추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김정식이 다시 인기 얻으려고 그런다고 하지 않겠어요. 방송 등에 업고 뭔가 해보려고 했다면 그렇게 방송계를 떠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지금 이 자리가 너무 행복하고 좋답니다."

스튜디오 문을 나서려는데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제작진 대여섯 명이 스튜디오 안쪽에 조그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었다. 꼬마전구가 들어오네 마네 옥신각신하며 한편에선 뭔가 썰렁하다며 스프레이를 뿌리는 사람. 전구가 들어오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제작진들을 보며 김정식씨는 한 마디 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여럿이 동참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겠습니까?"

이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김정식씨에게 미안했다. 처음에 희수 휠체어 관련 기사를 쓰며 그를 만나 인터뷰까지 했지만 인터뷰 약속이 잡힌 후 나는 가슴이 설렜다. 왜냐하면 만남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도 여느 언론사 기자처럼 그를 한 명의 '연예인' 쯤으로 생각하며 기사를 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연예인이 아니었다. 철저히 장애인,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 그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좀 식상하긴 하지만, '사람의 탈을 쓴 천사'라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악수를 나누는데 그가 결정타(?)를 날렸다.

"힘없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하고, 개그맨 나부랭이하고, 둥글한 피디(박인규) 하고 꼭 희수 휠체어 비용 마련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해줍시다. 성금 전달할 때 윤기자님도 꼭 같이 갑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튜디오를 나왔다. 무척이나 매서운 겨울바람이 볼을 때리자 얼얼해지더니 경련이 일어나 눈을 깜박이기도 힘들었다. 몸은 그렇게 얼어붙었지만, 김정식씨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가슴부터 녹기 시작해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 윤태

덧붙이는 글 | 희수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2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