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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15일 밤 10시 45분]

"우리 손으로 암덩어리를 제거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봅니다."
"황 교수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찬바람이 많이 부는 저녁입니다."

황우석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결국 허위로 판명 난 날.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브릭 게시판은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침울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누구의 책임 운운하기보다는 '한국 과학계의 국치일'이라는 과학계의 자평에 더욱 마음 아파하는 듯했다.

이번 황 교수팀 논란이 불거지면서 가장 주목받는 인터넷 사이트를 꼽으라면 단연 '브릭'(BRIC, bric.postech.ac.kr)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다. 브릭은 이번 황 교수팀 논문 진위논란의 발원지기도 하다.

일반인에겐 낯설고 생소하던 이 사이트가 왜 언론과 일반인들의 '관심대상 1호'로 급부상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과학 전공 학자들이 학계와 여론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고 있던 사이, 황 교수팀 논문의 실증적 검증을 주도하는 등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황 교수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절대적인 시점에서 이들 과학도들은 황 교수팀의 2005년 논문을 조목조목 분석하며 조작 의혹의 흔적을 추적했다. '과학은 과학에 의해 검증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 젊은 과학도들이 직접 나서게 된 배경이다. 이들의 활발한 토론과 검증 작업이 없었다면 중복사진 게재 논란부터 DNA 지문분석 조작 의혹은 자칫 묻힐 수도 있었다.

젊은 생명공학인의 정보교환 창구... '진학문의' 게시판이 '논문토론' 장으로

브릭은 원래 석·박사나 포스닥(박사 후 과정) 과정에 있는 젊은 생명과학인들의 정보교환 창구였다. 회원 규모는 단체회원을 합쳐 약 3만명. 국내외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과학도들이 대다수다.

황 교수팀의 DNA 지문분석 데이터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된 브릭의 '소리마당' 게시판도 애초엔 과학도들의 진학을 문의하는 공간으로 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황 교수팀의 중복사진 게재 논란이 불거지면서 게시판 용도는 '논문토론' 게시판으로 급속히 진화했다. 마치 황 교수팀 논문 재검증을 위한 테스크포스팀이 꾸려진 듯했다. 정동수 부소장은 "황 교수팀 논란과 관련된 글이 많아지면서 별도 토론방을 마련해 떼어내려 했지만 시간을 놓쳤다"고 말했다. 재검증을 위한 토론이 매우 활발했음을 짐작케 한다.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센터 측에 따르면 하루 방문자가 2만 명 내외였으나 황 교수팀 논문진위 논란이 벌어지면서 서버에 장애가 생겨 방문자 수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방문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정동수 부소장은 "트래픽(홈페이지에서 외부로 전송되어진 자료의 총량)을 체크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방문자 수 급격히 증가... 재검증 요구부터 "김선종 살리자" 주장까지

한국 과학계의 신화로 여겨졌던 황 교수팀 논문이 결국 한 꺼풀 한 꺼풀씩 실체를 드러내면서 이들 젊은 과학도들은 또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재검증 요구였다.

'아릉'이라는 필명의 분자생물학 전공자가 DNA 지문분석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재검증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과학도든 반대 입장인 과학도든 관계없이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요구엔 한 목소리였다.

재검증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도 이곳에서 제시됐다. 한 과학도는 특허출원을 촉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배아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다른 과학도는 몇몇 추천 글을 영역해 <사이언스> 측에 발송, 황 교수팀을 압박하자는 구상도 제시했다.

일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황 교수팀에 빨리 전달해 대책을 마련하고 해명을 촉구하자고 조언했다. 이는 황 교수팀에 대한 애정과 불신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재검증 요구는 결국 황 교수팀의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브릭의 힘’이 첫번째 성과를 낳는 순간이었다.

지난 10일 브릭에는 황 교수 지시로 줄기세포 2개의 사진을 여러 장으로 부풀렸다고 증언한 김선종 연구원의 < PD수첩 >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그를 살려야 한다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이들 젊은 과학도들이 교수와 연구원 사이의 권력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현재도 이러한 흐름에는 큰 변화가 없다.

"과학기술부 지원 받고 있는데..." 고민 커지는 브릭

한편, 황 교수팀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이 브릭 게시판을 뒤덮을 당시 센터운영자 측은 고민도 빠져들기도 했다. 브릭은 과학재단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이 "이 문제를 검증하자고 하는 얘기는 더 없었으면 좋겠다”고 재검증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었기에 과기부 지원을 받는 브릭이 재검증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운영진을 곤혹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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